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통이다. 오늘도 회의 시간에 팀장(사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기 바쁘다. “이게 문제다”라는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거의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그것이 문제라고 여기고, 조직 전체가 해결을 위해 노력할 기미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모 중소기업 사장이 찾아와 늘어놓은 넋두리 아닌 넋두리다.

사실, 단순 넋두리는 아니다. 분명 조만간 그로 인해 조직의 명운이 위태로울 정도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처럼 보였다. 하지만 회의에 참여한 직원들은 하나 같이 모두 따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다른 종류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도 자신의 문제처럼 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그게 커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람처럼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일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지 대책 세우기에 바빴다. 그러한 미봉책은 당연히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 자체를 덮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이 이런 상태다. 변화는 싫고, 그 변화를 하자고 들고 일어서는 누군가는 조직 전체에 미운 털이 박힌다. 그게 설령 리더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이 결국 남 좋은 일을 시킬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애초에 그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

조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말하고 듣는 문화’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컨설팅이나 그와 유사한 도움을 줬던 기업의 대부분은 신기하게도 ‘융화’라는 조직 내 적절한 화학 작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늘 별도로 설정되어 있었다. 마치 역할 놀이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는 인형극을 보는 것과 같았다. 논의과정을 통해 정답이 없는 회색지대 속에서, 가장 올바른 ‘해답’을 찾고자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리에 의해 물고 뜯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리더가 말하는 그게 곧 법이 되었고, 이를 거스르는 누군가는 리더에 의해 숙청당했다. 혹은 리더의 역할을 하는 실무자 중의 빅 마우스가 이미 완벽한 논리에 의해 조직을 장악하여, 자신의 권한을 넘나드는 일을 하기 일쑤였다.

물론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그저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서울로 가도 금방 서울에서 쫓겨날 판이다. 리더가 늘 옳은 판단과 결정으로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꼭 조직의 목표 달성에 큰 기여를 한다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순진한 이들,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는 이들, 그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싫거나 주도하기 거북스러운 이들은 조직의 명운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고스란히 그 피해는 개인들의 몫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문제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조직도 개인도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의 관점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늘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내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의 유지보수, 당연히 해당 활동은 고객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조직의 생존은 성장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히 조직원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직은 주어진 허들을 넘으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 몫은 문제에 따라서 개인들이 갖게 되지만, 이를 얼마나 자신의 문제처럼 인식하는가에 따라 업무 몰입도, 나아가 개인의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인의 조직 몰입도 향상을 위한 노력 중에 하나가 ‘커뮤니케이션 역량’ 강화다. 대부분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절대 그렇게 다루어지면 안 될 부분이다. 말하고 듣고, 그 과정을 어떤 목적 하에 진행하는가에 따라 나도 조직도 계속 바라는 비즈니스 영역에 있고 없고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직의 일은 곧 정의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그 과정은 늘 동료들과 말하고 듣는 논의 과정의 반복을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만약 앞서 묘사한 회의 분위기가 만연된 조직이라면, 과연 이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그만큼 조직 내 올바른 말하기 듣기 위한 문화가 중요하다. 물론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를 올바르게 가게 만드는 것은 조직원의 몫이기도 하다. 결국 얼마나 활발한 상호작용이 있는가에 따라, 건강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직스쿨에서는 늘 의뢰인들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향상을 위한 부분도 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일상 업무 속에서 이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개인들에게 맞는 적합한 방법도 제안한다.

첫 번째, “정답은 없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리더를 포함, 어느 누구도 비즈니스에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히 가장 정답에 가까운 논리에 의해 고객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권한에 치우쳐 정답으로 호도되거나, 의사결정이 고객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권에 의한 결정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두 번째, 듣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들 들을 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들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이는 청력 테스트가 아니다. 따라서 최대한 말하는 이에게 집중하고, 그의 표현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의 리액션을 늘 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에 말하는 이가 알아볼 정도로 리액션을 하는 것에 인색하다. 이 때문에 명확한 의사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말하는 이도 듣는 이의 리액션이 없으면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세 번째, 말을 잘하는 이들을 따라 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반복과 반복이다. 주변에서 말 좀 한다는 이가 있다면 그(녀)가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지, 단어 선택, 그리고 자신의 말뿐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들을 때 보이는 태도는 어떠한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실제 적용하려고 노력해보는 것을 말한다.

말을 누가 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우선 잘 듣고, 들은 부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말하거나,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분명한 어조와 표현을 통해 밝히는 것을 뜻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이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네 번째, 비즈니스 언어에 대해 익숙한 표현을 익히는 것이다. 특히 특정 조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조직의 문화를 대변한다. 당연히 동일한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정확한 뜻을 알고서 사용하려고 해야 한다.

특히 외래어가 많은 관계로 대부분 사전적 정의에 국한된 뜻만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점 때문에 서로 오해가 발생할 수 있고, 그 오해가 더 큰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기왕이면 서로 공통으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뜻을 나누는 활동이 함께 일하기 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전에 오해를 차단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위 활동을 일상 속에 습관화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것은 습관이다. 조직에서 말하거나 듣거나 하는 것이 마치 역할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면, 늘 나는 말하고 듣는 활동으로 조직 내 존재감뿐만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고, 동시에 스스로가 바라는 성장의 과정 중이라 말할 수 있다.

조직 속의 개인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가장 기초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그 노력이란 조직 안팎의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를 위해 잘 듣고 잘 말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지금 조직들의 경직된 부분은 분명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설득 과정상의 성숙된 의사결정문화가 올바르게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느 조직에 가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일’에 집중하기를 원하고, 그 일을 통해 만났다고 해도 그 이외의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관심의 표현을 위해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은 적절한 답이 아니다. 우선 일을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보다 다방면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모두가 열린 관점에서 우리가 하는 일, 우리의 비즈니스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리더도 예외가 아니다. 리더도 한낱 미천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더라면 더욱 큰 귀를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