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서울시가 지하도 상가 점포 2788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하면서 지하상가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하루 아침에 권리금을 날릴 수밖에 없어진 이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들은 "왜 자기들을 괴롭히느냐"면서 "그냥 내버려 달라"고 읍소했다. 

▲ 인적이 드문 17일 오후의 종각 지하상가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승현기자

서울에 지하상가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1970년대다. 당시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시는 이후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를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20년간 허용된 임차권 양수·양도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린 것이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확인하기 위해  17일 오후에 직접 지하상가를 찾았다. 종각역 지하상가는 조용하고 암울한 느낌을 줬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실감나듯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손님이 없는 매장을 들어가 상인들에게 실정을 묻자니, 기자들의 마음이 무겁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을 연지 1시간이 다 돼 가는데 개시도 못했다"는 차수연(58)씨는 권리금에 대해 묻자 눈시울이 금방 붉어졌다. 종각 지하상가에서 3년째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권리금으로 3억5000만원을 냈다. 그녀가 권리금에 대해 이야기하자 눈물을 보인 사연은 이러했다.

그가 낸 권리금은 그의 남편이 30여년동안 직장생활 한 후 받은 퇴직금이었다. 예순을 코앞에 둔 부부의 막내아들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자식을 키워야 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회사의 퇴직권유에도 차씨의 남편은 꿋꿋이 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회사의 등살에 밀려 남편은 결국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아직 어린 아들의 학비 등등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차씨는 남편의 퇴직금을 지하상가 속옷매장에 투자했다.

차씨에게 지하상가에 들어온 이유를 묻자 “돈이 많은 사람들이 공기도 좋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지하상가에 들어와 장사할 이유가 없다”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그나마 저렴한 지하상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가족들 책임지려고 들어왔는데, 장사는 안 되고 빚만 늘고 있는데 권리금까지 금지한다니 속이 탄다”며 눈물을 훔쳤다.

게다가 얼마 전 그의 남편은 간암수술을 했다. 차씨는 남편이 권리금에 대한 사실을 알면 쓰러질까봐 가족들에게 말 못하고 혼자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남편이 평생 고생한 돈을 전부 상가에 투자했는데, 적자도 모자라 권리금까지 금지됐다고 하면 남편의 근심만 늘리는 꼴이라 말할 수 없다”면서 “지금보다 적은 권리금을 내고 오랫동안 지하상가에서 장사하면서 원금을 회수한 상인들은 몰라도, 우리처럼 이제 막 들어와서 장사도 안 되는데 권리금을 금지한다니 너무 억울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하상가가 서울시의 것이니 매매하지 말라'는 주장에 그는 “지하상가는 상인들이 만들고 키워서 서울시에 기부한 것”이라면서 “지금도 지하상가 유지·보수비용을 전부 상인들이 내는데 어떻게 서울시의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라인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김선영(55)씨는 8평짜리 매장의 권리금이 4000만원이라고 말했다. 매장에 입주할 당시 권리금 4000만원에 인테리어 등 시설비 3000만원이 더 들어, 총 7000만원을 썼다고 하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한 이후 매출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계약기간이 5년인데, 장사가 안돼서 권리금은커녕 위약금을 내야 할 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씨는 “지하상가에 장사가 잘돼서 권리금이 있는 매장은 극소수”라면서  “시가 권리금을 막는다면 불법거래가 늘어날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종각역 지하상가에서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60대 A씨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시정책 때문에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A씨는 “과거에는 장사로 돈을 벌었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권리금은 상인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A씨도 차씨와 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지하상가는 기부채납형태로 권리금뿐 아니라, 공사비에도 상인들의 돈이 들어갔는데 권리금도 없이 나간다면 모두 허사가 된다”면서 “계약이 끝나면 보상도 없이 일거에 나가는 셈이다. 후에 임차인이 들어온다고 하면 시에서 보상해주는 것도 없지 않나”며 지하상가를 상인들이 만든 것임을 강조했다.

서울시가 상위법 문제를 제기하는데 대해서 그는 “시가  상위법이 문제라며 법을 개정하는 것은 상인들 목구멍을 자르는 것”이라면서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면 법을 바꿔야지, 현실을 자꾸 바꾸려고 하니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제발 상인들을 내버려 달라'면서 극단의 행동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 2017년 4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 결과 권리금 존재비율은 71%로 나타났다. 출처=한국감정원

지난해 4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 기준으로 상업용 상가의 평균권리금은 4777만원으로 조사 됐으며, 권리금 존재 비율은 71%에 이른다.

현실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인들에게 권리금 금지법은 천청벽력같은 소식이다. 종각역 지하상가만의 일이 아니다. 강남역 지하상가는 종각역보다 훨씬 막대한 권리금이 유통되고 있다.

A씨는 폐업 전에 단체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리금은 상가에서 수백년을 이어온 장사의 매커니즘이다”라면서 “왜 하필, 다름 아닌 우리 대에서 그걸 끊어야 하는 것이냐”고 허탈해했다. A씨는 “남들이 기득권이라고 욕하지만, 우리 돈으로 얻은 기득권이지 않나”며 억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