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저희가 한 거래처에게 소위 갑질을 좀 하다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게 오랜 관행이었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문제가 되네요. 여론이 심각해져서 그 거래처와 빨리 합의를 하려 하는데요. 합의금이 생각보다 큽니다. 이게 한 번 전례를 남기면 앞으로 기준이 되거든요. 어쩌죠?”

[컨설턴트의 답변]

질문만 들어보면 귀사의 위기관리에 있어 진정성이라는 측면에 의문이 생길 것 같습니다. 회사의 잘못된 오랜 관행으로 피해를 입은 이해관계자인 거래처에 공감하는 개념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정식으로 공감을 표현하며 살피는 커뮤니케이션을 했겠지요?

요지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액수가 너무 크다. 그래서 그것이 기준이 되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생길 때 다시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들여다보죠. 이 의미는 전사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또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큰 위기상황을 겪었음에도 내부에서는 이런 위기가 또 다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죠.

위기관리는 한 번 겪은 위기는 최대한 노력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자사 스스로 제대로 개선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심각하게 깨달은 것이 없다는 의미죠.

피해 보상은 그냥 이번 위기를 조용하게 넘기기 위한 수단일 뿐, 가능한 그 금액은 저렴해야 하고, 단순히 시끄러움을 방지하는 목적이라는 의미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금액이 아깝고, 또 다시 그런 금액을 여러 번 지불할 생각까지 하니 심란한 것입니다.

‘이번과 같은 위기가 다시 발생하면…’이라는 전제를 ‘이번 같은 위기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다면…’으로 전제를 바꾸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전제를 실행시키기 위해 보다 심각성을 가지고 문제를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에 몰두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은 아까운 엄청난 규모의 피해 보상을 지불할 가능성은 점차 줄게 될 것입니다.

피해 보상 규모에 주로 집착해 문제를 장기화하고, 결국 모든 피해를 감내해가면서 장기간 피해 보상 규모 조정에 매달리는 유혈전은 이제 그만 하자는 것입니다. 대신 해당 위기와 같은 상황을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내부 각오를 다지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위기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만들려 스스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의 일이라는 게 그렇게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쉽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 다시 발생한다면… 이런 우려를 한다는 것이죠.” 좋습니다. ‘만에 하나’라는 말은 아주 훌륭합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그 개념은 큰 도움이 됩니다.

말한 것처럼 유사 위기가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발생하게 된다면, 그나마 그 위기관리는 상당히 잘 되어 있는 셈입니다. ‘다시는 이런 유사한 위기를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가능성입니다. 개선을 통해 재발 가능성을 ‘만에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니까요.

반면 피해 보상과 그 규모에만 집중하며, 실질 개선과 재발방지 대책 없이, 각오나 결심도 없이 다시 예전의 관행으로 회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사 위기 발생 가능성은 ‘십에 하나’ 오에 하나’의 꼴이 될 것입니다. 계속되고, 반복되는 것입니다. 피해 보상 또한 당연히 반복되며 액수는 더욱 더 커져만 가겠죠. 아무것도 관리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가 된다는 이야기는 사실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전례를 감안할 일을 없게 만들자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