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마리 경마 대결에서 순서를 바꿔 필승 비결을 깨닫는 얘기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전해온다. 동양은 옛 중국 제나라 위왕(威王)과 전기(田忌)장군 간의 얘기다. 둘은 시간만 나면 경마를 즐겼다. 그런데 경마를 할 때마다 이긴 사람은 위왕이었다. 당연히 더 좋은 말들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는 번번이 패했다. 위왕의 말들이 속도가 빠르고, 체력도 훨씬 좋았다. 대표 말들을 상중하로 나누면, 우선 위왕의 상마(上馬)는 한 시간에 45리를 달릴 수 있었다. 반면 전기의 상마는 43리 밖에 달리지 못했다. 위왕의 중마는 41리, 하마는 38리였는데, 전기의 중마는 40리 하마는 36리였다. 그러니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었다.

어느 날, 위왕에게 또 패하고 잔뜩 열이 받은 상태로 돌아왔다. 마침 병법가 손빈이 놀러 왔다가 전기의 표정을 보더니,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전기는 위왕에게 패한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자 손빈이 방법을 바꾸면 필승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귀띔했다.

결론은 세 번 싸워서 모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한 시합은 희생하고 나머지 2판에서만 이기면 '3판 2승'이니, 전체 경기에서는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었다. 말을 바꾸거나 하는 특별한 수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말 세 마리의 출전 순서만 바꾸면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위왕의 상마와의 대결에 전기의 하마를 출전시키고, 위왕의 중마에는 전기의 상마를 그리고 위왕의 하마에는 전기의 중마를 대결시키면 반드시 두 번의 대결에서는 승리를 거두게 된다. 첫 시합에서는 45리 : 36리로 참패하게 된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싸움은 전기의 승이 확실하다. 그러면 3번 싸워 2번을 이기는 '2 : 1`의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 번 다 이겨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대세를 그르치게 된다. 낱낱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체의 승이다. 전투에서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얘기들이 많이 전해져 온다. 숱하게 들어왔기에 우리는 이런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과 포기 그리고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알면서도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가 하면 잘 될 거야’라는 함정

전에 근무하던 직장은 전선을 만들어 파는 국내 굴지의 회사였다. 20세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당당히 업계 1위를 차지했었다. 그 회사가 시도하는 모든 것은 국내 최초의 시도였고, 그 회사의 성공은 국내 최초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 들면서 1위 자리를 내 주더니 점점 그 격차가 벌어졌다. 요즘 세대들은 그런 회사가 있었냐는 의문을 가질 정도지만, 한때는 국내 재계 순위 5위권에 포진하면서 재계를 호령하던 때도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지, 전선 종류는 거의 무한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경상도 사투리로 그렇게 많은 수를 ‘오만 가지’라고 한다. 오만 가지라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는 숫자 50,000 그 이상인데, 전선 종류는 얼추 칠만 가지가 넘어간다. 뭐가 그리 많을까 싶지만, 전자제품 내부에 들어가는 아주 작고 가느다란 전선에서부터 자동차용, 선박용, 가정용, 원전용, 신재생에너지용, 해저용 등등 그 범위는 너무나 넓어서 말로 표현하기도 벅차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종류의 전선을 만들어서 많은 곳에다 팔면 좋을 듯 하지만, 오만 가지 전선을 한 회사에서 다 만든다면, 그 회사 경쟁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력 있는 회사들은 점점 하이엔드 제품을 개발하여 제품군을 이동하게 된다. 반면에 낮은 기술력으로도 커버가 되는 로우엔드군은 웬만한 회사라면 다 생산 가능하고 수익성도 떨어지는 제품들이라 손을 뗀다. 자전거 앞뒤 바퀴가 열심히 굴러가야 제대로 속도가 나듯이, 새로 개발하고 진입하는 분야를 잘 선택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 시장에서 팔린다고 저가품까지 욕심 내다가는 돈을 벌기는커녕 앞으로 남고 뒤로 다 까진다.

