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지난번에 이어 상도동 ‘왕의 터’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필자는 <명당>이라는 영화의 시사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왕이 될 수 있는 터’라는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만든 영화인데, 여기서는 조상의 묘를 쓰는 터인 ‘음택’을 기준으로 왕의 터를 보았다. 필자가 언급하는 왕이 되는 터는 주거지 터인 ‘양택’을 기준으로 했으니 비교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와 상관은 없지만 상도동이 왕이 될 수 있는 터라는 생각은 들었다. 앞에는 한강이 있고 사대문을 바라보고 있으며, 주변의 형세가 상도동을 기준으로 감싸 안으면서 기운이 모여 있는 이 터는 개발로 인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본연의 모습을 분명 지니고 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앞서 칼럼에서 말했듯이 상여꾼이 집단으로 거주해 상투굴이라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영등포구 상도동이 되었다. 이전 일제시대에는 경성부 상도정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동면 상도리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로 영등포구에서 관악구를 분리 신설할 때 관악구에 편입되었고,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관악구에서 동작구를 분구하면서 상도동은 동작구에 속해 오늘날 부르는 지역명이 되었다.

‘위로 가는 길’ 상도동. 이름 따라 가는 것이었을까? 상도동은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주거지였다. 먼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2015년 11월 22일이며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거산(巨山)이다.

대통령으로서 기운은 경상도로부터 받았겠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기운은 상도동으로부터 받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도동 매봉로 2가길 11번지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거지였다. 이 터의 전방으로는 한강이 있으며 주변은 노량진 근린공원 중앙대학교 캠퍼스가 뒤를 받쳐주고 있다. 이곳은 고지대 지역으로써 산을 개발해 만든 학교 터로서 예전엔 산이었다. 현재는 더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 옆으로는 상도터널이 있다. 큰 길을 바로 앞에 두는 것은 사람이 사는 터로 좋지 않지만 큰 길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은 운을 보내고 받는 데 있어서 매우 좋다. 특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접해야 하는 정치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터이다.

조사해본 바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려대 앞에서 거주하다 69년에 상도동으로 주거지를 옮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입문제는 개인정보라 이 정보는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다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현철 대표가(거제미래포럼 대표) 고려대 출신인걸 보면 고려대에서 상도동으로 터를 옮겼다는 말은 일리 있어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라는 이름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계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해당 터에서 거주하며 경쟁했고 자신의 삶을 걸었고 결국 목표한 것을 이룬 전직 대통령들이다.

동교동은 따로 다루겠지만 왕이 나올 목적으로 둘의 터를 비교한다면 상도동이 더 낫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먼저 대통령이 된 것은 김영삼이다. 산을 뒤로 하고 있고 또한 등산을 즐겼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산악회’라는 모임활동으로 정치적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대한민국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을 터전으로 사람을 모으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또한 산으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분명 그릇이 큰 사람이 지닌 풍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단한 마음과 남자다운 풍모는 이미 많은 일화가 있으니 생략한다.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상도동은 현충원의 산 기운인 서달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유일하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쪽의 용마산과 동쪽의 서달산 기운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또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 터의 주인은 아무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