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개미지옥보다 더 한 ‘SNS 지옥’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18.11.20  18:37:15

공유
ad59
   

주식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포털 사이트의 종목 게시판이다. 투자하는 데에 도움이 될 정보를 위해서 찾지만, 사실 개인 투자자들이 가진 정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다. 실질적인 정보라기 보다는 그냥 그렇고 그런 의미 없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끔 의도치 않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나돌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십여 년 전쯤이었다. 포탈의 종목 게시판에 들어가서 회사를 음해하거나 비방하는 글을 찾아 내서 조치를 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업무 중의 하나이기에 하루에 한 두 번 이상은 각 사이트를 뒤진다. 그러던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내 명함을 스캔한 이미지가 게시판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확대해 놓은 이미지 밑에는 그룹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는 차장이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짧은 글이 달려 있었다.

물론 명함이야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만든 것이지만, 불특정 다수인들이 보는 포탈 사이트 게시판에 떡 하니 올려둔 것은 그 저의가 불순한 의도라 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포탈 사이트 관리자에게 전화하여 여차저차 개인 신상에 대한 노출이니 바로 처리가 되었지만 뒷맛이 영 찝찝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연락처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서 온갖 마케팅, 피싱, 엉뚱한 연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연락처를 대놓고 자료에도 표기해 두고, 예전에는 신문 기사에도 담당자 전화번호를 표기하여 내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엉뚱한 전화를 받게 되면 당황스러운 것은 다르지 않다.

 

연이어 울리는 알람 소리는 대형 사고 터졌다는 의미

어느 날 저녁에 손님과 중요한 얘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 중이었는데, 카톡이 왔다는 알람 소리가 수십 번이 울렸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핸드폰 알람이 이렇게 요란스레 울린다는 것은 대형 사고를 의미했다. 아주 좋지 않은 기사가 났거나 아니면 대서특필 될만한 큰 일이 터진 것이었다. 대번에 낯빛이 변한 나더러 손님은 확인해 보라고 권했다.

핸드폰을 열어 본 결과 다행히 사고는 아니었다. 대학 동기 중에 한 명이 오랜 해외 근무를 마치고 국내로 복귀를 한 모양인데, 동창들 수십 명을 단체로 초대해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안도하며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했다. 그러곤 대화를 이어갔는데, 잠시 후 다시 카톡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졌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슬며시 핸드폰을 봤더니, 단톡방에서 나간 나를 누군가가 또 초대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나가기를 해서 벗어났다.

다음날 아침, 귀국한 주인공인 그 친구가 내게 개인 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혹시 제가 알고 있는 친구가 아니신가요?’ 아마도 못내 서운한 느낌에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서 메시지를 보낸 듯 한 것은 알았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를 한참 생각해야 했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가 어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단톡방을 나갔다.’

‘내가 귀국한 게 반갑지도 않은 모양이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업무와는 상관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몇 마디로 이해를 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론, 애널리스트, 기관 투자가, 개인 투자가, 동료 커뮤니케이터, 경영진, 직장 동료 등등 도합 3천 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연락을 해오고, 특히나 기사가 마감된 이후 가판이 나올 시간이면 커뮤니케이터의 긴장도는 매우 높을 수 밖에 없는 구구절절한 사정에 대해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 카톡 등등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고 그럴 때면 긴박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기에 핸드폰 알람 소리에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라는 것을 부연해서 설명해야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회사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된 것이다. 예민해지고 싶어서 예민한 것이 아니다. 신문이나 게시판에 뉴스 한 토막이나 댓글 한 줄이 불러오는 파장은 예상외로 엄청나다. 우리와 상관 없어 보이는 기사도 내용을 꼼꼼히 봐야 하고, ‘아’ 다르고 ‘어’ 다른 상황에서 ‘가’와 ‘도’ 같은 조사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게 많은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에 자연히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슈가 터지면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찾는 사람

저녁 술자리도 많다. 때문에 어쩌다 좀 일찍 집에 도착하는 날이면, 시간과 상관없이 집에 도착한 때가 바로 취침 시간이었다. 그렇게라도 잠을 보충하지 않으면 몸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끔 늦은 밤에 술 취한 목소리로 단잠을 깨우는 친구들이 있다. 간만에 한잔 하고 귀가 하다 생각나 전화하는 반가운 목소리지만 불면의 밤으로의 초대장이다. 다시 잠들지 못해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 때가 많다.

