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라이벌 왕족, 반체제 인사, 기업가, 성직자, 언론인들을 무차별 투옥했지만 교묘한 홍보 활동 덕분에 진보 개혁자이자 미국의 견고한 동맹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누려왔다. 그러나 카슈끄지 사태로 그 모든 것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왼쪽이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자말 카슈끄지, 오른쪽은 빈 살만 왕세자.  출처= Daily Star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사우디 아라비아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실종되기 몇 달 전부터, 사우디 정부는 이미 인권 침해에 관한 한 놀라운 기록을 쌓아오고 있었다.    

사우디는 지난 8월 이웃 국가 예멘과의 전쟁에 아랍 연합군을 동원해 40명의 어린이가 탄 스쿨버스를 폭파하는 등 수 천명의 민간인 사망을 불러왔고, 사우디 관리들은 지난 해부터 사우디의 사실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라이벌 왕족, 반체제 인사, 기업가, 성직자, 언론인들을 무차별 투옥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의 이런 잔악 행위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 특히 서방의 언론들도 하나 같이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교묘한 홍보 활동 덕분에 모하메드 왕세자는 최근까지 진보 개혁자이자 미국의 견고한 동맹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누려왔다. 최근 미국의 친선 방문에서도 그는 아마존 설립자인 제프리 베조스, 영화 ‘더 록’의 주연 배우 드웨인 존슨,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오프라 윈프리, 언론 재벌 루퍼드 머독 같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스탄불 사우디 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된 것이 확실시되는 카슈끄지 사태로 그 모든 것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런데 그동안 사우디의 야만적인 많은 행위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전세계 언론들이, 실종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던 인물인 카슈끄지의 실종에 왜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카슈끄지의 실종 시간과 장소, 살해가 확실시되는 끔찍한 상황들이 결합돼, 그 사건이 미국의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에게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과 추측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이 점점 드러나면서, 그 동안 전쟁과 폭력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정체 불명의 희생자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속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기 때문이라고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카슈끄지 사건이 미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10월 2일에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 ​​걸어들어간 이후였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정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며칠 동안, 미국의 언론사와 투자자들도 개입되어 있던 사우디 투자 컨퍼런스는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언론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외교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떠들어 댔다.

명백한 살인이 의심되는 카슈끄지 사건의 지정학적 의미와 별개로, 그에 관한 뉴스가 이처럼 쏟아지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에 불과하다”고 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말이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기 전에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슈끄지는 워싱턴과 수시로 연결되어 있던 인물이다. 사우디 내부 정세에 정통했던 그는 북부 버지니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워싱턴 외교가, 정치인,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친숙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해부터 WP의 칼럼니스트로 일했으며 그것이 그가 미국에서 터전을 구축하고 외교가와 관계를 맺는 통로가 되었다.

워싱턴의 정책기구인 중동 민주주의 프로젝트(Project on Middle East Democracy)의 스티븐 맥클러니 소장은 카슈끄지의 그러한 미국내 활동이 그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많은 희생자들과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우디에서 잔인한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희생자는 익명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카슈끄니는 익명의 인물이 아니다. 그가 WP의 칼럼니스트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한 다른 많은 희생자과 그가 다른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카슈끄지가 사우디가 아닌 해외에서 (거의 확실히) 살해된 점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내에서라면 반체제 인사 살해 사건을 보다 더 쉽게 은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경우, 사건이 사우디 아라비아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터키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이번 사건의 정보를 처음 유출한 것은 터기 정부다. 터키 정부는 사우디의 암살단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정보와 카슈끄지가 영사관으로 들어가는 CCTV 동영상 등 일련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후 지난 2주 동안 전략적으로 새로운 뉴스 거리를 폭로하면서 사건 전모에 대한 추측성 스토리를 촉발시켰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자유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 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에 따르면, 터키야말로 언론인 투옥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나라다).

게다가 터키 관리들은 카슈끄지가 영사관 건물 내부에서 고문당해 죽었으며 그 시신이 분해되었다는 정보를 흘렸다. 이들은 사우디 암살단이 카슈끄지의 시신을 전통 톱으로 토막냈다는 암시를 서슴지 않았다.

국제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의 사라 마곤 워싱턴 지부장은 "터키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보도 기사들이 한결 같이 너무 뻔뻔하고 끔찍해서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언론인 보호위원회의 조엘 사이몬 이사는 "이런 이야기들이 캬슈끄지 사건을 언론인에 대한 가장 비겁하고 타락한 살인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이런 잔인함은 국가가 아니라 테러 단체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사이몬 이사는 카슈끄지 사건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WP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2001년 9/11 테러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9/11 사건 수 개월 후에 일어난 다니엘 펄 기자의 살해 사건을 기억하는 것도 그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니엘 펄은 2002년 2월 1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시위를 촬영하던 중 테러리스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에 의해 납치되어 사망했다.

카슈끄지 사건에 관한 언론의 높은 관심은 그에 관한 극히 평범한 내용도 드라마틱하게 치장한다. 예를 들면 그날 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을 찾은 것은 약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떼러 간 것뿐인데 이런 사실조차도 확대 자극적으로 보도된다는 것이다.

국제인권감시단의 마곤은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너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잔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지만, 이와 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한 개인이 살해되면, 그 사건이 사람의 관심을 더욱 끌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