[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희생양으로 부각되던 중국 화웨이가 최근 미국에 공세적인 입장으로 나서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인 영국은 물론 뉴질랜드, 독일 등이 화웨이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일부 판세가 변하는 장면도 포착되고 있다.

▲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고난의 길, 화웨이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를 무터뜨릴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공격해도 화웨이는 굳건할 것이며, 5G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런 회장의 발언은 지금까지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개되며 화웨이가 희생양이 되자 잔뜩 몸을 낮췄던 과거와는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지난해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울리며 지난해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고 특정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에도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유탄을 맞았다. 푸젠성에 있는 푸저우(福州)시 중급인민법원이 지난해 7월 3일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한 것이 시작이다. 즉시 미국이 받아치며 푸젠진화는 D램 양산을 최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두 나라가 한 방씩 주고 받은 셈이다.

퀄컴도 피해를 봤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으로 무위에 그친 가운데, 중국 당국의 반대로 숙원인 NXP 인수가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퀄컴은 NXP를 인수하기 위해 9개 나라 반독점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중국을 제외한 8개 나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불허했다. 이 외에도 두 수퍼파워는 상대의 기술 기업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벌였다.

화웨이 사태가 심각해진 전초전은 ZTE 사태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지난해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ZTE는 크게 휘청였다. ZTE는 5월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자연스럽게 ZTE와 유사한 통신 사업자 화웨이가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화웨이를 북미 시장에서 몰아내는 등 오랫동안 반감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과 동시에 미국은 화웨이의 중국 정부 유착설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규제에 나서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ZTE에도 적용된 대 이란 제재 위반 혐의도 포함된다. 미국이 보기에 화웨이는 수상하기 이를 데 없다.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며, 런정페이 회장의 지분이 1%에 불과할 정도로 소유 구조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분을 '화웨이 노동자'로 명시된 이들이 확보하고 있는데 그 뒷배경이 중국 정부라는 말이 있다. 이사회는 공개되지 않고 주주 정보도 베일에 쌓여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출신이어서 이른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화웨이는 몸을 낮췄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 런정페이 회장의 오판이라기 보다, 간절한 염원으로 해석된다. 그는 "중국은 더 발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내려야 한다"면서 "직원들은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행동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몸을 낮췄다.

이후 지루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들을 움직여 반 화웨이 전선 동참을 독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1월 23일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의 변곡점은 G20에서 찾아왔다. 미중 두 정상은 G20 정상회담에서 만나 90일의 무역전쟁 휴전을 선포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지난해 9월 24일부터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던 관세율 10%를 내년 1월 1일 25%로 인상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잦아들며 화웨이도 모처럼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CFO를 체포했기 때문이다. 멍 부회장은 런청페이 회장의 딸이면서 후계 0순위로 꼽히는 데다 내부에서 재무담당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의 미국행은 화웨이는 물론 중국 정부의 불만을 샀다.

런정페이 회장이 결국 나섰다. 런 회장은 1월 15일과 17일 간담회를 열어 "5G를 가장 잘하는 회사도, 최신 마이크로 웨이브 기술을 가장 잘하는 회사도 화웨이다. 이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하며, 화웨이는 이 두 가지를 접목해 기지국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서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개발 집약도 부문 세계 상위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서 "현재 8만7805개의 특허를 보유 중이며 미국에서만 1만1152개의 핵심 기술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화웨이는 360개 이상의 표준 단체에 적극 참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5만4000개 이상의 기술연구 관련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5G 정국에서 화웨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기술력을 믿어달라는 주장이다.

중국 정부의 유착설에는 선을 그었다. 런 회장은 “화웨이는 독립적인 민간 기업체이다. 우리는 30년동안 170여 개국과 30억명의 인구에게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동안 사이버 보안 문제가 일어난 일은 없었다"면서 "사이버보안 및 개인 정보와 관련해 애플의 사례를 본받고 있다. 고객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화웨이는 사이버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연구개발에 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런 회장까지 나서 설득전에 돌입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몇 차례의 변곡점을 돌아 미중 고위급 회의가 최근 열린 가운데, 미국 법무부가 1월 28일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화웨이의 자회사 스카이콤과 화웨이 디바이스 USA를 전격 기소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쟁사의 기밀을 유출하고 대 이란 제재를 어기는 한편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뉴욕에서는 사기와 대 이란 제재로 무려 13개 혐의가, 워싱턴에서는 기밀 유출을 이유로 총 10개 혐의가 기소됐다.

