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출처=유한양행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급성장하고, 글로벌 매출 10위권 내 의약품 중 8개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 1400조원 중 약 1000조원은 여전히 화학의약품 시장이다. 한국 전통 제약사들은 대개 내수시장에서 화학합성의약품 복제약(제네릭)으로 과열경쟁을 하다 보니 사업 확대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매출 상위권 제약사를 중심으로 개량신약, 혁신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다양한 질환에 대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사업 전략을 다각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하는 등 제약바이오 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구축하고 있어 주목된다.

전통 제약사, 기존 화학합성의약품 R&D 능력 놓치지 않아

바이오시밀러 등 바이오의약품이 단일 의약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상위권 매출을 기록하는 것과 의약품 효능 등을 두고, 전문 연구기관 곳곳에서는 의약품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이 케미칼의약품(화학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분석한 한국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봐도 2017년 총 파이프라인 수 943개 중 합성의약품이 407개로 43.6%, 바이오의약품이 527개로 56.4% 비중을 나타낸다. 그러나 임상 1상과 3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 수는 합성의약품 수가 앞서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제약바이오기업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신약개발이다”면서 “바이오의약품은 신약 개발이 매우 어려우므로 장기적으로 화학합성신약 6 대 바이오신약 4 비율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혁신신약 R&D 강자로는 한미약품과 JW중외제약이 꼽힌다. 한미약품은 공개된 혁신신약(화학합성신약) 파이프라인 9개 중 이미 7개가 임상 1상 이상 단계를 진행하고 있으며 Pan-HER 저해제인 다중표적 항암신약 ‘포지오티닙’은 미국계 제약사 스펙트럼에 기술수출돼 임상 2상 중간 결과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경구용 항암신약 ‘오락솔’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이는 주사로 투여하는 항암제 ‘파클리탁셀’을 경구용으로 제형을 바꾼 신약이다. 주사제를 경구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 ‘오라스커버리’가 적용됐다. 이는 항암제 경구 흡수를 방해하는 막 수송 단백질인 P-gp를 차단하는 기술이다.

미국 바이오기업 아테넥스에 기술수출된 오락솔은 임상 3상을 진행하고,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라무시루맙’과의 병용요법 임상도 추가해 적응증을 확대하고 있다. 강양구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한미약품은 전통제약사 중 매출액 대비 R&D 비용이 18%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면서 “기술수출된 파이프라인이 2019년 중 판매허가 완료 시 추가 마일스톤과 러닝 로열티를 받을 것으로 기대 가능할 전망이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2019년부터 그동안 투자한 신약개발 결과물을 글로벌 시장에 내보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은 공개된 9개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중 5개가 임상 1상 이상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이 높은 파이프라인은 글로벌 제약사 레오파마에 기술수출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JW1601’과 배출저하형 통풍에 유효한 통풍 신약후보물질 ‘URC102’다. JW1601 기술수출은 확정 계약금 1700만달러, 총 규모 4억달러의 계약이다.

▲ 중외제약이 레오파마에 기술수출한 아토피 치료제 'JW1601' 기전. 출처=JW중외제약

JW1601은 히스타민 H4 수용체 저해제로 히스타민 H4는 체내에서 면역반응과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이는 전임상 단계에서 면역 사이토카인의 분화와 면역 세포들의 이동을 낮춰 염증 반응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입증했고, 가려움증 유발 인자가 분비되는 것을 저해해 가려움 증상까지 완화하면서 아토피 증상을 치료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통풍 신약후보물질 URC102는 2018년 11월 임상 2b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바람만 닿아도 고통스럽다는 급성 통풍 발작이 일어나면 즉시 약물을 투여해 체내 축적된 요산을 배출해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하다. URC102는 요산이 배출되지 않고 몸속에 쌓이는 ‘배출저하형’ 통풍에 유효한 신약후보물질이다.

기존에는 전통 제약사들이 시장성이 큰 항암제를 중심으로 큰 금액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기술수출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제형을 바꾼 항암제나 아토피와 통풍 등 다양한 분야로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화학합성신약, 시장성 확보 가능한 이유 무엇?

1996년 한 해 동안 FDA로부터 허가받은 화학합성신약은 50여건이 넘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큰 폭으로 줄고 있는 추세였다. 이는 여러 적응증에 대한 화학합성신약이 출시되면서 후보군이 줄어 개발 장벽이 높아진 것이 큰 원인이었다. 이에 바이오신약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기존 화학합성의약품으로 치료되지 않는 의료 미충족 수요가 높아지면서 환자 맞춤형 화학합성신약 시대가 시작돼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허가한 화학합성신약과 바이오신약 수. 출처=미국 식품의약국(FDA)

화학합성의약품은 기존에 대다수 환자군을 대상으로 동일한 치료를 진행하다 보니, 환자의 각기 다른 유전적 특성 등이 반영되지 않아 치료효과가 낮고 부작용이 높은 단점이 있었다.

기존 의약품으로 치료되지 않는 환자의 요구에 따라 바이오의약품보다 가격이 낮고 개발이 빠른 화학합성신약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신약이나 개량신약 중에서도 기존 약으로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미충족 수요가 있다”면서 “화학합성의약품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FDA로부터 허가받은 화학합성신약은 250개다. 같은 기간 바이오의약품은 71개를 허가받았다. 허가된 신약 중 화학합성신약이 약 79% 비중을 나타내는 등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 제약사를 중심으로 획기적인 신약 창출 사례는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화학합성신약이 성공하기 위해선 차별성이 중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화학합성의약품의 특성을 보여준 사례는 유한양행이 2015년 미국 바이오기업 제노스코로부터 1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기술도입해 글로벌 제약사 J&J의 자회사 얀센에 확정 계약금 5000만달러, 마일스톤 등 단계에 따른 계약금 12억500만달러에 기술수출한 ‘레이저티닙’이다.

레이저티닙은 비소세포폐암 중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T790M이라는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를 타깃으로 둔 3세대 EGFR억제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폐암 종양환자의 약 30%는 EGFR 돌연변이를 나타낸다.

1세대 EGFR억제제는 초기에 효능이 나타나지만 곧 내성이 생기고, 2세대 약은 1세대의 독성을 넘지 못했다. 이전의 합성의약품보다 더 정확하고, 안전성을 갖춰 차별화한 레이저티닙이 시장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유한양행 측은 “레이저티닙은 우수한 항암 효과뿐만 아니라 고용량 투여 시 피부 독성 등 부작용 발생이 적어 안전성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