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소프트가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사업에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미국이 대규모 헬스케어 시장으로 변하면서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이 급격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2017년 기준 미국 헬스케어 시장은 연평균 약 3.9% 증가한 3조5000억달러 규모로 미국인 1인당 연간 1만633달러를 헬스케어 분야에 소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효율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특히 의료기록의 디지털화는 IT 기업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소재가 됐다.

IT기업의 헬스케어 진출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병원과 협업해 인공지능(AI) 의료기기나 진단보조기기를 내놓으면서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이나 개인건강기록(PHR, Personal Health Record) 분야에 진출하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로는 전자 처방전과 의사와의 연계를 활용, 의약품 처방 후 이를 배송하거나 소비자가 직접 약국에 들러 처방·신청한 약을 받는 모델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전자기기에 집중해 신체활동과 수면습관, 심장박동 등을 추적·정리하는 헬스케어 보조기구 개발에 집중해 의사와 환자들이 정보 공유를 용이하게 하도록 활용하는 분야가 있다.

아마존, 애플, 구글 등 미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헬스케어 관련 시장에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병원과 협력하고 건강기록을 클라우드에서 활용, 대형 약국체인과 협업(MOU)을 체결하는 등 헬스케어 분야의 행보를 빠르게 하고 있어 주목된다.

헬스케어 분야 디지털 변화 이끌 도구 선보여…강점인 클라우드 활용?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미국 의료 서비스분야에서 디지털화는 기타 소매업이나 은행업과 같은 데이터 집약산업에 비해 더디게 진행돼 미국 내 병원의 EMR 채택률은 2008년 약 10%에 불과했지만, 급격히 상승해 2015년 80%를 웃돌고, 2018년 기준 95% 이상 병원이 EMR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미국 내 전자의료기록(EHR, Electronic Health Record) 채택 병원 비율. 출처=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미국병원협회(American Hospital Association, AHA)

지난해 8월에 거대 IT기업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아마존, IBM, 오라클 등 여섯 회사는 중구난방으로 기록되던 의료정보 관련 데이터 규격과 API를 상호 연동하기로 약속했다. 쉽게 말해 의료정보 표준 플랫폼을 만든다는 뜻이다. 각 사는 이를 위해 패스트 헬스케어 상호운용성 자원(FHIR, 파이어, Fast Healthcare Interoperability Resource)라고 불리는 의료정보 데이터 처리용 플랫폼 표준 규격을 활용하기로 했다.

FHIR는 사용되는 맥락과 개념이 다양한 의료정보를 ‘자원(Resources)’이라는 데이터셋으로 정의하고, 자원을 개별적으로 관리하거나 복잡한 문서에 취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데이터 처리 플랫폼 규격이다.

PHIR은 주로 다수의 기기와 시스템에 분산되면서, 필요한 인사이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의료 기관이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연결해 데이터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FHIR을 위한 애저 API(Azure API for FHIR)를 최근 열린 세계의료정보관리시스템학회(HIMSS19)에서 소개했다.

애저 API는 PHIR을 안전하게 약국이나 피트니스 디바이스 등 다양한 의료 시스템과 연결해 주요한 인사이트를 적시에 도출할 수 있도록 해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API를 통해 한 번에 안전한 데이터 등록과 보관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어 다수의 시스템들을 통합하는 데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FHIR을 위한 애저 API는 현재 프리뷰 단계이며, 25개 이상의 기술 파트너가 의료 기관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 의료진이 서피스 허브를 활용해 팀즈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또 환자의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 의료진이 협업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팀즈의 새로운 기능도 발표했다. 의료진이 긴급 상황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 ‘우선순위 공지(Priority Notifications)’ 기능은 수신인이 회신할 때까지 긴급 메시지를 최소 2분에서 최대 20분 간격으로 수신인의 모바일 또는 데스크톱 디바이스 화면에 노출한다. 수신인이 수술 등으로 불가피하게 회신할 수 없다면 다른 의료진에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또한 전자건강기록(EHR, Electronic Health Record)을 팀즈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EHR을 팀즈에 통합해 의료진이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않아도 환자 데이터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고, EHR을 활용하는 의료분야 채팅이나 화상 회의 등의 업무도 가능하다.

대형 약국 체인과 제휴, 아마존 추격 목표?

마이크로소프트는 헬스케어 분야 강화를 위해 최근 미국의 대형 약국체인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Walgreens Boots Alliance)’와 헬스케어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그린의 디지털 변혁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제휴기간은 7년으로 연구개발(R&D)을 위해 두 기업이 공동으로 자금을 투자한다.