화웨이는 "미 정부의 기소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면서 "멍 부회장이 체포된 이후, 화웨이는 미국 법무부, 뉴욕주 동부지방검찰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였으나 미국 측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이러한 요구를 거절했다"고 반발했다. 화웨이는 이어 "영업 기밀 관련 민사소송 건은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되었으며 시애틀 배심원단은 화웨이에 대해 손해배상할 의무가 없으며, 악의적 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판결을 내렸다"면서 "화웨이는 화웨이 및 자회사 또는 계열사에 대해 미국 정부가 기소한 법률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국 화웨이를 급습, 압수수색까지 단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1월 28일 FBI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화웨이 연구소를 덮쳤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미국 아칸 반도체의 인공 다이아몬드 박막기술을 훔친 정황이 포착됐다는 말이 나온다.

돌아선 영국...화웨이 반격
미중 무역전쟁의 중심에서 화웨이는 항상 수세였다. 지금도 이러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통신업체 T모바일의 존 레기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화웨이는 물론 중국 ZTE의 장비까지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12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까지 나서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미국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과 그 자회사를 기소하고, FBI까지 나서 화웨이의 반도체 기술 탈취를 수사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미국은 MWC 2019가 열리는 스페인에서 동맹국들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독려할 방침이다.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에 일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영국 국가사이버안보센터(NSCS)가 화웨이 장비에 위험이 있어도 이를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화웨이 장비를 받기로 한 셈이다.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의 수장이었던 로버트 해닝언도 지난 13일 언론 기고를 통해 서방이 차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의 장비를 배제하는 것은 사이버 보안과 5G 네트워크 설계의 복잡성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이 돌아서자 뉴질랜드, 독일도 꿈틀하고 있다. 미국 최대 우방국인 '파이브 아이즈' 중 하나인 뉴질랜드는 최근 화웨이 장비 도입을 배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독일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여전히 화웨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런정페이 회장이 BBC 인터뷰를 통해 수세에서 공세로 나설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미국의 압박에 유럽 일부가 동참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이는 한편, 여전히 5G 인정받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신감 회복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특히 영국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충분히 예상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영국은 ICT 정보교류에 있어 밀월에 가까운 친밀도를 자랑하고 있으나, 이러한 2차 세계대전 체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많이 퇴색됐기 때문이다. 보호 무역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에 유럽이 불만을 가지며 양측의 친밀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럽의 입체적인 대응은 최근 미국의 변화된 행보에 힌트가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보호 무역주의 분위기가 강해지자 유럽과의 공조가 느슨해졌고, 이 과정에서 화웨이 때리기가 화두로 부상하자 유럽인 일종의 '간 보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물론 최근 유럽 유수의 통신사들이 속속 화웨이 장비 배제를 선언하며 큰 틀에서 미국의 행보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으나, 유럽은 무조건적인 미국 의도 따르기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을 염두에 둔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또 다른 수퍼파워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다시 손을 잡는 장면이 나올 수 있다.

화웨이와 영국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다. 화웨이는 2010년 영국에 사이버 보안센터를 열었고, 현재 현지 5G 시장 건설을 위해 20억파운드를 투자했다. 향후 추가로 30억파운드를 더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영국의 특수한 사정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영국은 노 딜 브렉시트의 공포에 떨고 있으며 최근 외국기업의 투자 철회로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해졌으며, 결국 화웨이의 손을 잡는 쪽으로 선회한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화웨이의 백도어의 실체가 없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도리어 이 분야에서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운용했던 미국 정부에 더 큰 원죄가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프리즘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가 테러 방지라는 미명으로 일반인의 통화 및 이메일 목록을 빠짐없이 수집했고, 이를 모두 보관해 관리한 미국 국가안보국의 프로젝트다.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됐다.

한편 화웨이는 당분간 강공모드를 유지하며 상황을 주도할 기회를 엿볼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질의응답 페이지를 조성, 일각의 보안 논란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유착을 의심하며 소위 백도어 논란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가운데, 이에 대한 일종의 반박 카드인 셈이다. 나아가 각 국에서 광고를 통해 화웨이의 보안 우려를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