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ICT 업계의 강자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나란히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다양한 디앱(DApp, Decentralized Application) 생태계와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ICT 기업들이 가진 강력한 플랫폼 장악력을 무너트려 토큰 이코노미에 이르는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일각에서는 '만약 성공한다면 국내 시장 전략도 새롭게 써야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 네이버와 카카오의 블록체인 전략이 눈길을 끈다. 출처=갈무리

네이버와 카카오 블록체인 확장일로
네이버의 블록체인 플랫폼 전략은 라인이다. 네이버 계열사 라인플러스가 블록체인 기술 자회사인 언블락을 설립했으며, 라인은 일본 자회사 라인 파이낸셜을 설립해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를 세웠다. 라인의 자체 암호화폐인 링크는 총 10억개며 8억개는 이용자가, 2억개는 라인이 보유하고 있다.

라인은 지난 9월 일본에서 라인 토큰 이코노미를 열어 신규 디앱 5개를 공개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하는 포캐스트와 지식 공유 플랫폼 위블은 현재 일본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여기에 사진을 촬영한 후 정보를 공유하는 파샤, 식당 리뷰 플랫폼 타파스, 여가와 여행 추억을 공유하는 스텝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라인은 5개의 디앱을 내년까지 모두 출시하는 로드맵을 세운 가운데 링크체인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링크스캔도 공개했다. 운영의 투명성을 살리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토큰 이코노미의 안정적인 구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카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라운드X의 클레이튼을 중심으로 11월 프라이빗 세일에 돌입하는 한편 기술력을 한껏 끌어 올리고 있다. 내년 2분기 메인넷 공개를 앞둔 가운데 거래(Transaction) 성사 시간을 1초 안팎으로 줄였고 초당 거래내역수(TPS)를 1500까지 올렸다는 평가다. 현재 툴킷과 튜토리얼도 모두 공개됐다.

디앱 파트너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 1차 디앱 파트너가 확정됐다. 게임에서는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위메이드트리와 만나 인기 게임 콘텐츠를 블록체인과 연결하며 콘텐츠에서는 픽션 네트워크를 비롯해 코스모체인, 에어블록 프로토콜, 휴먼스케이프 등과 손을 잡았다.

11월에는 티켓몬스터의 신현성 대표가 주도하는 테라와도 손을 잡았다. 테라의 결제 시스템에 클레이튼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클레이튼과 협업을 통해 테라는 대중적인 결제 서비스의 필수 요건인 속도, 안정성, 신뢰성 등을 강화해나갈 전망이다. 두 회사는 클레이튼 플랫폼에 스테이블 코인을 어떻게 도입할 지도 연구한다.

그라운드X의 한재선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수천만 이상의 유저를 보유한 이커머스 서비스들과 얼라이언스를 구축한 테라와 협업은 클레이튼이 대규모 서비스를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테라의 결제 서비스 같이 속도와 안정성이 중요한 대중적인 서비스를 위한 블록체인 에코시스템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2차 디앱 파트너가 확정됐다. 파트너들은 클레이튼의 테스트넷을 사용하며 기술적 보완사항 등을 제안해 플랫폼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메인넷 오픈에 맞춰 디앱 서비스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네이버 라인 중심의 블록체인 디앱 생태계는 대부분 일본에서만 구동되기 때문에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기업에 가까운 라인의 행보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반면 카카오는 국내 디앱 생태계와 빠르게 연결되고 있다. 네이버 포털이라는 강력한 ICT 플랫폼을 핵심으로 삼는 네이버가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통해 블록체인을 운용하는 장면과, 카카오가 자체 자회사를 중심으로 디앱 생태계를 구축하는 장면도 색다르다.

▲ 클레이튼 디앱 생태계가 커지고 있다. 출처=카카오

현재의 문제에 집중한 디앱
일반 이용자 입장에서 모바일의 앱과 블록체인 기반의 디앱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겉으로 보이는 구동 방식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만 디앱이 기존 모바일 앱과 비교해 기상천외한 프로젝트에 동원될 수 있다는 차이점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의 포캐스트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일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 내부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탈 중앙화의 블록체인이라는 변수는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을 전제해 소위 '예지'라는 과감한 성과에 도달할 수 있다.

단순히 기상천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탈 중앙화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되짚어 낼 여지도 존재한다. 카카오 클레이튼과 연결된 스핀 프로토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핀 프로토콜은 인플루언서와 상품공급자를 직접 연결해 미들맨을 제거하고 인플런서의 실질적 판매 영향력을 증명(Proof of Fame : S.Fame)해 불투명한 인플루언서 커머스 시장에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MCN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인플루언서의 정량평가다. 광고주가 인플루언서에게 상품을 제공해 광고비를 집행했을 경우, '도대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나온다. 단순히 페이스북 '좋아요'로 평가하기는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고, 이런 문제가 축적될수록 관련 산업의 불투명성은 커진다. 스핀 프로토콜은 이에 착안해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 특히 '세세하게 모든 정보가 기록되는 점'에 주목한다. 스핀 프로토콜은 인플루언서에게 도달하는 고객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세밀하게 확인해 이를 정량평가에 활용하고, 궁극적으로 데이터 내제화를 꾀한다.

이성산 스핀 프로토콜 대표는 스핀의 비즈니스 모델을 자세히 설명한 후 “블록체인을 활용해 판매자와 인플루언서, 구매자의 중간단계를 생략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모든 거래와 재원은 합의되고 분배된다"고 설명했다. 즉, 기존 중앙 집중형 플랫폼에서 무시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던 세밀한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정리해 정밀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셈이다.