두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를 AI 플랫폼과 연계 활용해 의약품 판매에 관련한 새로운 유통 모델을 개발할 방침이다. 월그린은 미국 최대 약국체인으로 2017년을 기준으로 전국에 7980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같은 기간 매출은 827억5000만달러로 전미소매업협회(NRF)의 매출 순위에서 6위를 기록하고 있다.

NRF 매출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한 아마존닷컴은 인터넷에서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필팩(Pill Pack)’을 인수하는 등 헬스케어 부문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월그린의 합작은 이러한 아마존의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두 기업의 MOU는 아마존이 아마존 고에 이어, 아마존닷컴 쇼핑몰에서 평점 별 4개 이상 상품만 판매하는 ‘아마존 포 스타(Amazon 4 Star)’ 매장을 오픈하는 등 오프라인 행보를 강화하는 가운데, 기존 소매 유통기업의 견제심리가 커진 가운데 발표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월그린과의 MOU 일주일 전에 NRF 순위 2위인 식품 슈퍼마켓의 대기업 ‘크로거(Kroger)’와도 MOU를 발표했다. 크로거는 ‘Retail as a Service’라는 새로운 매장 시스템 등을 구축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를 ‘우선 협상 클라우드’로 선정했다. 2017년 기준 크로거의 전국 점포수는 3902개고 매출은 1158억9000만달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2018년 7월, 미국 소매 최대 기업인 월마트(Walmart)와 5년 동안의 MOU를 맺었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연이은 MOU로 미국 1위, 2위, 6위 소매 대기업과 손을 잡고 ‘아마존 포위망’을 구축한 셈이 됐다”면서 “경쟁관계에 따라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이용하는 것을 꺼리는 소매 대기업들이 적의 적을 찾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마이크로소프트는 아마존이 사업을 확장할수록 더 많은 기회가 우리에게 생길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헬스케어 지옥도, 한국

의료분야에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것은 기존 산업에서 사용하는 것과 성격이 달라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예를 들어 IT 기업들이 만든 고혈압·심전도 체크를 통한 건강관리 솔루션은 질환 예방 등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임상데이터로는 활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는 아직 의사가 직접 진료하거나, 눈으로 본 데이터만큼 신뢰도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규제 아닌 규제가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막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임상시험 모집 등은 법령이나 시행규칙 등이 아닌, 2015년 Q&A의 한 답변인 ‘인터넷 매체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되는 특징이 있으므로 임상시험 실시기관의 홈페이지는 가능하지만 지하철, 신문광고 등 오프라인 매체를 통하면 좋겠다’는 답변이 이를 막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애플워치4가 탑재한 기능으로 유명한 심전도 측정 기능은 한국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품목허가증을 받아야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는 애플보다 빠른 2015년에 개발됐지만, 규제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없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품목허가증을 받기 위해서는 기술문서심사를 먼저 받아야 한다. 관련 검사 중에 고압 테스트 항목이 있었다”면서 “당시 웨어러블 장치는 고압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검사 항목을 제외해 달라고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예시로든 두 분야는 ‘한국에서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은 모르고 했다가 쇠고랑 찬다’는 말이 나오는 열악한 한국 디지털헬스산업에서도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기업 올리브헬스케어는 15일 과기정통부 ICT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한 ‘스마트폰 앱으로 임상시험 참여자와 실시기관 연결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실증 특례 대신 동종 서비스 전면 허용으로 적극적인 행정조치로 해소됐다고 밝혔다. 올리브헬스케어의 스마트 임상시험 지원 플랫폼 '올리브씨(AllliveC)' 구동 모습. 출처=올리브헬스케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도 첫 규제 샌드박스 사업 지정을 위한 ‘제1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2월 14일에 열고 최종 심의를 발표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임상시험 참여자와 실시기관을 연결하는 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실증 특례 대신 동종 서비스가 전면 허용됐다. 모바일 앱을 포함한 온라인 임상 중개 모집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임상시험 매칭률 15%에서 40%로 향상, 모집 기간 단축, 참여 희망자 편의 개선 등이 기대된다. 이는 임상시험의 효율성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의학 발전과 신약 개발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심의위원회에서 또 규제 샌드박스로 선정된 심전도 측정 서비스는 스마트워치가 심전도를 체크, 의사가 측정된 심전도 기록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보이면 전화나 문자로 병원에 올 것을 안내하거나 협력 의료기관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는 규제가 전면으로 해결되진 않았다. 대상자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심장질환으로 진료받는 환자 약 2만명 중 2000명이다. 이는 해묵은 원격의료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어 업계에서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수석은 디지털헬스케어와 관련 “한국은 규제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대립에 따라 활성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기술 이슈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도입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더 중요하다”면서 “의료 서비스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공급이 늘어나지 못하는 비탄력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늘어나는 의료 서비스 수요를 감당하고 국가의료비 부담을 억제하면서도 서비스 질과 환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의 조기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