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SK텔레콤 산하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가 또 다른 케이블 MSO인 딜라이브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각 사업자의 합종연횡을 둘러싼 다양한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SKB의 사용자 경험이 확장되고 있다. 출처=SKB

미디어 전략... LG유플러스 ‘속도전’

LG의 전자 계열사들은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 즉 외부와의 협력에 방점을 찍고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전자다. 모바일 AP 등 일부 핵심기술은 보유하지 않았으나 스마트폰과 가전 등 핵심 사업군에서 과감하게 외부와 협력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LG전자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에 녹아드는 장면과, 아마존 알렉사와의 깊어진 협력전선이 대표적이다.

LG유플러스는 더욱 노골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여전한 상태에서 5G 장비에서는 화웨이와 손을 잡았고, 미디어 시장에서는 지상파 방송사 등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 협력전선을 구축했다. 콘텐츠 수익 배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LG유플러스는 2018년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CJ헬로 인수에 나섰다. 한때 SK텔레콤이 눈독을 들였으나 끝내 합병이 무산된 CJ헬로의 손을 LG유플러스가 잡은 셈이다. CJ헬로 지분 53.92% 중 ‘50% + 1주’를 8000억원에 인수하는 조건이며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면 당장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2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LG유플러스가 미디어 업계 전격전을 벌이는 이유는 5G와의 시너지가 꼽힌다. 올해 5G 상용화가 시작되며 ‘플랫폼을 채울 콘텐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화두로 부상했고, LG유플러스는 일단 그 답을 미디어로 낙점하는 분위기다.

CES 2019가 열리던 지난 1월, LG유플러스는 구글과 가상현실 콘텐츠 공동 제작에 합의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공동 콘텐츠 펀드를 조성, 올 상반기 내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으며 신규 제작 콘텐츠는 LG유플러스의 가상현실 전용 플랫폼과 유튜브에서 독점 제공돼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LG유플러스는 지속적으로 콘텐츠 확대에 나설 예정이며 향후 개방형 플랫폼, IPTV 전용 가상현실 등도 공개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그 연장선에서 공격적인 외연 확장을 시도, 시장의 판을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CJ헬로는 420만여명의 케이블TV 가입자, 78만여명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79만여명의 알뜰폰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을 통해 미디어 시장 지배력을 이동통신 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다면 단순 미디어 시장 격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과거의 LG유플러스다. 5G를 중심으로 미디어 전략을 전개하는 한편 미디어와 이동통신 시장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과거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에 반대하며 제기했던 문제점을 스스로가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CJ헬로 인수에 나설 당시 LG유플러스는 KT와 공동으로 이를 비판했다. 여기서 시장 독과점에 대한 부분은 SK텔레콤이 2위 사업자이고 LG유플러스가 4위 사업자이기 때문에 당시의 LG유플러스 발언은 큰 분란의 소지가 없다. 그러나 LG유플러스가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에 반대하며 주장했던 ‘시너지가 없다’와 ‘미디어 시장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는 대목은 2019년 CJ헬로 인수에 나서는 LG유플러스가 스스로 해명해야 한다.

시민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두고 쓴소리를 한 이유다. 언론연대는 지난 14일 “특히 중요한 것은 고용보장”이라면서 “CJ헬로 비정규직은 1600여명(2017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수합병 후 대규모 인력감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고용승계 방안을 허가조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2015년 SK텔레콤은 CJ헬로 인수에 돌입하며 막대한 고용창출 효과를 예고했으나 LG유플러스는 이를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 일축한 바 있다. 이제 CJ헬로가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할 차례인 셈이다.

지역성도 핵심 의제다. 언론연대는 “유료방송시장이 전국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케이블방송에 부여했던 지역성 구현 책무가 축소될 거란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지역채널 운영이 형해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LG유플러스가 2015년 SK텔레콤에 했던 문제제기다.

▲ SKT와 푹이 만났다. 출처=SKT

SK텔레콤의 타깃은 티브로드? KT는?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의 손을 잡고 CJ헬로 인수에 나서는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를 내세운 SK텔레콤도 케이블 티브로드의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다. SK텔레콤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아직 인수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시기의 문제일 뿐, SK텔레콤이 티브로드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지난해 초부터 CJ헬로 인수설이 제기됐으나 인수 시도 직전까지 ‘사실무근’이라고 답한 바 있다.

SK텔레콤의 최근 행보를 보면, 티브로드 인수설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올해 초부터 SK브로드밴드 사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박 사장은 인수합병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와 지상파 OTT 플랫폼 푹이 만나는 점도 중요하다. 두 회사는 3일 한국방송회관에서 통합 OTT 서비스 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까지 모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SK텔레콤도 5G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그 중심에 미디어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미디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티브로드를 품어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상황판단이 나왔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이 티브로드를 인수할 경우 국내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23.8%가 가능해진다.

업계에서는 딜라이브 인수전에도 주목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추가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KT가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일몰됐던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부활하면 두 회사가 딜라이브 인수에 난항을 겪게 된다. 특히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 입장에서는 딜라이브 인수가 불가능해진다.

넷플릭스가 던진 공?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케이블에서 IPTV로 패권이 넘어온 가운데, 통신사들이 5G 시대를 맞아 미디어 경쟁력을 키우고 다양한 시너지 창출에 나서며 케이블 MSO를 속속 인수하는 장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결국 본격적인 방통융합 시대가 ‘통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IPTV의 케이블 인수에 전향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는 무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SK텔레콤이 티브로드를 인수한다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KT는 위성방송과 IPTV를 합산한 점유율에 딜라이브 인수를 저울질하며 유료방송 합산규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재편을 넷플릭스 후폭풍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콘텐츠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넷플릭스는 딜라이브와 가볍게 손을 잡은 후 LG유플러스를 선봉으로 삼아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의 노림수는 결제 인프라 제공이 용이한 통신사들과 협력해 국내 구독자를 늘리는 한편 콘텐츠를 활용한 글로벌 플랫폼 시장 장악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려는 각 통신사들의 반격도 연쇄적으로 일어날 전망이다.

다만 이 모든 격변이 넷플릭스 후폭풍이라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ICT플랫폼 인사이트 조준명 연구원은 “넷플릭스의 전격전이 현재의 격변을 유도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면서 “5G를 중심으로 통신사들이 새로운 콘텐츠 가능성을 타진하며 규모의 시장을 추구하고, 케이블 업체가 쇠퇴하는 장면이 오버랩되는 장면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