OTT 업체 왓챠의 콘텐츠 프로토콜도 마찬가지다. 제작사와 스트리밍 플랫폼, 시청자를 연결하는 블록체인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서 탈 중앙화에 기인한 세밀한 정보 수집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는 제작사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한 후 합당한 가격을 책정받을 가능성은 낮았다. 재생 수 수준의 데이터만 받을 뿐 그 이상의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업계의 관행으로 진행되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콘텐츠 프로토콜이 가동되면 탈 중앙화의 세밀한 기록 플랫폼이 가능해져 제작사의 콘텐츠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를 다시 적절한 콘텐츠 배급, 노출 전략에 사용할 수 있다.

기발한 프로젝트의 구현과 지금까지의 중앙 집중형 플랫폼이 보여준 약점을 보강하는 것 외에도 블록체인 디앱의 강점은 토큰 이코노미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한 마디로 플랫폼 기여도가 높으면 보상을 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스핀 프로토콜의 경우 인플루언서를 통해 물건을 구입한 이는 토큰을 받고, 콘텐츠 프로토콜에서 데이터를 제공한 시청자도 토큰을 받는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공개한 픽썸도 이러한 토큰 이코노미 전략을 그대로 국내에 차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다양한 디앱이 나오고 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가 그들의 손을 잡고 있으나 아직 디앱의 성장성에는 많은 의문부호가 달린다. 무엇보다 암호화폐 시세가 하락하는 한편 규제 문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이버와 카카오 입장에서는 다양한 디앱을 포용해 최대한 기술력을 강조해 몸값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두 회사의 디앱 사랑이 이어지는 이유다.

▲ 탈 중앙화 SNS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출처=시그마체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아이러니'
네이버와 카카오가 다양한 디앱을 모아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에 나선 가운데, 업계에서는 그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디앱은 탈 중앙화와 세밀한 기록을 가진 블록체인이라는 플랫폼에 기반하며 이는 권력의 평준화와 투명성을 담보로 한다. 강력한 중앙 집중형 ICT 플랫폼으로 몸집을 불려온 네이버와 카카오 입장에서는 오히려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네이버는 비교적 선명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진출한 라인을 통해 디앱 생태계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인이 사실상 일본 기업에 가깝기 때문인데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일본 시장을 석권했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전략도 깔렸다는 평가다. 카카오도 국내 디앱과 연결되고 있지만 일본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는 일본에 있다.

네이버는 태생부터 일본 디앱을 동원해 일본에서 사업을, 카카오는 국내 디앱들을 동원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분위기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일본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이유는 글로벌 ICT 대기업에 대한 반격으로도 풀이된다. 글로벌 ICT 업계로 눈을 돌려보면 블록체인과 디앱 생태계는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다. 당장 구글은 블록체인 영역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 외 거인들도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대목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블록체인으로 글로벌 ICT 거인들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다.

관건은 블록체인이 글로벌 ICT 기업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다. 의견이 갈린다. 다만 블록체인 자체로만 보면 가능성이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모두 강력한 중앙 집중형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만약 탈 중앙화와 세밀한 기록 등으로 무장한 블록체인 플랫폼이 대세로 부각될 경우 순식간에 판을 뒤집을 수 있다.

싸이월드 창업주로 잘 알려진 형용준 시그마체인 기획이사는 지난 8월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한국블록체인협회가 개최한 'K-블록체인 2018' 컨퍼런스 무대에서 "S커브의 정점을 찍은 SNS들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주주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손쉽게 추출하고 있다”면서 MS와 넷스케이프, 구글과 옐프, 페이스북과 징가, 트위터와 써드파티 앱을 비판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형 이사는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는 앱 개발자들로부터 30%라는 높은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앱 등록을 거절하거나 서드파티 앱의 기능을 베껴 자체 앱에 은근슬쩍 추가한다”면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기존 중앙집권형 플랫폼들이 네트워크 참여자들과의 상생과 생태계 발전을 외면하고 사용자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CO(암호화폐공개)를 통해 사용자 주주를 모으고 이들을 통해 사용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고 수익도 공평하게 나누는 분산형 SNS야말로 신뢰를 기반으로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는 철이 든 SNS”라면서 “합의와 감시를 특성으로 하는 분산형 생태계에서는 가짜 뉴스와 과도한 광고가 자연스럽게 걸러질 뿐만 아니라, 개인 콘텐츠에 대한 보호장치도 마련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 세밀한 기록이 세계를 호령하는 중앙 집중형 플랫폼의 결정체 구글과 페이스북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글로벌 무대에서 블록체인 역량을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블록체인 전략에 다양한 이견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두 회사의 정체성에 의문을 보이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야 두 기업이 도전자지만, 국내에서는 두 기업이 중앙 집중형 플랫폼의 대명사기 때문이다. 디앱 전략을 키워 대세로 만들고 글로벌 거인들을 무너트려도 내부의 정체성과는 역시 맞지 않는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거인이 듯, 국내 시장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거인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블록체인 전략이 플랜B에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활로를 뚫어보기 위해 블록체인을 키우고 있으나 이것이 현재 사업의 핵심은 아니다. 당장 네이버부터 크게 보면 아마존 모델을 추구하며 원스톱 패키지 솔루션 플랫폼이라는 중앙 집중형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두 회사가 일본에서 블록체인 법인을 운영하는 것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능성 타진 수준이며, 국내에서 진행되는 핵심 사업은 여전히 중앙 집중형 플랫폼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