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C 페니는 새 CEO가 임명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몇몇 임원직은 공석으로 남아있고 아직 전략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   출처= Total Retail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JC 페니 백화점의 매출은 떨어지고 있고, 그 매장들은 대형 쇼핑몰에 갇혀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이 소매업체는 새 최고경영자(CEO)가 부임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몇몇 임원직은 공석이다.

최근 이 회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애널리스트들이나 업계 전문가들은 페니가 과연 파산을 신청하고 간신히 청산을 면한 동료 백화점 사업자인 시어스(Sears Holdings Corp.)의 운명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소매연구소 소장 마크 코헨은 "페니는 이미 파산한 회사"라며 잘라 말했다.

"그들은 매우 심각한 상태로 2019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업자득의 전형적인 예이지요.”

텍사스주 플라노(Plano)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소매 체인은 한 때 중산층 가정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의류 소매업체였다. 전성 시절에 시어스와 더불어 미국 소매업을 지배했지만, 처음에는 월마트 같은 할인점들에게, 그 다음에는 T.J. 맥스(T.J. Maxx) 같은 저가 패스트패션 체인점 에게까지 고객을 빼앗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온라인 쇼핑의 등장으로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미국의 경기 호황 속에 페니의 문제점들은 더욱 날카롭게 부각됐다. 페니는 할인 제품과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축소하고, 의류 대신 가전제품에 집중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소비를 집중하는 연말 연시 할리데이 쇼핑 시즌에 페니의 판매는 3.5% 하락했고, 회사는 더 많은 매장을 추가로 닫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Fitch Ratings Inc.)는 지난 주, 이 회사의 등급을 한 단계 낮춰 정크 등급에 더 가까워졌다. 트레이딩 플랫폼 마켓엑세스(MarketAxess)에 따르면, 페니의 가장 활발한 거래 채권 중 하나인 2036년 만기 ‘6.375% 약속어음’은 지난 주 37센트에 거래되었는데, 지난 해 3월에만 해도 69센트에 거래됐었다. 경기 침체 기간이었던 2009년에 80달러까지 달했던 페니의 주식은 이제 겨우 1달러 조금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페니의 신임 CEO인 질 솔토우는, 전임자 마빈 엘리슨이 지난 해 7월 건축자재 회사인 로우스(Lowe's Co.)로 떠난 후, 10월에 페니에 합류했다. 그러나 페니는 아직 공석 중인 판매담당 임원 (chief merchant), 고객담당 임원(chief customer officer), 기획 및 배당 책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회계 책임자가 오는 3월에 떠날 예정이어서 재무담당임원(CFO)도 함께 물색하고 있다.

그러나 115년 전통을 자랑하는 JC 페니가 소매 환경 변화를 외면만 한 것은 아니었다.

▲ JC 페니는 2011년, 애플의 소매영업을 총괄하면서 애플 스토어의 성공을 이끈 론 존슨을 CEO로 영입했지만 그의 개혁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출처= The Mac Observer

JC 페니는 2011년 애플의 소매영업을 총괄하면서 애플 스토어의 성공을 이끈 론 존슨을 CEO로 영입했다. 존슨은 페니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했다. 할인쿠폰 프로그램을 없애고, 기업 로고에서 결제 과정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페니를 ‘트렌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존슨은 수익성 좋던 일부 자체 의류·가정용품 라인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한편,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보덤(Bodum) 같은 고가 브랜드들의 저렴한 버전을 출시했다.

포춘을 포함한 여러 매체가 페니의 변신을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니를 고급 제품을 판매하는 화려한 소매기업으로 탈바꿈시키려고 한 그의 개혁은 완전히 실패했다. 기존 고객은 떠나고 매출은 3분의 1토막으로 떨어지면서 페니는 결국 더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론 존슨의 2년간의 노력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주가와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2015년 1분기까지 갚아야 할 빚은 53억달러까지 불어났다.  

페니는 침몰을 막기 위해 론 존슨의 전임자였던 마이크 울먼을 다시 불렀다. 울만의 전략은 간단 명쾌했다. ‘기본으로 돌아가기’였다. 패션잡화 백화점이라는 회사 이미지에 맞춰 저가 브랜드 입점을 늘리고,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세포라와의 제휴를 강화해 고객 저변을 넓혔다. 그리고 2015년 8월, 건축자재 판매업 체인 홈디포(Home Depot)의 부사장이었던 마빈 앨리슨을 CEO로 영입했다.

