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20년 전 농구의 인기를 꺾을 스포츠는 없었다. ‘점보시리즈’에서 ‘농구대잔치’로 이어지던 1990년대. 국내 농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대학농구가 인기 많았다. 당시 ‘람보 슈터’ 문경은과 ‘컴퓨터 가드’ 이상민, ‘에어본’ 전희철 등은 지금의 방탄소년단(BTS)만큼 국내에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른바 ‘응원부대’라고 불리던 소녀 팬들이 선수들 집 앞에 주둔하기도 했다. 성탄절이나 새해, 정규시즌이 끝나면 팬들의 선물 세례로 집 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였다. 리그 우승후보인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맞붙는 날이면 가족들이 TV 앞에 오순도순 모여 경기를 시청했다.

그러다가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인기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모 방송국이 저녁 6시에 일본 만화 <슬램덩크>를 방영하면서 인기는 다시 올라섰다. 학교부터 길거리 농구장까지 많은 이들이 농구를 즐기기 위해 모였다. 이 시기를 겪어온 세대들은 직장인이 되어 다시 모였다. 바로 한국GM 농구 동호회 ‘제우스(Zeus)’다. 이들의 열정은 아직도 뜨거운 코트를 가른다.

▲ 한국GM 농구동호회 '제우스'.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

인천지역 전통강호

한국GM 농구 동호회 제우스의 시작은 2004년부터다. 제우스라는 이름은 지난 1999년 대우가 인수한 ‘대우 제우스 프로농구단’에서 따왔다. 서울 아마추어 농구협회 부회장을 할 정도로 농구에 애정이 많은 하창호 한국GM 해외영업부 상무가 기반을 다졌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면서 제우스가 결성됐다. 5on5클럽으로 풀 코트 농구를 주로 하지만, 3on3부터 심판까지 다양한 농구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제우스는 전국 직장인 농구대회 ‘점프볼(The K직장인농구리그)’에서 상위 랭크에 오를 만큼 실력이 출중하다. 아마추어 농구대회에서 명성이 자자한 구청장배 농구 대회 중 부평구청장배 대회에서 2014년과 2015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IT 농구대회에서 삼성SDS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외에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했다.

직장인 농구 대회에는 이름난 여러 팀이 있다. 삼성이 계열사가 많은 만큼 스쿼드가 탄탄하다. 프로농구팀 ‘창원 LG 세이커스’로 유명한 LG도 직장인 농구에서 소문난 실력을 갖췄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교육청 팀이 유명하고, 아마추어 이상급 실력을 지닌 팀으로는 101경비단 농구팀이 있다.

제우스에서 활동 중인 이창원 한국GM 기술연구소 구매팀 차장은 “아마추어 직장인배에 출전하면 평균 4강까지 오른다”면서 “한국GM 제우스는 현대제철, 동부제강, SK 등 기업들이 인천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전통 강자로 유명하다”라고 설명했다. 이 차장은 “5on5 시합을 위해 체력 훈련을 따로 할 만큼 동호인의 농구 의지가 굳세다”라고 덧붙였다.

회사가 외국계다 보니 특별한 해프닝도 있다. 제우스는 직장인 농구 대회에서 ‘외국인 선수’를 최초로 출전시킨 동호회다. 제우스 입장에서는 사내 임직원인 외국인에게 농구 동호회를 권유하고 함께 즐기자는 의미가 강했지만, 다른 회사들은 ‘이건 반칙 아니야?’라는 시선이 종종 있었다. 이 때문에 직장인 농구 대회에 ‘외국인 선수 출전은 1명으로 제한’하는 직장인 대회 룰이 생겼다고 한다.

동호회 인원은 약 30명 정도다. 생산직과 사무직 구분 없이 함께 농구를 즐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시합하면 13~15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참여 인원은 준수한 편이다. 다만 평균 연령은 36세로 나이대가 높다. 이 차장은 “아무래도 나이가 많다 보니 수비와 공격, 공격과 수비에 힘이 부친다”면서도 “다만 오랫동안 함께 뛰었기 때문에 호흡은 수준급”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의 제우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인천시에 위치한 삼산체육관에서 한국GM의 A 상무가 농구 시구를 했는데, 당시 프로농구단 전자랜드 엘리펀츠 유니폼이 아닌 제우스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진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동호회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제우스는 이를 키우는 조력자다. 이 차장은 “제우스가 농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회사 분위기가 밝아진다”면서 “대회 상황과 자랑거리들이 사내 곳곳에서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사실 제우스가 이렇게 활동해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GM의 회사 방침 덕이 크다. 한국GM은 9to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가 명확한 회사다. 퇴근 이후 동호회 활동이 비교적 수월하다.

▲ 한국GM 농구동호회 '제우스'가 농구 시합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

인생을 함께 걸은 ‘형과 동생’

수요일 저녁 이들이 모인 농구 코트에서는 특별한 존칭이 쓰인다. ‘형’과 ‘동생’이다. 회사에서 선배와 후배, 심지어 임원들도 농구장에선 형·동생으로 부른다. 농구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직함은 버린다. 순식간에 한 점을 잃은 팀이 빠르게 수비 전환할 때 “형, 4번 마크! 빨리!”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벗어나 그들이 즐겨온 농구라는 운동을 통해 가까워지다 보니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됐다.

두터운 관계는 인생 선·후배로도 발전했다. 이창원 차장은 “회사에 다니다가 보면 누구나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들은 퇴사를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농구 동호회를 통해 마음을 돌린 사람들이 더러 있다”면서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친구 관계가 제우스에서 형성되면서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즐기는 농구는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수단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역할로 조금씩 발전해 나간 셈이다. 최근 회사 상황이 위태했음에도, 그들은 코트 안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시합에 임한다. 이 차장은 “동호회를 통해 회사에 애정을 느낀다”면서 “제우스가 그랬고 다른 친구들도 공감하고 있다. 회사가 어렵더라도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늘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믹리뷰>가 만난 제우스 동호인들은 농구 코트를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혼신을 다했다. 평균나이 36세지만 어렸을 때 학교 친구들과 볼을 주고받은 모습처럼 활기가 넘친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근심과 걱정은 던져버린 모습이다. 이들에게 농구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수단이자 사회생활 버팀목으로 앞으로도 유의미할 것이다.

▲ 한국GM 농구동호회 '제우스'.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