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22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증선위가 삼성바이오에 내린 행정처분은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현재 이와 관련한 본안 소송은 삼성바이오가 지난 11월 27일 시정요구 등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이래 지난해 연말까지 양 측 소송대리인이 소장과 답변서만 서로 주고받은 상태인데, 이번 결정으로 삼성바이오로서는 최소한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증선위의 행정처분을 이행해야 할 부담을 덜게 되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끈 셈이다.

집행정지신청은 행정소송 본안 판결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안 판결을 받기 전에 당사자의 권익을 잠정적으로 보호해 주는 제도(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로 당사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하여 집행을 정지해 주지 않는, 이른바 ‘집행부정지’를 원칙으로 하는 우리 법제에서는 예외적으로 법원의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행을 잠정 정지시켜주는 제도다. 이번 삼성바이오의 경우에도 만약 법원이 집행정지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삼성바이오로서는 증선위가 내린 행정처분을 지정된 시한 내에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행정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에 증선위의 처분을 이행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된 것이다.

증선위는 지난해 11월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연결 종속회사에서 지분법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의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판단해 재무제표 재작성 시정요구, 감사인 지정 3년,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원 부과 등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집행정지 결정문에서 “증선위의 처분으로 인해 삼성바이오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함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성도 인정 된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취지로 재무제표를 수정해 공시할 경우 본안 소송에서 판단을 받기도 전에 4조원이 넘는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부패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기업 이미지와 신용·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 대체 전문경영인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대표이사 해임이 이뤄질 경우 심각한 경영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재무제표 재작성 역시 기존의 회계정보를 신뢰하고 삼성바이오와 이해관계를 맺은 주주와 채권자, 고객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대여금을 회수, 또는 거래를 단절할 우려가 있고, 그로 인해 삼성바이오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 등을 결정의 근거로 내세웠다.

▲ 출처=삼성바이오로직스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삼성바이오의 이번 집행정지신청이 우리 법원이 제시하는 집행정지신청 인용의 요건인 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것 ② 긴급한 필요성이 있을 것 ③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염려가 없을 것 ④ 본안 판결에서 신청인이 승소할 가능성이 있을 것 등을 대부분 구비하였다고 판단한 결과다. 본안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증선위 처분에 대한 집행이 이루어질 경우 삼성바이오 논란이 가지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인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여 삼성바이오로서는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01. 10. 10. 선고 2001무29 판결 참조).

물론 법원이 이번 결정을 받아들여줬다는 이유로 삼성바이오가 재판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였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법원에 의해 잠정집행신청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삼성바이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본안 판결에서 심리를 해 볼만하다는 수준의 승소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하였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공방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삼성바이오가 재판 준비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소송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분명 큰 소득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행정소송이 1심만도 짧게는 1~2년 길게는 그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사이 행정소송 이외 검찰에 형사 고발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행정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시간과의 싸움은 이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