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할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유통업계에 미친 변화를 살펴보자. 출처= 이미지21

[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소비와 연관된 라이프 스타일도 조금씩 변화시켰다. 편의점과 대형마트는 피크시간대, 인기 상품 변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온라인에서도 남성의 장보기 비율이 늘어나고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회식은 줄었지만 평일 외식이 늘어났다. 반면 숙취해소 음료, 양주 등의 매출을 감소했고 택시 심야호출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또는 혼자서 휴식과 여가생활을 하는데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달라진 판도의 유통업계를 살펴보자.

편의점 피크타임 당겨지고 맥주·도시락 판매량 쑥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에 따르면,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방문 시간대는 3040세대 연령층에서 비교적 크게 변화됐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3040세대가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이용 빈도가 전년 같은 기간 보다 13.5% 늘었다.

동시간대 이용객 데이터를 상권별로 살펴보면 오피스 상권 내 GS25를 이용하는 3040세대 고객은 17.8% 늘었고 다른 상권은 10.2% 늘어 오피스 상권 내 이용객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1.8% 높았다.

▲ 3040세대 5~7시 사이 편의점 이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편의점 피크시간에 변화가 생겼다. 출처= GS리테일

오피스 상권 내 편의점의 저녁 피크타임 이용 시간대는 오후 6시에서 8시였는데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한 시간 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피크시간변화와 더불어 판매 상품의 매출 비중 비중도 달라졌다. 도시락, 김밥, 샐러드, 과일 등 즉시 취식할 수 있는 간편 식품류의 매출이 증가했다. 오피스 상권만 놓고 보면 28.3%로 증가폭이 더 크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직장인들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자기개발 활동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집에서 간단한 조리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간편 요리 세트도 인기다. GS리테일은 밀키트(meal-kit) 브랜드 ‘심플리쿡’ 구매 고객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 한식 메뉴 매출 비중이 49%로 높게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전인 6월(30.5%) 보다 18.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 밀키트 매출 비중은 지난해 6월과 비교해 지난해 12월 18.5%포인트 늘었다. 출처= GS리테일

GS리테일 관계자는 “밀키트가 일상적인 식사희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주말 특식보다 매일매일 맛있고 간편하게 식사하고 싶은 고객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 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맥주와 소주의 매출도 늘어났다. 매출증가율은 평균 6.3%으로 오피스 상권만 살펴보면 1.8%, 주거 상권에서는 10.4% 늘었다. 주거 상권에서 매출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독한 술로 여겨지는 양주의 매출은 전체 2.7% 감소했다.

▲ 상권별로는 오피스상권 보다 주거상권에서의 맥주와 소주 매출의 증가폭이 크게 나타났다. 출처= GS리테일

GS리테일 관계자는 “최근 홈파티, 홈술족(집에서 간단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문화가 상권별, 주종별 매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형마트 ‘취미용품’ 매출 견인차

주 52시간 근무제는 대형마트의 매출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워라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 개인의 행복과 여가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대형마트에서도 취미생활 관련 용품이 매출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행복이 일과, 일하는 시간과 관계가 깊다는 사실이 확실한 증거로 떠오르면서 소비 패턴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형마트 매출 변화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매장에서 판매되는 850여개 상품군의 매출을 분석했다. 그 결과 취미생활과 관련된 용품이 내수 소비를 이끌었다. 이마트의 올해 히트 상품군은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전동휠, 전기 오토바이 같은 ‘스마트 모빌리티’ 상품이었다.

전년에는 상품군별 매출 순위에서 117위인 스마트 모빌리티는 지난해 19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매출액으로는 전년 같은 기간 보다 330.6% 늘었다.

게임 관련 제품도 많이 팔렸다. 게임용 키보드와 마우스, 헤드셋 등 게임 관련 상품군 매출은 전년 48위에서 지난해 26위로 22단계 뛰었다. 매출액도 117.9% 올랐다.

▲ 대형마트에서 취미생활 관련 상품들은 매출이 큰 폭으로 늘면서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출처= 이마트, 롯데마트

롯데마트에서도 지난 1월부터 지난 11월까지 매출을 분석한 결과 ‘키덜트(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는 어른)’를 위한 장난감과 게임 관련 상품이 효자 노릇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2월 국내에 출시된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등 전자게임기 관련 매출은 91.6% 늘었다.