하루 동안 가장 통화가 많았던 날은 아마도 김우중 회장 귀국 날이었던 것 같다. 2005년 봄이었는데, 새벽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이 예정되어 있었다. 언론사라는 언론사, 기자라는 기자는 죄다 내게 연락 해오는 것 같았다. 7년 반을 정처 없이 세계를 떠돌다 귀국하는 백발의 신사에게로 관심이 쏠렸지만 연락은 내게로 몰렸다.

집에 갔다가 공항으로 가기에는 어중간해서 많은 기자들은 시내에서 술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결 같이 그 시각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언제 누구와 공항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새벽 두어 시까지 핸드폰이 계속 울어댔다. 사실 난 대우맨은 아니었기에 상황 수습만 했지 공항까지 가지는 않아도 됐었다.

언론의 관심은 그 노신사가 발표하게 될 내용에도 있었다. 그 내용도 내게 물었는데, 발표할 내용이 뭐가 특별할 게 있겠나 싶어도 질문은 끊임이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발표문 초안을 내가 썼다. 3시 무렵에서야 잠깐 눈을 붙였을까 조금 지나자 다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항 어디쯤에 있냐?’는 물음들이었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일찍 사무실로 나갔다. 포탈이며 신문이며 온통 세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그 이슈로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필요로 하고 통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일이 되었건, 정이 되었건 기억해주고 연락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소외되는 것 보다는 백 번 낫다. 하지만 그런 전화들이 다 반가운 것은 아니다. 난처한 상황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일수록 한꺼번에 몰린다. 물어 보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이미 기사 다 써놓고 마지막으로 궁지에 몰린 나의 비명 같은 한 마디를 요구하는 연락도 많다. 그런 때 핸드폰은 날 얼어붙게 만든다.

통화하다가 별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가 기사화 되어 곤욕을 치렀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부채 비율 높고 실적 신통찮은 회사는 마치 ‘사회 악’이라도 되는 것인 양 파헤치려는 연락도 많았다. 지금도 신문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가 제일 무섭다. 막 사회로 나온 그들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대의 명분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의 담벼락을 걸어가는 기업들이 그들의 눈에는 문제 구더기로 보여질 수도 있다.

새벽 4시 철야 근무하던 방송국 기자가 첫 배달된 신문을 보고 긴급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다. 전날 저녁 가판에도 없던 심각한 내용이 갑자기 배달판에 들어간 것이었다. 기쁜 소식이 이렇게 당황스럽게 전해지는 일은 잘 없다. 그 새벽부터 나도 긴급 보고를 했고, 힘든 또 하루를 헤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주가가 좀 빠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유선전화, 핸드폰, 카톡 그리고 각종 메시지 창이 연신 알람을 토해낸다. 무슨 내용이 나가면 발란스를 위해서 꼭 반대편 입장의 이야기를 싣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본질과는 상관없이 소모적인 여론전에 희생이 되기도 한다. 광화문 대로에서 대모가 일어나도 연락을 받았고, 지진이 나고 태풍이 와도 연락이 오고, 폭설이 내려도 연락이 온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랬고 법이 바뀌어도 그랬다.

북한산 꼭대기에 쪼그려 앉아서 해명을 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주말에 가족들과 나들이 갔다가 황급히 되돌아 온 적도 많다. 애들이 어렸을 때, 아빠 핸드폰은 가지고 놀 수 없는 위험한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때는 경영진 연락처를 무슨 스파이의 암호명처럼 저장을 해 둬서 나 아닌 누가 폰을 열어보더라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했었다. 페북, 스토리, 인스타그램도 그렇고 갖가지 메신저 프로그램들로 이중 삼중으로 연결되어 있다. 늘 긴장되고 초조한 일상을 보내며 한없이 벗어나고픈 맘 간절하지만, 그 애물단지를 지금도 소중히 끼고 살 수 밖에 없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의 기사더보기

ad73
SPONSORED
ad61
ad62

헤드라인

ad63

중요기사

default_side_ad1

최근 전문가칼럼

ad66
default_side_ad2
ad36

피플+

1 2 3
set_P1
1 2 3
item49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57
default_setNet2
ad67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