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벌써부터 반도체 코리아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를 확충해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하는 한편 전방위적 대외압박을 버텨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 삼성전자 반도체 전략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삼성전자

반도체 수출 전선 경고등...거세지는 대외 압박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2019년 1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1월 수출물가지수는 82.95를 기록, 2018년 12월 대비 1.0% 하락했다. 2016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D램 수출물가 하락 폭이 심각하다. 2011년 8월 -21.3% 이후 7년 5개월 만에 최대인 -14.9%를 기록해 경고등이 들어왔다.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반도체 분야에서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4분기부터 급속도로 힘이 빠진 대목과 오버랩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43조 7700억원, 영업이익 58조 8900억원, 당기순이익 44조 3400억원을 달성해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달성했으나 4분기 매출 59조2700억원,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18% 올랐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28.7%나 떨어졌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성장을 견인한 반도체가 위험하다.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매출은 18조7500억원, 영업이익은 7조7700억원을 기록했으며 전 분기 대비 각각 43%, 24% 폭락했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하다. 지난해 연간 실적은 고무적이지만, 문제는 역시 지난해 4분기다. 매출 9조9381억원, 영업이익 4조4301억원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각각 13%, 32% 하락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사정이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D램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2% 감소했고, 평균판매가격도 11% 하락했다. 낸드플래시 출하량은 10% 증가했으나, 평균판매가격은 21% 떨어져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출하량 측면에서 희망이 보이지만, 평균판매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져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대외적인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현재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은 7일 차관급 회의,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위급 협상을 통해 양측의 이견을 좁히고 있다. 아직 완전한 타결은 난망하지만 각자의 카드는 일부 공개됐다는 평가다. 여기에서 중국이 미국에 제시한 카드에 시선이 집중된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미국산 반도체 구매 규모를 향후 6년 동안 2000억달러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강한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으며, 시스템 반도체는 인텔 등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시스템 반도체는 이미 중국 시장에 입지를 마련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 규모를 늘리면 그 대상은 미국산 메모리 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마이크론, 푸젠진화 사태를 겪으며 두 나라가 메모리 반도체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미국산 메모리 반도체 수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두 나라의 화해 제스쳐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가진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산 메모리 반도체 구매 규모를 늘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유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 중국 판로가 축소될 여지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중국은 2017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63%의 수입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2019년은 67%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큰 손인 중국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물량을 줄이고 미국의 반도체 물량을 늘리는 한편 그 대상을 메모리 반도체로 고정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기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산 시스템, 메모리 반도체 수입 물량을 크게 늘리는 한편 자체 반도체 굴기도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아직 기술력으로는 크게 두각을 보이고 있지 않으나 중국 정부는 민간 기업과 함께 약 166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외 인수합병보다 자체 기술력 확보에 나서며 대만 등 범 중화권 반도체 인프라를 하나로 묶으려는 노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반도체 코리아의 앞 길을 막는 의외의 복병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당장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 결을 내리고 지난 1월 15일 신일철주금에 대한 압류 자산 매각 절차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일본 자민당은 발끈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면서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아베 신조 내각이 코리아 패싱을 운운하며 대북전략을 자체적으로 수립하려는 시도까지 벌이며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1월 14일 북한의 일본 민간인 납치 문제를 다루는 지자체 간담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처음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레이더 문제까지 겹치며 두 나라의 신경전이 극에 달한 가운데 일본 자민당 내부에서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르화수소)' 등 핵심 물자의 한국 수출 금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순도가 높은 불화수소를 사실상 독점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만약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를 강화한다면 반도체 코리아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일본 후지신문은 지난 1월 19일 "일본은 대항책으로 불화수소 금수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불화수소 수출관리를 강화하면 한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코리아를 둘러싼 대외적인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내부 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20조원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내홍이다. 정부와 기업이 2028년까지 연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와 협력회사 50곳을 이주시는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가 조성지역을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들어설 유력한 지역은 경기도 이천과 용인 및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경북 구미 등 다섯 곳이 점쳐진다. 이를 두고 각 지자체들이 지나친 정치 논리를 들어 날을 세우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평가다.

진짜 실력 보여줄까
반도체 코리아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전개되고 있으나, 아직 기회는 있다는 평가다.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노려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푸젠진화는 최근 D램 양산을 포기했으며,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후유증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푸젠진화가 허페이창신과 협력해 D램 양산을 목표로 움직였으나 최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의 일은 아니고, 지난해 말부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며 위기감이 고조된 바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다.

중국의 기술력도 논란이다. 최근 중국 푸젠진화가 D램 양산을 포기하는 등 최근 야심찬 계획이 일부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의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YMTC는 6세대 128단 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하며 올해 4분기 64단 3D 낸드플래시 양산까지 선언했으나,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 물량을 키울 가능성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반도체 코리아의 외연이 위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삼성전자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당장 한국의 손을 뿌리칠 수 없다는 뜻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 반등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시선이 집중된다. 한국은행은 1월 24일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국내 반도체 수출 금액은 전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량 증가율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록한 12.3%를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하반기에 IT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며 데이터센터 투자 회복, 중저가 스마트폰 점유율 확대가 일어나면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반도체 업계가 상반기 가격 조정기에 돌입한 후, 하반기 상승세를 탈 가능성에는 소위 ‘버블론’에 대한 인식도 깔려있다. 실제로 D램 기준으로 보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일종의 '버블'이 만연하다는 평가다. 그런 이유로 올해 상반기에는 시장의 버블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중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재차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청와대 간담회를 마친 후 반도체 경기를 묻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시장이 어려운 것이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라면서 “진짜 실력이 나올 때”라고 대답한 행간이다.

파운드리 전략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에 올랐으며, 이를 중심으로 강력한 시장 장악 속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업계의 강자인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 가능성도 점쳐진다. GF는 지난해 기준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50.8%로 1위를 달리는 TSMC에 이어 점유율 8.4%를 가진 3위 업체다. 삼성전자는 14.9%로 2위, UMC가 7.5%로 4위, SMIC가 5.1%로 5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