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문재인 정부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20일 막을 내렸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 총수급 인사들이 동행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LG회장은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에서는 ‘평양공동선언’에서 4.27 판문점 선언 때보다는 보다 구체화된 남북경제협력(경협) 이야기가 나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사업 정상화, 동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 등이 공동선언에 들어 있었다.

또 이와 별도로 합의된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서해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포함돼 있다. 재벌 총수가 동행했고, 이전보다 진전된 경제협력 관련 사항이 합의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4대그룹 고위급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에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구체적 경협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SK·LG “별다른 입장 없다”

총수가 방북한 그룹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남북경협과 관련한 말을 아꼈다. 삼성 관계자는 “남북경협과 관련해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없다”면서 “일반적인 경제인 동행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도 “구광모 회장의 방북에 대해 특별한 입장은 없고, 경협 관련한 논의도 구체적인 것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방북을 마치고 나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다만 최태원 SK회장은 방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양묘장부터 학교까지 여러 가지를 보고 왔는데 그 안에서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어떤 협력을 통해서 한반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어찌 보면 하나도 없는 백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SK관계자는 “남북경협 관련해서는 최태원 회장이 말한 것 정도가 전부고 구체적인 경협 관련 이야기는 논의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방북 소회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경협 관련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이번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것은 많이 듣고 보기 위함”이라면서 “그래야 여건이 허락할 때 일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정이 허락하는 대로 다양하게 보려고 했고 리용남 부총리와 한시간 가까이 미팅을 하며 철도, 관광 등에 관한 질문도 하고 각자 사업 소개도 했다”면서 “달라진 평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사람들도 여유롭고 활기있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특별수행단이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출처=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들 “총수 방문은 의미 있지만 넘어야 할 산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총수들이 동행한 것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체적 결과물이 없지만 일단 직접 북한을 보고, 관계자를 만나고 온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이석기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 총수가 갔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면서 “총수 입장에서 북한의 생각을 확인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향후 남북경협이 본격화된다면 총수들의 결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의미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가까운 시일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우리 대기업도 북한에 진출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엔 제재와 미국의 제재가 있는 만큼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비핵화가 진전돼야 제재 완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찬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현재 대북제재는 매우 촘촘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포괄적으로 돼 있어서 경제 관련해서 제재와 무관한 것이 거의 없다”면서 “남북간의 구체적인 합의가 나오더라도 개별 기업 차원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은 현재로서는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석기 선임연구위원도 “이번 합의문을 보면 사실 4.27 판문점선언보다 경협 관련해서 제한적인 내용만 조금 진전된 수준”이라면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미국이나 유엔의 제재 완화가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대기업에서 기업 총수나 임원을 대상으로 남북경협 관련 강의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거기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철도·도로 연결도 미국의 제재 완화 필요

동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의 연내 추진을 위해서도 미국의 제재 완화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철도·도로 연결은 민간 사업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 사업이기 때문에 제재 유예를 받을 수 있는데 이에 미국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찬호 변호사는 “유엔의 대북제재는 유엔제재위원회에 유예를 요청할 수 있고, 미국 정부 제재도 미국 정부의 재량이 인정되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제재 유예를 인정받을 수는 있다”면서 “착공식 정도는 한미간 협상을 통해 양해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석진 연구위원도 “철도와 도로 연결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북한 제재 완화 의사가 필요한데 이는 비핵화 협상이 잘 진행돼야 가능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