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산업은 관련 시장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단계로 선도적인 R&D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통해 주도권을 쥘 기회가 있지만, 차세대 치료제 시장에서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은 우리 몸에 공생하는 미생물 군집의 영향을 유전체 수준에서 밝혀내고 이를 의료‧헬스케어에 활용해 헬스케어 산업의 새로운 부문을 구성하면서도 기존 의료서비스와 제품의 효과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표 분야 중 하나다.

BMS, J&J, 로슈 등 글로벌 제약사가 차세대 치료제 시장 중 하나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이 분야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에 따르면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을 제외하고,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힘쓰고 있는 제약사는 일동제약이 유일하다고 볼 정도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은 관련 시장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단계로 선도적인 R&D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통해 주도권을 쥘 기회가 있지만, 차세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에서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관심이 주목된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에 주목한 글로벌 제약사 왜?

시장 조사기업인 BBC 리서치에 따르면 주요 질병의 병리학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관관계가 밝혀지고 있어 이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부문의 급격한 성장이 전망된다. 이는 2018년 5600만달러 규모에서 2023년 65억1940만달러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 전망. 출처=BCC Research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은 2000년에서 2016년 사이 78편에서 7400편으로 약 100배 증가했다. 2012년 발행된 관련 특허 수는 89개였지만, 이후 연평균 74.9% 성장해 2016년 833개에 도달했다.

해당 기간 국가별 등록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이 27.4%, 중국이 2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국제기관에 등록된 특허는 26.9%다. 앞선 두 국가를 제외하고 다른 국가들은 5% 이내의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도 2.7% 비율을 보여 기술적 측면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연구결과가 지속해서 나오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이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는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질병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는 엔터롬 바이오사이언스(Enterome Biosciences)에 직접 투자하고, 지난해 마이크로바이옴 진단법 개발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존슨앤드존슨(J&J),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등 은 이 기업과 제휴를 맺었다.

로슈(Roche)와 화이자(Pfizer)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 기업 세컨드 게놈(Second Genome)에 투자했다.

▲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스타트업과 글로벌 식품, 제약사 파트너십 사례. 출처=BCC Research,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목 받는 이유로는 우선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컨드 게놈으로 불리는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NGS는 유전자 정보 전체를 읽어내는 기술로 과거에는 30억쌍의 염기로 이루어진 인간 유전자 전체를 분석할 때 15년이라는 기간과 30억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나 현재는 3일, 1000달러 비용으로 분석이 가능해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2013년부터 메타제노폴리스(MGPS) 프로젝트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인체의 건강과 감염성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소화기관에 가장 밀집해 있어 비만, 당뇨 등 다양한 대사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고, 마이크로바이옴이 비만을 유발하는 과정을 입증한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속속 진행돼 대사질환 뿐 아니라 자폐증, 다발성 경화증, 우울증,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계 질환 발생과도 연관이 있음이 보고됐다.

중요한 점은 마이크로바이옴이 현대 난제 중 하나인 ‘항생제 내성’을 해결할 유망 연구 분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정상 구성이 파괴돼 발생하는 질환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은(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 CDI) 미국의 경우 해마다 50만 건 이상이 발생하고, 약 2만9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연구가 성공하면 아직까지 별 다른 치료제가 없는 항생제 내성과 이에 따른 감염 질환의 발생을 감소시켜 인류 건강 증진과 의료비용 감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업계 전문가는 “항생제 대체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세균성 대장염 같은 질환은 항생제를 쓰는 대신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서 “장내 미생물은 아니지만 특정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약으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요한 이슈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차세대 항암제로 각광받고 있는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 치료효과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는 효과가 높지만 반응률이 20~30%로 낮다는 문제가 있다. 약에 반응하는 10명 중 2~3명에게는 탁월한 효과가 나타나지만, 나머지 7~8명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전문가는 “면역항암제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따라 효율이 잘 나타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면서 “관련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면역항암제가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직접 항암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에 더해 현존하는 면역항암제의 효율을 높이는 병용치료제로서의 개발도 유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R&D 어디에 집중?

신약 R&D는 대개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동물실험), 임상1상, 임상2상, 임상3상 등의 단계로 이뤄진다. 임상3상을 마치면 신약허가심사와 시판 승인을 거친 후 판매된다.