엘리슨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전임자의 전략을 유지했다. JC페니의 자체 브랜드 상품을 내놓으며 고객의 선택 폭을 넓히는 한편 자라와 H&M 등 급성장하는 패스트패션 업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비용 절감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일반관리비를 2.7% 줄이고, 14년간 계속하던 아카데미 시상식 후원도 중단했다. 텍사스 플라노에 있는 본사 건물을 경매에 부쳐 매각한 뒤 다시 임대하는 방법으로 5억 달러를 마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두고 “경영난에 처한 기업의 기본이 되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JC페니의 실적은 개선되고 주가는 급등했다. 2015회계연도에 126억 달러(14조 2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모처럼 전년대비 3% 성장했다. 상각전 영업이익(EBITDA)도 6억 달러로 전년대비 96% 급증했다. 동일 점포 매출은 1년 동안 4.5% 늘어나며 9분기 연속 실적 증가를 기록했다. 구조조정용 비용 지출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일회성 경비를 제외한 조정 전 순이익은 1억 2100만 달러에 달했다.

JC페니를 바라보는 월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JC페니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인 ‘CCC’에서 ‘B’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도 ‘긍정적’으로 높였다. 월가 유통업종 애널리스트 2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JC페니 주식에 대한 매수추천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1년 전에는 20%를 밑돌았었다.

FT는 당시 “JC페니의 변화는 하룻밤 동안 이뤄진 게 아니다. 잘못된 경영 판단과 기업 이미지 손상으로 떠나간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는 정상화 작업에 3년이 걸렸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I)는 엘리슨이 경영을 맡은 후 페니의 매출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 텍사스 주 프리스코의 JC페니 매장에서의 마빈 엘리슨. 엘리슨은 이 매장을 상품, 매장 설계 같은 변화를 테스트하는 페니의 ‘실험실’로 삼았다.  출처= Chief Executive Magazine

마빈 엘리슨이 CEO에 있을 때의 일화가 하나 있다.

질문: 백화점에서 남성 신발을 구매하려 한다면, 남성 의류와 여성 신발 코너 중 어느 코너 옆을 보겠는가?  [A] 남성의류  [B] 여성신발

대다수 쇼핑객들은 남성 의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115년 역사를 자랑하는 소매기업 JC페니는 아주 최근까지도 여성 신발 옆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페니 관리자들은 고객층의 80%가 여성이기 때문에 케네디 정부 시절이나 지금이나 대개 여성들이 남편과 연인의 신발을 살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마빈 엘리슨은 이를 두고 “끔찍한 아이디어였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그런 사고가) 여성 신발 코너 공간을 잠식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이 신발을 구매하기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엘리슨은 남성 신발을 남성 정장 옆에 진열할 경우 매출이 증가할지 시험해 보았다. 데이터 분석 결과 판매량이 늘었고, 엘리슨은 미국 내 1000개 매장에 이를 확대 시행했다. 남성들이 직접 정장 구두와 부츠를 구매한다는 가정을 매장에 도입한 후, 페니의 신발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엘리슨은 “우리가 내린 결정 중 가장 똑똑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엘리슨이 페니를 떠난다고 발표하자, 애널리스트들은 “백화점업계의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이 깨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 리테일(Global Dater Retail)의 닐 손더스 대표는 “엘리슨의 사임은 그가 JC페니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엘리슨이 떠난다는 소식에 JC페니의 주가는 6% 급락했다.

섬유공예품 소매업체 조앤스토어(Jo-Ann Stores Inc.)의 대표였던 솔토우 신임 CEO는 자신의 전략을 여전히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니는 지난 주 전략적 변화의 개발과 실행을 위해 컨설팅 회사 매킨지(McKinsey & Co.) 컨설턴트를 회사변화책임자(chief transformation officer)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 페니의 가장 가까운 경쟁자인 시어스는 지난해 10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작업자들이 폐쇄된 매장의 간판을 떼고 있다.    출처= windsorstar.com

피치의 모니카 아가왈 전무는 페니가 아직은 약간의 숨쉴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9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5000만 달러(565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지만, 연말까지 15억 달러의 현금과 대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니의 가장 가까운 경쟁자인 시어스는 지난해 10월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지난 주에 훨씬 축소된 형태로 법정 관리에서 벗어났다. 역시 동종 업체인 메이시스(Macy’s Inc.)와 콜(Kohl’s Corp) 백화점의 할리데이 시즌 매출도 거의 늘지 않았다.

경영컨설팅 회사인 PA 컨설팅 그룹(PA Consulting Group)의 글로벌 소매전략 책임자 앨런 트레드골드는 "기업이 자신의 위상을 수시로 바꾼다면, 고객들은 그 회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를 위험이 있다"면서 "페니는 극복해야 할 몇 가지 심각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핵심 임원의 공백은 그들이 헤쳐 나가야 할 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