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이번에 위기를 한 번 겪어 보니 언론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니 모 로비스트가 언론에 뇌물을 주고, 기사를 빼는 활동을 해 문제가 되었던데요. 그렇게라도 해야 할까 고민입니다. 그런 고민에 대해 제대로 된 언론관을 갖추라는 이야기의 의미는 뭔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국내에서 위기관리에 능한(?) 기업들은 특정 위기를 경험한 후에 백서(White Paper) 형식의 위기관리 기록을 대부분 만들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자사에 발생한 위기에 대한 이야기와 위기관리 프로세스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한 백서나 케이스북을 만들고는 하는데 우리 기업은 다릅니다.

왜 기업이 중대한 위기와 위기관리를 경험하고도 백서를 만들지 않을까요? 필자가 보기에는 백서를 만들 수 없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위기 대응 내용 중 백서에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위기 대응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는 의미죠.

지금까지 수십년간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해온 모습을 기억해 보기 바랍니다. 그중 상당 부분이 외부로 밝힐 수 없는 전략과 실행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선에서도 상부나 외부에 그대로 알려지면 힘들어질 실행들이 상당수였을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겨 보았자 차후에 문제만 될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최고의사결정자들이 모여 위기대응을 논의한 메모랜덤도 만들지 않습니다. 기록에 남겨 보았자 문제 소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위기대응을 각 부서에 지시한 문자나 메신저 그룹 기록은 또 어떻습니까? 최근 들어 내부 지시 사항이 담긴 메신저 내용들이 언론에 흘러 들어 다시 큰 문제가 된 케이스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메신저 지시도 위기 시 가능한 제한하라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십시오. 위기 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시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그것은 그냥 문서일 뿐, 실제 대응은 필드에서 기록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적어 매뉴얼화하기에는 부담되고,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뉴얼은 매뉴얼, 실행은 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 없는 위기 대응 방식은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평시 예상되는 위기 대응 방식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면서 이 대응 방식이 공개적으로 기록되어도 문제없는 것인지 판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대응 방식이라면 다른 정상적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 위기대응이 또 다른 위기를 만들지 않게 됩니다. 지나간 위기 대응이 다시 살아와 문제가 되는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 됩니다. 기록해 차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 위기대응이 아닌 것입니다. 기업이 그런 위기 대응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정상적 언론관도 그중 하나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공무원, 심지어 거래처에게 뇌물을 주면 안 되는 것처럼, 언론인에게도 뇌물은 안 됩니다. 배임 차원의 부정한 청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인과의 관계나 친분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하려는 노력도 제한적이어야 합니다. 정확한 언론관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어떤 것이 문제 소지가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언론관에 기반한 위기 대응 활동인지 여부는 단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위기 시 기업 담당자와 언론인과의 개인적 문자, 통화 및 청탁 내용이 추후 공개되어도 문제없을 것인가? 이것이 기준입니다. 문제가 예상되면 문제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위기관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