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이코노믹리뷰>는 ‘삼성전자로 본 한국 증시’ 시리즈를 통해 삼성전자 주가의 저평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치, 절대가치 평가법의 ‘일부’를 활용했다. ‘일부’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여타 지표로는 낮은 평가를 받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우선 정리를 해보면 삼성전자 주가 저평가는 ▲매출성장 둔화에 따른 이익개선의 한계 ▲자금조달 구조의 불균형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의도적인 주가하락 의혹도 제기했다.

이 세 가지만으로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익개선에 따른 삼성전자의 ‘덩치’는 분명 확대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하거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인수하는 데 활용도 가능하다. 이러한 ‘가치’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

한편, 국내 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낮은 배당률 ▲주주가치 제고 부재 ▲지정학적 위험 등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 배당을 확대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는 아직 미흡한 단계지만 금융당국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으로 지정학적 위험도 낮아진 상태다. 법인세, 증권거래세 등의 문제가 남았지만 주가를 짓누르는 요인이 일부 해소될 조짐이라면 기업가치도 한 단계 올라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치’란 절대 시가총액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A기업의 주가가 과거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5~10배 사이에서 움직였다면 디스카운트 요인 해소 단계에서는 조금이라도 높은(예: 7~12배) 수준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향후 12개월 예상치 기준 PER은 6.4배로 지난 2016년 하반기 주가가 본격 상승하기 직전보다 낮다. PBR은 1.28배로 회귀했다.

 

주가 결정 근본 원인 ‘수급’

‘밸류에이션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돌아온다. 결국 가장 본질적인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수요와 공급이다.

상대가치평가와 절대가치평가 방법은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하나의 참고 자료일 뿐이다. ‘가치’는 시장에 반영될 것이란 믿음만 존재한다. 믿음을 현실화하는 것은 수급이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도 사는 사람이 많으면 오르는 것이 주가다.

 

삼성전자의 지난 2000년 이후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순매수 추이를 보면 서로 상반된 움직임을 보인다. 일별로는 외국인·기관 동반 순매수 혹은 순매도가 쉽게 포착되지만 시계열을 넓혀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외국인과 기관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2016년부터라는 것이다. 지난 10월부터 기관이 순매수로 전환했지만 이전까지는 외국인과 함께 동반 매도했다. 즉, 2016년부터 지난 9월까지 추세적으로 두 주체의 삼성전자 순매도가 지속됐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 아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순매도 추이가 가팔라진 시점은 2017년 하반기다. 삼성전자 주가가 정점을 향해가고 있을 시기다.

외국인은 통상 삼성전자 주가 방향과 반대로 매매를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2004~2007년, 2012~2013년, 2016년에서 현재까지 구간이다. 주가 상승시기에 순매수로 일관한 시기는 2009~2011년뿐이다.

삼성전자 주가 추이와 비교해 볼 때, 외국인의 매매패턴은 ‘저가’에 매수하고 주가가 상승할수록 비중을 축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올 들어 삼성전자 주가하락을 부추긴 것은 국내 기관이 주식하락을 방어하려는 성향이 약해졌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 배경에는 외국인의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이 존재한다. 현재 외국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52.21%다. 물량을 쥐고 있는 쪽이 단연 수급에서 우위를 점한다. 외국인 매도세에 주가가 과도하게 흔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국내 기관투자자도 수익을 쫓는 주체인 만큼 무작정 외국인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어렵다.

일각에서는 연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에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평가 해소를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20%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삼성전자만 좌지우지해도 한국 증시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스피와 연결된 각종 파생상품을 움직이는 힘은 ‘덤’이다.

수급을 통해 저평가 의문(외국인 영향력 강화, 기관 방어능력 상실)의 일부가 해소됐다면 남은 것은 외국인의 국내 주식매수·매도 이유다. 국내 기업을 바라보는 해외·국내 기관투자가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수급을 통해 삼성전자의 시장가치를 왜곡시켰다면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은 환율이다. 외국인(미국 기준)이 국내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통상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원·달러 환율은 하락(원화강세)하고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

 

과거 데이터 기준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지수는 마이너스(-) 2베타로 움직였다.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코스피는 2% 하락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1% 내리면 코스피는 2% 오른다. 삼성전자 주식과 원·달러 환율의 베타값은 시기별로 다르지만 장기로 보면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삼성전자의 국내 증시 전반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2017년 원·달러 환율은 1200원에서 1070원대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액면분할 기준)는 2만원 초반에서 5만원 후반까지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 투자자는 100%가 넘는 수익을 올렸겠지만 외국인은 환차익이 추가된다. 반면 주가가 하락하면 외국인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주가 상승시기에 외국인이 주식비중을 줄이는 이유는 수익률 확보를 통한 ‘환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을 대비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이러한 ‘대비’는 현실화되면서 삼성전자 주가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기업이었다면

국내 수출호조가 지속되는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반도체 힘’이다. 이는 달러 자산의 국내 유입으로 이어지고 원·달러 환율 상승에 일부 제동을 걸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인상에 이은 한미 금리스프레드 확대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가 가파르지 않은 이유다.

삼성전자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국내 수출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 전반 체력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올해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국내 채권시장이 강세를 보였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 약세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고 매수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국인이 국내 채권이든, 주식이든 투자 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환율”이라며 “국내 고용, 국내총생산(GDP) 등 주요 경제지표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은 환율에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힘’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논란도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 미 금리인상 등으로 향후 경제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도 가득하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매도는 원화 매도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전반의 문제로 확대된다.

대외변수에도 불구하고 달러 자산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 ‘위험자산’인 원화를 항시 ‘안전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역설적 얘기다. 국내 증시 디스카운트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 원화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본사의 해외 이전은 적정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데 탁월한 선택이다. ‘원화’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기업이었다면 대우가 달라졌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증권거래세 인하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필요한 부분이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증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충분히 상승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바이 코리아’를 외치는 것뿐이다.

삼성전자 주식 저평가는 단순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증시는 물론 국내 경제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시황 둔화를 인정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아닌 한국 경제 차원의 차세대 먹거리를 위한 고민이 절실한 시기다. 원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