전선이라는 종목은 국제 동시장의 시세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원자재인 구리 가격이 글로벌시장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반면에 전선을 제조하는 설비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투자되기에 연평균 수익은 5%가 채 되지 못할 정도로 박하다. 때문에 국내에서 제 아무리 돈 잘 버는 회사라 하더라도 전선회사에 욕심 낸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렇게 잘 굴러가던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앞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100억원을 투자해서 수백 명 임직원이 일년 열 두 달, 경상도 사투리로 ‘쌔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해봐야 5억원도 남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그건 시장에 ‘뉴 페이스’가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위 ‘Bean Counter’라고 비유되던 재무통이 회사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본업보다는 타 업종 M&A, 부동산투자, 채권투자 그리고 대여 이자 등에서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한참 동안 한눈을 팔았다. 본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해외에서 젤 잘나가는 기업을 송두리째 사오기 위해 그간 벌어둔 돈에다가, 메인 공장을 저당 잡힌 돈까지 합쳐서 과감히 질렀다. 한동안은 각종 투자 수익에 주가도 상승하는 장밋빛 전망이 더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황홀경에 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수익률 2~3%의 본업에 대한 투자 건의는 면박감일 뿐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에 먹구름이 끼는 듯 하더니 어느 틈엔가 전 세계가 경악할만한 금융위기라는 쓰나미가 덮쳐오자, 회사는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버렸다. 멀리서 뒤쫓아 오던 2등이 어느 틈엔가 앞지르는 듯 하더니 갈수록 치고 나가는데도 뒷심이 부족하여 뒤쫓기에도 벅찼다.

설비 업그레이드며 투자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가지기 위한 해외 출장도 등한시 한 상태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은 목까지 타오르기 시작했고,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그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기 위해 행했던 것들이 칼날이 되어 돌아오면서 나중에는 입고 있던 ‘빤스’(팬츠)까지 팔아야 했다.

들었던 얘기로는 예전에 여유 자금을 경기도 모처의 부동산에 후순위 채권으로 투자를 했던 것이 그야말로 대박이 나서 원금의 세 배가 되는 수익을 거두면서, 본업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됐다고 한다. 만약 그때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했다면 그런 엄한 투자에 한눈 팔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건실한 회사가 쓰나미 같은 파고의 부침을 겪지 않았을 것 아닌가 생각해 보지만, 지나간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이다.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 아니면 후회만 남길뿐

2018년 12월 한달 동안에만 7골 3도움을 기록한 월드 클래스 손흥민의 예상 이적 시장 가치가 한화로 1,200억원을 웃돈단다. 유럽 5대 리그를 통틀어서 33위에 해당하고 아시아에서는 단연코 1위다. 한국 축구의 양대 전설인 차범근과 박지성이 “한국 축구의 전설로는 이미 우리를 뛰어 넘었다”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 손흥민 선수에 대한 자부심과 그 이름값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성남 일화와 울산 현대의 프로 축구 선수였으나, 28세에 부상으로 K리그에서 은퇴했다. 그 뒤 강원도에서 유소년 축구단 감독으로 축구 꿈나무를 길러내며 구슬땀 흘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아들을 직접 가르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5살 무렵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 무려 16살이 될 때까지 정식 경기에는 내보내지도 않았단다. 대신 매일 6시간씩 오로지 기본기에만 집중했다. 매일 양발 슈팅 1,000개씩, 그리고 줄넘기 2단 뛰기를 수 천 번씩 시켰다. 매일 새벽 어린 아들과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미디어의 관심도 심지어 결혼도 나중으로 미루는 가르침을 심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인 손흥민을 길러낸 데에는 무려 15년 이상이 걸렸다고 했다. 처음 십 년 동안은 오로지 기본기만 담금질 했기에 오늘날의 월드스타 손흥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결과 지금 꽃으로 활짝 피어나고 있다.

예전에 브라질 축구 유학을 대하는 한중일 세 국가의 비교라는 농담이 있었다. 느긋한 중국은 아예 애를 브라질에서 탄생시켜 준비하고, 일본은 철저한 준비성 때문에 적어도 3년 이상의 유학 기간을 주는데, 한국은 석 달도 길다며 그 짧은 기간 동안 골고루 맛만 보고 와서 유학파라고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던 위왕과 대결해온 전기는 그나마 훌륭한 말이나마 보유했었기에 방법을 바꿈으로써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제2의 손흥민을 만들기 위해서는 15년도 짧다고 하는 아버지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요새 웬만한 기업에서는 돈이 될만하면 자신에게 말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덜컥 응하기부터 하는 것이 문제다. 기회만 먼저 잡아 놓고 그 담부터 잘 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적은 투자 규모라면 손실만 보겠지만, 큰 투자라면 회사가 망한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준비 없는 우연은 사실 아무 기회가 되지 못한다. 후회만 남게 될 뿐이다. 사실 우연 없는 준비도 아무런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다. 월드스타 손흥민도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단단히 잡은 데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