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17일 오전 경기 용인 처인구 현대자동차그룹 환경기술연구소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하편을 보면 이러한 대목이 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단순히 하늘의 때를 기다리는 지도자는 이미 지형의 형세를 읽고 그 지형을 유리함으로 이끌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때에 맞는 투자와 사업 전략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조직의 생존과 성장에 중요함을 알려주는 ‘승세대시(乘勢待時)’ 경영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부회장의 행보를 보면 이 대목이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진한 회사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외부 기술 수용에 적극 나서면서 개방형 혁신경영(오픈 이노베이션)시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홀로 연구개발(R&D)을 해온 현대차는 폐쇄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외부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며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3일 현대차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부터 총 16번의 업무협약(MOU) 및 투자를 단행했다. 부문별로 ▲오픈이노베이션 및 스타트업 투자 5건 ▲차량공유 5건 ▲커넥티드 카 4건 ▲배터리 2건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글로벌 거점구성과 함께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다. 커넥티드 카 분야인 검색 및 음성인식과 차량공유에도 힘을 쏟는다. 다만 배터리 부문은 라스트마일 사업을 위한 투자에 그쳤다.

▲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스라엘에서 개최된 '대체연료 & 스마트 모빌리티 서밋'에서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지영조 부사장이 이스라엘 스타트업들과의 협업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오픈 이노베이션, ‘미래차 기술 거점 구성부터’

현대차그룹의 사업 진출 핵심은 오픈 이노베이션과 스타트업 투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는 세계 곳곳에 혁신 거점을 설립, 스타트업과 협력을 강화해 혁신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량 품질을 높이고,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동시에 이들과의 협업 및 공동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한다. 또 현지 대학, 전문 연구기관, 정부, 대기업 등과의 교류 및 공동 연구 활동을 통해 신규 비즈니스 창출을 모색한다.

현대차그룹은 아시아·미국·유럽·중동을 잇는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 구축을 노리고 있다. 즉, 혁신을 주도할 기술을 발굴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다.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구상한 방침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해 암논 사슈아 모빌아이 회장을 만나,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기술 교류를 손수 챙기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과 스타트업 투자는 ▲지난해 9월 테니온 카이스트와 미래혁신 공동 연구 ▲10월 미국 모빌리티 연구기관 ACM이 추진 중인 테스트베드 건립 500만달러 투자 ▲11월 이스라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신설 ▲11월 현대그룹 실리콘밸리 ‘현대크래들’ 출범 ▲올해 9월 스위스 홀로그램 전문 업체 웨이레이 전략투자 등이다.

▲ 지난 8월 현대자동차 인도 글로벌 품질센터(INQC)에서 (좌측부터)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구영기 법인장과 레브(Revv) 공동 창업자 아누팜 아가왈(Anupam Agarwal), 카란 제인(Karan Jain)이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모빌리티 비즈니스, 현대차의 포커스?

현대차그룹의 차량공유 협업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등 미래 혁신 기술들을 공유경제와 융복합하는 데 의의가 있다. 모빌리티에 대한 통합적 대응체계 구축에서다. 여기에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등 미래기술들을 결합해 ‘혁신적인 모빌리티 장’을 조성한다는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컨설팅업체 매켄지는 차량공유 확산으로 2030년에 일반소비자 자동차 구매가 현재보다 최대 연간 400만대 감소하고 차량공유용 판매는 200만대 증가할 것으로 봤다. 같은 컨설팅 업체 롤랜드-버거는 2030년 차 공유 시장이 전체 자동차 산업 이익의 4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러한 막대한 산업이익 배경에는 애프터서비스, 할부·리스 등 금융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업의 선순환 구조를 탄탄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문은 전략적 협업이 대부분이지만 차량공유에만 현대차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카헤일링, Car Hailing) 기업 그랩에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 1월 현대차가 그랩에 투자한 2500만달러에 2억5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총 투자액은 2억7500만달러(3120억원)에 이른다. 이는 현대기아차가 외부 업체에 투자한 액수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차량공유 분야는 ▲지난해 8월과 12월 국내 카풀 스타트업 럭시 ▲올해 1월 동남아시아 최대 카헤일링 업체 그랩(Grab) ▲7월 호주의 P2P 카셰어링 업체 카넥스트도어(Car Next Door) ▲8월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 ▲ 9월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 미고 등에 투자를 단행하고 모빌리티 사업 기반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 현대·기아차와 바이두는 지금까지의 협업 수준을 뛰어넘는 강력한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 베이징에 위치한 바이두 본사 사옥에서 '커넥티드 카 전략 협업 양해각서(Connected Car Strategic Cooperation MOU)'를 체결했다고 지난 7월 밝혔다. 사진은 바이두의 커넥티드카사업부 쑤탄(苏坦)총책임자(좌측)와 현대·기아차 인포테인먼트개발실장 추교웅 이사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커넥티드 카, ‘검색과 음성인식으로’

커넥티드 카 부문은 굵직한 기업들과 공동 개발 및 동맹을 맺으면서 가장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현재 MOU 스코어만 보면 커넥티드 카 부문에서 검색과 음성인식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래 커넥티드 카가 제공하는 방대한 정보와 콘텐츠를 운전자가 주행 중 손쉽게 활용하기 위해서 고도화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술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에서다.

업계를 놀라게 한 발표는 바이두와 전략적 협업 강화 동맹 발표다. 지난 2014년부터 현대차와 협업해온 바이두는 검색엔진, 인공지능, 음성인식, 커넥티비티 분야에서 중국 내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커넥티드 카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바이두와 함께 커넥티드 카 서비스와 음성인식, 인공지능 로봇개발, 사물인터넷(IoT) 분야까지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을 건너 다시 국내로 돌아와 국내 전 차종 안드로이드 오토를 선언하고 카카오와 차량용 인공지능 음성인식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내년 이 기술이 양산차에 적용되면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활용한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게 된다.

현대차그룹의 커넥티드 카 투자는 ▲지난해 12월 사운드하운드와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공동개발 추진 ▲올해 7월 바이두와 커넥티드 카 개발 동맹 강화 ▲8월 안드로이드 오토 전 차종 국내 적용 ▲8월 카카오 차량용 인공지능 음성인식 개발 프로젝트 등이다.

▲ 임모터 전기 스쿠터 '임모터 고'. 사진=임모터

배터리, 아쉬운 투자...미래 그림 따로 있나?

배터리 분야는 겨우 2개 기업에 투자했다. 3개의 부문에서 4~5번의 업무협약이나 투자를 단행한 것과 달리 찬밥신세다. 특히 실질적인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보다 특정 사업의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한 협업 수준에 그친다.

현대차는 라스트마일(Last-Mile) 분야에서 국내 전문기업 메쉬코리아와 중국 임모터에 전략 투자를 단행했다. 라스트 마일은 물류 모빌리티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무인배달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메쉬코리아 투자는 향후 물류 알고리즘 기술과 인프라를 접목해 무인 배달 차량 기반을 다진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오히려 모빌리티 분야 강화에 가까운 투자 결정이다.

임모터 투자 결정 역시 라스트 마일 이동수단에 탑재되는 배터리 공유 사업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정부 전동차 장려정책에 따라 전동 이륜차 판매가 연간 3000만대에 이른다. 이 시장에서 임모터는 라스트 마일 물류 배달원들의 이동 경로, 배터리 상태, 충전 스테이션 현황 등을 모두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 배터리 기술로 연결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등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삼성SDI와 협업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쉽지는 않다. 삼성SDI 제품 가운데 현대·기아차 규격에 맞는 제품이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제품을 쓰고 있다. 현재 현대차는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 본격화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