레저·아웃도어 상품도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여가 시간을 활용해 야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웃도어 관련 매출은 15.9%, 캠핑용품은 24.9%, 등산의류는 600% 늘었다.

온라인몰, 남성 이용객 · 여가선용 소비 늘어

GS리테일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7월 이후부터 11월까지 이용고객을 조사한 결과, 남성 고객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남성 고객의 신규 가입률이 상반기 보다 하반기에 40% 증가했다. 이는 여성 증가율 보다 5배 많은 수준이다. 특히 남녀 구성비가 상반기 32%와 68%였으나 하반기엔 41%와 59%로 남성고객이 9%포인트 늘어나 격차가 줄어들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이른 귀가와 가사일에 대한 공동 분배 등 인식의 변화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 온라인몰 남녀 구성비 상반기 대비 하반기 남자의 비율이 소폭 늘어나면서 남녀 구성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출처= GS리테일

온라인몰에서도 여가선용과 직결된 소비가 크게 늘었다. 게임·이동수단 관련 상품이 인기를 끄는 점은 오프라인과 같다. 그러나 오프라인 매장이 구색이나 공간상 한계로 다루기 힘든 문화생활 관련 용품이 주목받는 점이 두드러진다.

G마켓에서는 미용·뷰티·스파 서비스와 관련된 e쿠폰이 전년보다 무려 296% 더 팔렸다. 뷔페·레스토랑·외식 관련 e쿠폰은 72%, 영화관람권도 27% 늘었다.

취미생활 용품도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구매하고 있었다. 지난 1월부터 11월 옥션에서 취미미술을 위한 각종 드로잉 용품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 보다 271% 늘었다. 액세서리공예(204%), 한지공예(20%) 등 관련 상품의 판매도 증가했다.

빨라진 저녁시간 · 늘어난 외식

직장인들이 저녁시간이 주 52시간 도입 이후 8시에서 7시로 앞당겨졌다. 평일 저녁 외식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카드는 2012년, 2015년, 2018년 3분기 동안 고객들이 결제한 내역 1억8000건을 빅데이터 분석으로 외색 패턴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가장 저녁밥 계산을 많이 하는 시간대는 7시에서 8시 사이로 나타났다. 저녁밥 계산의 60% 가까이가 8시 전에 끝난 것이다. 2012년에는 이와 반대였다. 절반 이상인 52%의 결제가 8시 이후에 이뤄졌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워라밸 문화 확산으로 야근과 회식이 줄어 여가시간이 늘다보니 취미생활이나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한 이동을 전 간단히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회식 · 택시 심야호출↓ 목적지는 문화·체육 시설↑

주 52시간 근무제는 택시 이동 패턴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정시퇴근이 늘어나고 야근과 회식이 줄어들면서 심야 택시 호출 건수가 크게 줄었다. 반면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로 향하는 이용객은 크게 늘었다.

택시 호출 앱(응용프로그램) 카카오택시는 ‘2018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를 발표했다. 300인 이상인 이상 사업장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밀집된 서울 종로구 종로 1~4동, 서초구 서초 2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심야시간의 택시 호출은 줄었고 목적지로는 문화, 체육시설을 설정하는 이용개들이 늘어났다. 출처= 카카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된 7월 이후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카카오택시 호출 비중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소폭 늘었다. 서초동은 4.1%에서 5.8%로, 삼평동은 6.7%에서 8.2%로 올랐다. 반면 밤 11시에서 0시 사이 택시 호출은 서초동 20.4%에서 15.9%로, 삼평동은 21.4%에서 14.6%로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

카카오택시를 호출할 때 입력하는 목적지도 변했다. 영화관(118%), 박물관(101%), 미술관(234%), 전시관(167%) 등 문화시설로 이동하는 승객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체육관(138%), 헬스클럽(159%), 골프장(90%), 테니스장(159%) 등 체육시설로 향하는 승객도 큰 폭으로 늘었다.

카카오택시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 중 하나인 취미, 문화, 교육 분야 소비 증가가 태시 이동 데이터로 간적 증면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삶에 상당부분을 투자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 많아지면서 소비 패턴도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면서 “워라밸과 소확행 등의 사회분위기에 따라 자기답게 쉴 수 있는 완전한 휴식 방법인 여가·취미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이를 대상으로 하는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