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이제 안경도 3D 시대다. 입체 영화를 보기 위한 안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경이 제작되는 방법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3D 프린팅으로 알려진 적층 가공법(Additive Manufacturing)이 600억달러(68조원) 규모의 안경테 시장까지 파고들며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을, 제조사에겐 비용 절감을 약속하고 있다.

오늘날 시장에는 공장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한 엄청난 수의 안경테가 팔리지 않은 채 선반에 진열되어 있다. 안경테 제조업체들은 안경의 주요 재질인 아세테이트(Acetate) 시트로 안경을 만들면서 시트의 75%는 폐기 처분한다. 그러나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하면 거의 폐기물이 생기지 않는다.

또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주문 디자인 안경에는 20%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고, 제조사는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하면 어떤 추가 비용 발생 없이 주문 디자인 안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와 제조사가 모두 그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프린터의 속도가 훨씬 더 빨라야 하고 보다 다양한 화학제품이 개발되어야 한다. 현재 안경테 한 묶음을 생산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데까지 하루가 걸리는 프린터의 속도는 소량생산에는 문제가 없지만 대량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

현재 3D 프린터로 만든 안경테는 100달러에서 500달러에 팔리는데, 이 정도 가격은 공장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하는 고급 테의 가격과 유사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재질과 마감재가 제한되어 있다. 반투명 또는 광택이 나는 재질은 아직 프린터로 만들 수 없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시장에서 3D 프린터로 만든 안경 판매는 100만개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지만, 동유럽 기술 투자은행 브라이언 가르니에(Bryan, Garnier & Co.)에 따르면 이는 연간 15억개에 달하는 안경테 시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거대 시장이 세계 최대 화학 회사인 독일의 바스프(BASF)를 위시해 이탈리아의 최고 안경테 회사 사필로 그룹(Safilo Group SpA), 일본의 렌즈 제조회사인 호야(Hoya Corp.) 같은 대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회사로는 비록 대기업은 아니지만 보스턴의 스켈멜트(Skelmet) 같은 스타트업이 디지털 안면 스캔 기술을 사용해 주문형 선글라스를 만들어 대서양 연안의 안경점 10곳에 공급하고 있다.

▲ 3D 프린터로 제작된 안경. 올해 시장에서 3D 프린터로 만든 안경 판매는 100만개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CoolThings.com

대기업들이 3D 프린팅 생산 방식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들이 전통적인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 안경점에 판매하고 있는 모델의 40%가 팔리지 않은 채 남아 돌기 때문이다.

아이웨어 벤처 기업 중 하나인 벨기에의 3D 프린팅 회사 마테리알리세(Materialise NV)의 글로벌 웨어러블 전략 책임자 알리레자 파랑디앙은 “이 산업은 융통성이 너무 없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바스프와 아이웨어를 포함한 포괄적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바스프의 볼커 하메스 3D 프린팅 솔루션 담당 이사는 “우리는 3D 생산을 산업적 규모로 키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3D 프린팅에서는, 디지털 청사진에 따라 레이저에 의해 금속이나 플라스틱 파우더가 연속적으로 층을 이루며 물체가 형성된다. 이 기술은 이미 보청기와 치과용 임플란트 제조업을 변화시켰고 이제 항공우주, 에너지, 수송 부문의 복잡한 부품 산업까지 진입하고 있다.

안경과 맞춤형 주문 신발 시장은 3D 프린팅 기술의 가장 큰 소비자 응용 분야 중 하나다.

적층 가공법은 과거의 생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지만 전혀 복잡하지 않다. 눈으로 보기에 복잡한 격자 구조를 만드는 것은 일반 프린팅보다 어렵지 않다. 2011년에 세계 최초의 3D 아이웨어 컬렉션을 선보인 베를린의 안경 판매 회사 미키타(Mykita GmbH)의 창업자 모리츠 크루거의 말대로 “3D 프린팅 기술의 가장 큰 매력은 디자인의 자유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미키타는 이 분야를 주도하는 고급 부티크 안경 판매 회사들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세계 최대 아이웨어 제조업체인 이탈리아의 룩소티카 그룹(Luxottica Group SpA)도 2011년부터 안경테 생산에 사용되는 부품을 3D 프린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경테 3D 프린팅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지난해부터라고 독일의 3D 프린팅 아이웨어 제품 마감 및 컬러링 전문 스타트업 다이믈랜션(DyeMlansion GmbH)의 펠릭스 이왈드 CEO는 설명했다.

디올(Dior), 하바이아나스(Havaianas), 바비브라운(Bobbi Brown) 같은 아이웨어 브랜드를 생산하는 사필로 그룹은 지난해 옥시도(Oxydo)라는 브랜드를 출시하며 3D 프린트로 제작한 선글라스를 선보였다. “착용할 수 있는 조각품”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멋진 안경테는 마테리알리세가 전통적인 금속 와이어 재질과 플라스틱 재질을 혼합해 3D 프린팅으로 만든 것이다.

31개 브랜드에 무려 2만1000가지의 안경테 모델을 생산하고 있는 사필로는 해마다 1600가지의 새 안경테를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수만 개 이상 팔리는 인기 있는 제품만이 기존 생산 방식으로 효율성을 가질 수 있으며, 그보다 적게 팔리는 대부분의 모델에서는 3D 프린팅 방식이 더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3D 프린팅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이 회사의 니콜라 벨리 글로벌 혁신 담당 이사는 설명했다.

▲ 마테리알리세와 일본 렌즈 회사 호야가 손잡고 설립한, 디지털 스캐닝과 적층 가공법을 결합한 주문형 제품 전문 벤처기업 유니쿠(Yuniku)는 고객의 가상 머리 모형에 수천 개의 안경 테 스타일과 색상을 겹쳐 본 후 최종적으로 최적의 안경 테와 렌즈를 선택한다.   출처= Hoya Yuniku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회사인 페라리(Ferrari)에서 근무했던 항공우주 엔지니어 벨리 이사는 “3D 프린팅으로 우리가 재고생산 방식에서 주문제작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마테리알리세와 일본 렌즈 회사 호야가 손잡고 설립한, 디지털 스캐닝과 적층 가공법을 결합한 주문형 제품 전문 벤처기업 유니쿠(Yuniku)의 성공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유니쿠는 ‘독특한’(Unique)이라는 단어의 일본어로, 한 쌍에 1000달러 이상 하는 고가의 다초점 누진 렌즈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기존의 안경테는 다초점 누진 렌즈를 최적으로 안착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눈에 정확하게 위치를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호야의 엔지니어들은 최고의 렌즈 위치를 설계하고 그에 정확하게 맞는 안경테를 만들어야만 최상의 시야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항의 자동 보안 검색기와 비슷하게 생긴 유니쿠의 기계는 먼저 고객의 가상 머리 모형을 만든 다음, 머리의 크기와 모양에 맞게 수천 개의 안경테 스타일과 색상을 겹쳐본 후 최종적으로 최적의 안경테와 렌즈를 선택한다. 선택된 안경테와 렌즈는 주문 후 10일 이내에 안경점에 납품하며, 기존의 안경보다 약 10% 더 비싸지만 고객 만족도는 그보다 훨씬 높다고 호야 관계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