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의 실세 왕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는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다원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가 지원하는 싱크탱크가 약 60년 동안 존재해 왔던 석유 카르텔인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해체했을 때 석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이 같은 시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가 상승의 원인이 OPEC의 감산 탓이라며 비난하고 있고, 사우디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투자자들이 사우디와 거리를 두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리야드에 있는 싱크탱크인 ‘압둘라 국왕 석유연구조사센터’(King Abdullah Petroleum Studies and Research Center, Kapsarc)의 아담 지민스키 소장은 이 연구가 트럼프의 발언에 의해 촉발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 문제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비난도 연구의 한 원인이었으며 연구 결과에 따라 OPEC과 OPEC에서의 사우디 역할에 대한 방어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고위 관계자는 이 연구 프로젝트가 지민스키 소장의 지시에 따라 우선 순위의 경제 정책 연구로 진행되었지만, 그런 분석은 드문 일이 아니며 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탐구하는 주제에 속한다며, 사우디 정부가 가까운 시일 내에 OPEC을 떠나는 것을 적극 검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사우디 정부가 OPEC의 필요성에 대해 재고하고 있는 증거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석유 수요는 언젠가는 장점에 달할 것이며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향후 OPEC이 흔들리고 붕괴될 정도로 수요가 감소하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한 예행 연습으로 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와 OPEC 회원국들은,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이 석유 생산량을 할당함으로써 가격이 너무 올라가거나 너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미국과 같이 석유 소비가 큰 국가들을 볼모로 OPEC이 유가 조작을 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OPEC에 대한 비판도 그런 근거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일부 미국 의원들은 OPEC을 불법 카르텔로 지정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NOPEC으로 불린 이 법안은 몇 차례의 행정부를 거치면서 세를 얻지 못했지만 이들은 이제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이 법안이 제대로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들 중 한 의원은 "사우디도 석유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OPEC을 이전 시대의 유물로 생각할 때가 되었다. 미국에서 NOPEC 법안 통과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우디 정부가 OPEC 해체에 관해 지금 당장 논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우디 정부 고위 관료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만으로도 시장에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OPEC의 장기적 존재 근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가 최근 몇 년간 사우디 아라비아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런 의문은 더욱 커졌다(사우디와 러시아의 긴말한 관계로 여타 OPEC 회원국들이 의사 결정에 소외되고 있다며 불만도 나온다).

유가가 계속 떨어지자 2년 전, 러시아와 비(非) OPEC 산유국들은 OPEC과 손을 잡고 석유 생산 제한에 합의하고 유가를 크게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최근 10일 연속 국제 유가가 하락하자 이들은 지난 11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장관급 공동점검위원회(Joint Ministerial Monitoring Committee)를 열고 감산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싱크탱크 Kapsarc은 자신들은 독립 기관이라며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나 에너지 부처 같은 주요 정부 기관에 자문을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지민스키 소장은 석유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OPEC의 유휴생산능력의 역할을 조사한 이전 연구를 토대로 이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초기 연구는 “그러한 (감산) 쿠션이 없다면 유가 변동이 더 심해질 것이며 이는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프로젝트 또한, 사우디 정국 운영에 광범위한 통제력을 가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탈피하고 사우디의 경제, 사회 및 세계에서의 역할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의 IPO를 추진한 것도 모하메드 왕자다.

IPO 계획은 모하메드 왕세자가 사우디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 그는 글로벌 기술과 금융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터키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살해 사건을 폭로하며 사우디 ‘고위층’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사우디 정부는 까슈끄지는 범죄 조직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모하메드 왕세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WSJ은 사우디의 OPEC 관련 연구는 "OPEC을 해체했을 경우 단기/중기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OPEC 같은 기구를 통한 산유국 간 생산량 조율을 하지 않을 경우, 세계 석유 시장과 사우디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Kapsarc의 연구는 OPEC이 없을 경우에 대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모든 산유국들이 석유 시장을 두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인가, 둘째, 사우디 아라비아가 막대한 산유량을 바탕으로 단독으로 글로벌 석유 공급의 균형을 이루고 유가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 지, 즉 사우디가 단독으로 OPEC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또 사우디 석유 정책의 두 핵심인 아람코와 에너지 부처가 매주 Kspacar의 연구원들을 만나고 있다고 전했지만, 지민스키 소장은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이런 연구는 까다로운 OPEC 회원국들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OPEC 내에서 오랜 핵심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우디와 이란은 오는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정례회의에서도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OPEC의 일 생산량 3300만 배럴 중 1000만 배럴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OPEC 내 최대 맹주국으로, 사우디 석유 장관이 사실상 이 카르텔을 이끌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최근 OPEC이 회원국 전원 합의 의사 결정체임을 새삼 강조하며 리더십 역할을 공개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각 회원국의 비평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 원유 수출에 대한 미국의 제재도 OPEC의 최근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란은 사우디가 미국을 OPEC 내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했고, 사우디 관리들은 비정치적 영역인 석유 시장에서 이란이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격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