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

우주는 135억년 전 빅뱅으로 탄생했다. 지구생물은 약 38억년 전 자연선택의 지배하에 생겨났다.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250만년 전 지구상에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것은 15만년 전이다.

10만년 전만 해도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당시 지구라는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호모 에렉투스(동아시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유럽과 서아시아), 호모 솔로엔시스(인도네시아) 등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공존했다. 모두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컸고 직립보행을 했다. 도구도 사용했다.

그런데 7만년 전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세 가지 대혁명을 겪으며 지구 전체의 지배자이자 생태계 파괴자로 등극하였다. 인간의 진로를 결정한 대혁명은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1만2000년 전의 농업혁명 ▲약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이런 역사발전에는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 등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인간은 인지혁명의 시작으로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섰고, 언어(뒷담화)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를 형성했다. 수렵채집에 머물던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했다. 늘어난 인구는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를 무기 삼아 강력히 통제했다. 농업의 발달은 빛과 어둠의 양면을 지녔다. 부의 증가와 정착생활로 이어졌으나 사람들이 돈을 맹신하게 됐고, 돈의 맹신은 사회적 모순을 야기했다.

500년 전 과학혁명은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일 수도,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40억년간 자연선택의 지배를 받아온 인류가 이제 신의 영역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저자는 “세 혁명은 인간과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책이 단순한 인류역사서는 아니란 얘기다. 저자는 10만년 전 최소 여섯 종의 인간들이 공존하던 지구 평원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말한다. “사실은 이렇다. 200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장구한 인간사에 결코 자비가 없었다.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대형 동물군들이 홍수에 쓸려가듯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복종한 소, 돼지, 양, 개 등 몇몇 종만이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산업적으로 강제사육 당하는 그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유럽 사람들에게 돈은 죽음도 불사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활용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했다. 노예산업에 돈을 투자한 평범한 유럽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무관심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이런 자본은 서구 세계의 과학과 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인간의 과학은 구글 자회사 칼리코가 추진 중인 ‘길가메시 프로젝트’처럼 생명연장과 불사(不死)에 도전하고 있다(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전설적 왕으로 영생을 얻으려 항해에 나섰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 발달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이런 세상이 곧 도래할지 모른다.

저자의 세계관은 일견 비관적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지금보다 더 강력했던 적은 없지만 선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인간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길목에 놓여 있지만 이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알지는 못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본주의, 민족주의 등의 의미들은 망상일 뿐이고, 개인의 환상을 집단적 환상에 맞추어 행복을 찾으려 해도 결국 자기기만이다. 하나같이 우울하다. 다만 행복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행복에 대한 가능성은 더 많이 열려 있다며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 것인지 묻게 된다. 실리콘을 기반으로 하는 로보사피엔스(Robo-Sapiens)가 아닌 호모 사피엔스(Homo-Sapiens)라면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