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는 치키타브랜드인터내셔널 같은 메이저급 회사들만이 운용하던 대형 냉장 화물선의 수요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출처= CMA CGM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요즘 해운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은 냉장(동) 운송부문이다. 영국 해운조사분석기관 드류리(Drewry)에 따르면, 신선 식품 해상 운송 수요가 일반 제품의 수요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증가하면서 냉장(동) 운송에 대한 해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리퍼’(Reefers)라고 하는 냉장 컨테이너로 신선 식품을 한 달 이상 보관할 수 있게 됐고, 또 하나는 유통업체들이 이를 이용해 오렌지 주스에서부터 랍스터까지 다양한 신선 식품들을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안전하게 보낼 수 있으면서 교역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과거에는 바나나 등 다양한 종류의 과일들을 판매하는 미국의 치키타 브랜드 인터내셔널(Chiquita Brands International Inc.) 같은 굴지의 회사들만이 대형 냉장 시설이 있는 화물선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값비싼 신선 식품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프랑스의 대형 선박회사인 CMA CGM의 리퍼 사업부를 이끄는 에릭 레그로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산층이 늘면서, 더 이상 쌀 같은 기본 식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들이 과일, 채소, 신선 육류 같은 식품들을 보다 많이 소비하면서, 해운업체들은 보다 더 많은 제품들을 냉장 상태로 운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류리에 따르면 냉장 컨테이너의 비율이 전체 컨테이너 물량의 7%에 불과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냉장 컨테이너의 수요는 매년 5~6% 성장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생산품을 운반하는 일반 컨테이너의 성장률은 2~3% 수준이다.

드류리의 공급체인 컨설턴트 스티진 루벤스는 오렌지 주스, 의약품, 전자 담배, 캔디 같은 새로운 제품들이 냉장 운송 시장에 진입하면서 시장 성장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 냉장 컨테이너 리퍼(Reefer)는 랍스터 같은 신선식품을 한 달 이상 보관할 수 있다.    출처= APL

리퍼 냉장선은 주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가는 노선에서 사용된다.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 및 뉴질랜드와 같은 지역의 수출업자들은 겨울 동안 북쪽의 수요를 보충하기 위해 신선한 농산물을 이동시킨다. 미국과 캐나다도 야채, 감귤류 및 기타 과일과 함께 고기와 해산물을 주로 아시아 지역에 수출한다.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덴마크 머스크의 엔소피 제를랑 칼슨은 “10년 전만 해도 덴마크에서 딸기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3개월뿐이었지만, 이제는 리프스 덕분에 그리고 소형 선박회사부터 대형 선박회사까지 모두 그런 공급 체인에 참여하는 덕분에, 이제는 1년 내내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페루의 과일 판매 회사인 선프루츠팩(Sun Fruits Packs SA)은 지난해 리퍼 컨테이너를 이용해 포도 700컨테이너를 미국 필라델피아에, 아보카도 220컨테이너를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선적했다.

선 프루츠의 월터 뮤노즈 최고경영자(CEO)는 “리퍼는 우리 사업에 절대로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단 한 컨테이너의 과일이라도, 남미 현지 시장에 파는 것보다도 1.5배의 가격으로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페루에서 필라델피아까지 포도를 운송하는 데는 18일이 걸린다. 그동안 과일이 숙성되지 않도록 조절된 상태로 ‘잠들어 있다’가 미 동부 해안에 도착해 슈퍼마켓으로 유통된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신선 농산물은 생산 현장에서 단일 목적지까지 큰 냉장 공간이 있는 일반 화물선인 브레이크 벌크선(화물을 도착지별로 따로 구분한, 혼재 화물선)으로 운송되었다.

브레이크 벌크선은 대개 치키타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만이 운영했으며, 주로 바나나가 가장 많았다. 그런 선박을 부릴 여유가 없는 규모가 작은 생산자들은 외국 시장을 넘보지도 못하고 현지 시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치키타는 바나나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겉을 하얗게 칠한 ‘그레이트 화이트 선단’(Great White Fleet)을 운영했지만 점차 이를 축소하고 리퍼로 대체해 나갔다. 올해 초에는 머스크로부터 컨테이너선을 전세내고 리퍼 2500컨테이너를 주문했다. 이 리퍼는 컨테이너 안의 온도를 모니터하고 과일의 숙성을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산소 및 질소의 양을 통제할 수 있다. 화주들은 위성 추적을 통해 화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머스크와 CMA CGM은 그 동안 항공으로 운송되던 상품들을 해상 운송으로 끌어옴으로써 사업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출처= TruckDriverSalary.com

워싱턴주 이사콰(Issaquah)에 있는 뱅가드 인터내셔널 그룹 글로벌 판매 담당 부사장 팀 클라크는 “과거에는 워싱턴에서 사과를 싣기 위해 12월에서 1월까지 세 척의 화물선을 전세냈지만, 이제는 리퍼 덕분에 연중 내내 정기 항해선을 운항함으로써 공급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뱅가드 그룹은 미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칠레의 농장에서 사과, 배, 체리, 감귤 같은 과일들을 아시아 시장에 매년 9000컨테이너를 선적한다. 화주들은 전 세계 각국에 신선 농산물을 배송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운항하는 선박들이 많아지면서 낮은 운임의 혜택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머스크와 CMA CGM은 이제 그동안 항공으로 운송되던 상품들을 해상 운송으로 끌어옴으로써 사업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머스크의 칼슨은 “장미 같은 절단 꽃들이 큰 시장이다. 우리는 개화(開花)를 늦추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CMA CGM은 살아 있는 랍스터 운송도 넘보고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유럽으로 운송되는 랍스터 1%만이 리퍼를 이용하고 있다. 리퍼 컨테이너는 랍스터를 운송하기 위해 랍스터가 사는 바닷물의 산소 수준 및 수질을 복제하는 여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CMA의레그로스는 “우리는 항공 운임과 동일한 가격을 청구하고 있지만 랍스터가 죽을 확률은 제로다. 게다가 항공으로 운송되는 랍스터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모니아를 방출하는데, 간혹 랍스터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며 리퍼의 경쟁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