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그래머는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편성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흔히 IT 기술 분야의 개발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프로그래머는 기술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관에도 프로그래머가 있다. 이들은 한 해에 수없이 많이 만들어지는 영화들 중 영화관에 상영될 작품들을 결정하고 이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잘 알리기 위한 여러 마케팅 전략을 전개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그 이름만으로도 마케팅이 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작은 영화들은 프로그래머들의 판단과 마케팅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작은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그 감동들을 관객들과 나누기 위해 온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가 있다. CJ CGV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아트하우스’의 편성 프로그래머 이원재 파트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영화가 주는 감격에 잠시 감화되고 왔다.

‘작은 영화’의 매력에 끌려 영화계에

“어떤 일을 하는 분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이원재 파트장은 “저는 프로그래머입니다”라고 답했다. 기존에 알고 있는 프로그래머라는 단어와 같은 말이라면 이것이 영화 업계에서 나올 수 있는 소개가 맞는가 싶어 다시 한 번 물었더니 그는 싱긋 웃으며 “영화관에서 상영작의 스크린 편성을 담당하는 이들을 프로그래머라고 합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저는 작은 영화의 매력에 빠져 영화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고 이쪽 일을 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작은 영화들은 저에게 매번, 언제나 새로운 감격을 줍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공부한 이 파트장은 프리랜서 영상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는 지난 2010년 경력 사원으로 CGV의 소규모 영화 사업부 무비꼴라쥬(아트하우스의 전신)에 입사해 영화관 업계에 발을 들였다. 입사 이후 현재까지 약 9년 동안 그는 작은 영화 편성과 마케팅을 구상하는 프로그래머 업무를 맡고 있다. “영화는 원래 좋아했고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 예술 영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시작한 일이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라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소규모 영화관 프로그래머의 어려움

▲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영화 한 작품이 만들어지면 이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결정부터, 영화가 상영된다면 어느 상영관에서 얼마 동안 상영되는지,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을 어떻게 전개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프로그래머다. 이 영화들 중에서도 이원재 파트장은 소규모 영화들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이다. “작은 영화들은 일반 상업 영화들에 비해 수익성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 편성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는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멋쩍게 웃어 보이며 “그 부분이 아마도 이 업무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라면서 “마음 같아서는 개인적으로 웰메이드 작은 영화들을 모두 상영하고 싶지만 현실적(주로 경제적인) 여건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물론 이 사업 자체가 어떤 큰 수익성이 기대되는 분야는 아니지만 영화 상영은 단순히 영화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을 만든 감독 그리고 영화 배급사의 생계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작품성 그리고 수익과 직결되는 대중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잊지 못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늘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하는 이원재 파트장에게 힘을 주는 것은 작은 영화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이다. 그는 “특히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성공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이 일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 파트장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급사조차 이 영화의 개봉을 조심스러워 했지만, 내부 회의에서 저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찬성했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상영을 결정했는데,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대박’이 났다”고 말했다.

▲ 아트하우스의 상영으로 화제가 되면서 작은 영화의 성공사례가 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출처= 네이버 영화

실제로 CGV아트하우스를 포함해 전국 68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평일 좌석 점유율 50%를 넘으면서 히트했고, 결국 아트하우스가 아닌 일반 상영관에 편성될 정도로 ‘대박’을 쳐 전국 관객 73만명이라는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독립예술 영화계의 ‘블록버스터’, 즉 ‘아트버스터’로 회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파트장은 “아, 바로 이런 게 이 일을 하는 보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관객들을 매료시켜라!

영화의 상영 결정으로 프로그래머의 일이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특히 홍보 마케팅 예산이 제한된 작은 영화들의 경우,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영화의 매력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도 프로그래머의 몫이다. 이 파트장은 “어떻게 하면 작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편견을 없애고 매력을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그렇게 해서 아트하우스는 소규모 영화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목해 보는 재미를 더하는 아이디어들을 제안했다. 영화평론가들과 감독 그리고 관객들의 대화 시간을 심도 있게 정례화 한 <시네마톡>, 이를 전국 상영관에 중계한 <라이브 톡>, 미래 우리나라 영화업계를 짊어질 영화학도들에게 영화 산업에 대한 모든 것을 강연하는 <시네마 클래스>, 영화 글쓰기 강좌인 <리뷰의 정석>, 영화와 철학의 만남인 <씨네샹떼> 등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아트하우스가 영화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국내 영화계에서 처음 시도한 것들이다.

그는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 즐거움, 그를 주제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으로 더 많은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여 작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목표, ‘믿고 보는’ 아트하우스

이원재 파트장의 목표는 하나다. 관객들이 ‘아트하우스’가 선정한 영화 혹은 제공하는 콘텐츠를 관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그의 표현 그대로) 믿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고뇌가 있겠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은 영화의 진정성과 신선함을 모든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면서 “특히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시장에서 외면되는 한국의 독립영화들을 아트하우스를 통해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