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18 정상회의가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 속에 공동성명을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출처= APEC.org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파푸아뉴기니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18 정상회의가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 속에 공동성명을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등이 18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폐막성명은 21개국 공동성명 대신, 정상회의 의장인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명의의 성명으로 대체됐다.

사건은 공동성명 초안에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We agreed to fight protectionism including all unfair trade practices)는 문장이 발단이 됐다.  

중국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이 중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이를 공동성명에서 제외하기를 원했으나,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20개국은 이를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 대표단 4명은 조율과정에서 강제로 이 문구를 빼기 위해 의장국인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의 집무실에 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파푸아뉴기니의 고위 외교관 등을 인용해 중국의 중견급 외교관들이 집무실 난입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미중 양국은 밀접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양국 관계를 갈라놓으려는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며 이를 부인했다.

양국은 회의 초반부터 가지 돋친 설전을 펼치며 파국을 예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통상 문제는 물론 남중국해,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책 등에 대해 첨예하게 충돌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참석한 펜스 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지만, “중국의 무역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참석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무역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출처= APEC.org

시 주석이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에 분명하게 반대하는 깃발을 들어야 한다"면서 "한 나라가 어떤 발전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는 그 나라 국민의 선택"이라고 역설하며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중국제조2025’ 등 중국식 발전계획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는 개방의 협력 플랫폼이며, 지연이나 정치적 목적이 없고, 누구를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으며, 폐쇄적인 소집단도 아니고, 남들이 말하는 ‘함정’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시주석에 이어 등단한 펜스 부통령은 “중국이 수년 동안 미국을 이용해 먹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미 25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앞으로 그 규모를 두 배로 늘릴 수도 있다"며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파트너 국가들을 '부채의 바다'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9일 "트럼프 대통령 대신 APEC 회의에 참석한 펜스 부통령이 철저하게 악역을 했다"고 표현하며 펜스 부통령이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또, 이번 APEC 기간 시 주석이 펜스 대통령과 따로 회동해 무역문제를 논의하는 일정을 잡지 않은 것도 "대중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과의 회담 보다는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담판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 우선주의가 다자주의를 저해하고 있다"며 APEC 공동성명 도출 실패를 미국의 탓으로 돌리면서도 "아직 G20에서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남아 있다. 미국은 진지한 준비를 하기를 바라며 중국에 대한 압력 행사로 희망을 꺾지 않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APEC 의장국인 파푸아뉴기니의 피터 오닐 총리는 17일 폐막 기자회견에서 왜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방에는 두 명의 거인이 있다”고만 답했다.

APEC은 지난 1993년부터 매년 공동성명을 채택해왔으나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