제약바이오기업은 신약, 복합신약, 개량신약, 복제약 부문에서 R&D를 진행한 후 이를 의약품으로 만들어 출시한다. 제조업 기업이 제품 개발 이후 시중에 상품을 내놓는 것과 유사하지만, 의약품 개발은 대개 10년 이상이 필요하고 개발비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이 투입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도 의약품 출시로 이어질 가능성은 1% 가량일 정도로 어렵지만 의약품 개발이야 말로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성장 동력이므로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R&D 투자액이 1000억원을 넘거나 매출액 대비 10%를 웃도는 곳은 셀트리온(2270억원‧27.39%), 한미약품(1706억원‧18.61%), GC녹십자(1165억원‧10.61%), 대웅제약(1142억원‧11.89%), 유한양행(1137억원‧7.09%), 종근당(989억원‧11.18%), 동아에스티(812억원‧14.63%), 일동제약(483억원‧10.47%) 등이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이 기업들의 R&D 투자액은 셀트리온 1307억원(25.7%), 한미약품 847억원(22.6%), GC녹십자 498억원(10.88%), 대웅제약 494억원(10.48%), 유한양행 318억원(4.5%), 종근당 408억원(7.32%), 동아에스티 408억원(15.35%), 일동제약 157억원(7.17%)이다.

제약바이오기업의 생산라인 중 우선되는 R&D 연구 종류는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른다. 파이프라인의 의미는 원유를 운송하는 송유관이지만,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연구실에서 은밀하게 개발하는 신약이라는 의미로 이를 사용한다.

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파이프라인은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에 집중됐다. 전체 규모는 합성 의약품 407개로 43.6%, 바이오의약품 527개로 56.4%다.

치료영역별로는 종양분야가 다수를 차지했고, 이를 치료하는 항암제에 이어 대사질환, 중추신경계 질환, 감염질환, 면역질환의 순을 나타냈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연구 동향은?

일동제약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전 단계로 평가할 수 있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부문에서 강자로 평가받는다. 이 기업은 1940년대부터 유산균 연구를 시작해 1959년 비오비타를 개발하고, 균이 살아서 장까지 갈 수 있는 4중코팅기술과 ‘지큐랩’ 제품군을 보유했다. 최근에는 의료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화장품인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퍼스트랩’ 제품군으로 관련 시장을 선점했다.

약 3000종의 방대한 균주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일동제약은 지난해 BT와 IT 기술을 융합한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기술에 기반을 두고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역량을 활용,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바이오 벤처기업인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공동연구소(ICM)를 출범해 연구와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일동제약은 미생물인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Lactobacillus rhamnosus)를 파마바이오틱스(Pharmabiotics)로 만든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ID-RHT320'를 연구하고 있다. 파마바이오틱스는 미생물을 약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동제약 연구팀은 실험에서 아토피가 발병했을 때 과하게 발현되는 사이토카인 물질 'IL-4' 발현량을 측정한 후 실험을 통해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가 IL-4 과발현을 억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ID-RHT320이 아토피 치료제의 약물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종근당바이오도 지난해부터 서울대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과 R&D 협약을 맺고 장내미생물은행 설립과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종근당바이오는 유산균의 안정성을 높이는 배양기술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고 기능성이 입증된 프로바이오틱스를 생산하면서 항비만, 골다공증 개선, 신장 질환 개선에 효과적인 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 연구 등 국가 R&D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지놈앤컴퍼니는 유익균들이 면역체계 활성물질 생성을 촉진하고 면역세포와 상호작용하면서 직, 간접적으로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면역항암제와 병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항암보조제를 개발하고 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메디오젠과 협약을 맺고 마이크로바이옴과 단백질 신약 플랫폼 기술로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면역항암제,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신약, 알레르기 질환 신약 등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근억 서울대 교수가 생리활성 유산균 개발을 통해 설립한 비피도는 최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새로운 비피더스균에 대한 전임상 효능을 입증하고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바이옴에 기반을 둔 치료제로 미국 특허를 취득했다.

고바이오랩은 지난해 메사츠세추공과대학(MIT)와의 협업에 대해 발표하면서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기업은 대사질환, 감염질환, 면역항암제, 정신질환, 염증성장염 등과 관련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진단키트, 의료용 식품 부문에서 활약 중이다.

▲ 마이크로바이옴 분야 부처별 정부 R&D 투자 현황(2016년 기준). 출처=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투자는 대개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 투자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75억원, 교육부 19억원, 보건복지부 14억원, 산업부 12억원 등이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식품연구원의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장내미생물 조절 식의약-모바일 헬스케어 기술 개발’에 9년 동안 총 180억원이 지원되는 중장기 R&D 지원이 시작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R&D 사업이 많다”면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해 관심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