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74

[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큰 사람’보다 ‘큰 이름’만 탐내는 시대

공유
   

위대하다고 하는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명성을 얻기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타고난 재능이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과 연계된 경우가 많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강철 같은 의지로 밀고 나가야 했고,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른 욕망을 가차 없이 배제해야 했다. 때로는 수십 년, 아니 평생을 경멸 속에서 오해 받으며 살기도 했다. 많은 인물들이 살아생전에는 천대와 괄시를 받다가 사후에 그것도 아주 먼 훗날 위대함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영웅이 되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지만, 영웅의 실상을 들여다 보고 나서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웅이 되기 보다는 그냥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영화나 TV에서, 인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라 할 수 있는 심장과 폐를 다루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연출하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은 인상적일 지 모르지만,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에 투입되어 선장을 수술했고, 2017년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수술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어느 중증외상센터의 교수도 그의 행동에는 영웅의 모습이라며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기피하게 된다.

 

사악한 1등은 기억되지만 숭고한 2등은 잊혀져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위대한 명예는 주정뱅이들과 모험가, 협잡꾼, 공상가, 범죄자, 광인, 정신분열증 환자, 추적 망상증 환자 그리고 사기꾼에게 돌아간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전집에 나오는 위인들 중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반면에 진정 위대한 정신과 영혼의 소유자들임에도 위대한 명예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악한 1등은 기억되지만 숭고한 2등은 역사가 기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어도 1등을 고집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난쟁이는 장수가 되기 어렵고 말더듬이는 연설의 거장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말더듬이와 난쟁이는 건강한 보통의 사람들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천재적인 성취로 바꿀 동기가 휠씬 강하고 절박하다.

위대함과 천재성에 있어서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인물이 있다. 연극, 영화, 뮤지컬, 소설,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삶은 비참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영원불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신이 선택한 천재 모짜르트고, 다른 한 사람은 스스로 신을 사로잡은 천재 베토벤이다. 이들의 천재성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기에, 신이라는 존재를 끌어다 수식을 할 수 밖에 없다.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나는 그 많은 연주자들이 제각각 소리를 낼 수 있게 기호를 써서 아름다운 조합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누구나 그런 영원 불멸의 위대함을 꿈꾸지만, 그 삶은 흉내조차 내기 싫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몇 년 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아마데우스’라는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볼프강’이랑 ‘아마데우스’랑 ‘모짜르트’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 하는 개그도 있었던 것 같다. 헤롤드 핀터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평가 받던 피터 쉐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때가 마침 초연이었다.

살리에르가 죽기 직전에 평생을 모짜르트를 억압한 자신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때가 모짜르트 사후 30년쯤 후였고 베토벤이 한창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신으로부터 부여된 천재성과 스스로 노력해 신을 사로잡은 천재로 대별해 글을 썼던 피터 키비의 ‘천재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라는 책 내용이 오버랩됐다.

 

위대함은 됐고, 일단 유명해지는 것부터

이렇게 오래 전에 위대한 인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 위대한 인물의 출현 이면에는 무언가 신의 의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위대한 인물의 출현 이면에는 언론 담당 매니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명인과 영웅을 날마다 혼동한다. 어떻게든 성공한 자에게는 언론으로부터 온갖 미사여구를 부여 받는다. ‘미다스의 손’이니 ‘투자의 귀재’ ‘영업의 달인’ 등등. 하지만 어떤 언론도 거의 위대한 성공을 할 뻔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주식 투자에서 우리는 실패한 사람들은 알 지 못한다. 사실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뿐이다. 때문에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은 실패한 사람이 수십 수백 배는 더 많다.

나도 어렸을 땐 과학자가 꿈이었다. 커서 되고 싶은 꿈이라는 것이 실은 그 시대 트렌드의 반영이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 대부분의 꿈은, 대통령, 장군, 과학자, 선생님 정도였다. 위인전에서 접했던 훌륭한 사람들이 모델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틈엔가 스포츠 선수, 의사, 사업가, 연예인으로 되더니 지금은 건물주와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예전 순박했던 그 시절 아이들이 꾼 꿈에는 돈이나 물질적인 부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 꿈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되어 버렸다. 돈 잘 버는 프로 축구나 야구 선수, 아니면 돈 잘 버는 의사나 기업가, 돈도 잘 벌고 인기도 많은 연예인이 꿈의 주류였다. 이제는 돈 잘 버는 건물주와 혼자서 재미있게 돈 버는 크리에이터가 꿈이 된 시절이다.

아이들이 이젠 알아버린 것일까? 소위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들이 사실은 누구나가 바랄 정도로 잘 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연예인들도 엄청난 교육과 노력의 결과로 조금 반짝 하다가도 후속 작품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돼 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을 이미 들켜 버렸다. 의사도 멋 있어 보이지만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3D가 되어가는 신세다.

‘아빠, 우리 반에 전교에서 1등 하는 애가 있어요’라고 애가 이야기하면 무엇을 느끼게 될까? 남의 일일 뿐이다. 우리로 대별되는 요즘 사람들은 여론이 욕을 하면 어느새 동조되어 무엇을 잘 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함께 욕 하게 된다. 여론이 칭찬하면 그 사람은 어느새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다. 이 역시 남의 일일 뿐인데도 말이다.

위대함과 유명함,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우리가 배울 역할 모델을 없애는 일과 같다. 우리는 유명하기 때문에 위대하지 못한 사람과 위대하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을 구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스타의 숙소에 떼로 몰려가 밤을 지새고, 없는 돈을 갹출해서 조공을 바치기도 한다. 세계에서 1등하는 전자제품 회사 소식에 으쓱하게 되고, 일본 선수를 메다 꽃아 버리는 국가 대표의 모습에 감동한다. 여론이 전하는 그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추앙한다. 유명해짐과 동시에 위대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순위가 밀리거나 일본 선수에 의해 쓰러지면, 순식간에 위대함이 소멸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얘기한다. ‘위대함은 됐고, 일단 유명해져야 한다’고, 사실 나 역시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18.12.18  19:44:24

<경제를 리뷰, 미래를 본다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필자의 견해는 ER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의 기사더보기

ad73
SPONSORED
ad61
ad62

헤드라인

ad63

중요기사

default_side_ad1

최근 전문가칼럼

ad66
default_side_ad2
ad36

피플+

1 2 3
set_P1
1 2 3
item49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57
default_setNet2
ad67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