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국내 대기업들이 줄줄이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LG그룹을 필두로 투자액과 고용인원이 명시된 투자·고용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데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와 현장소통 간담회가 이뤄진 다음에 대부분의 계획이 발표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는 기업을 압박해 투자를 끌어내고, 기업은 정부 눈치 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6일 현장 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기획재정부

LG·현대차·SK·신세계·삼성·한화 줄줄이 투자계획 발표

LG그룹은 지난해 12월 김동연 부총리와 현장소통간담회 후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LG그룹은 올해 중에 19조원을 국내에 신규 투자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 투자액인 17조6000억원보다 8% 증가한 것이다. 세부 내용으로는 전기차 부품, 자율주행 센서,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바이오 등 혁신성장 분야에 50% 이상 투자를 추진키로 했다.

고용은 혁신성장 분야의 연구개발(R&D) 확대와 고부가 일자리 창출 강화를 위해 1만명 규모의 신규채용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을 위해 LG그룹 협력사를 대상으로 8581억원의 무이자·저금리의 직·간접 대출을 운용키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올해 1월 김동연 부총리와 현장소통 간담회 후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인공지능(AI)을 포함한 5대 신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향후 5년간 이들 분야에 23조원을 투자하고 4만5000명을 채용키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차량전동화,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인공지능, 미래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의 5대 신사업에 주력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상생협력 노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1차 협력사 300여사, 2차와 3차 협력사 5000여사 등과 신기술 공동개발, 전문교육 실시 등 24개 R&D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7316억원 규모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상생결제시스템 활용을 확대키로 했다.

▲ 최태원 SK회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현장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기획재정부

SK그룹도 지난 3월 혁신성장 현장소통 간담회 후 향후 3년간 80조원 투자, 2만8000명을 고용한다고 밝혔다. 반도체·소재, 에너지, 차세대 ICT, 미래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5대 신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고용을 확대키로 한 것이다.

또 올해 5400억원 규모인 동반성장펀드를 내년에 6200억원으로 늘리고 기술협력 등을 위한 동반성장센터를 신축키로 하는 등 협력사 경쟁력 강화 지원도 확대키로 했다. 또 사회적 기업 제품을 우선구매하고 사회적 기업 전용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어 신세계그룹도 6월 간담회 이후 향후 3년간 연평균 3조원 이상의 총 9조원의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오프라인 매장 확대, 디지털 혁신(스마트카트, AI쇼핑) 도입에 6조원, 신사업 발굴에 1조원 등을 투자키로 했다.

신세계그룹은 채용도 향후 3년간 투자 계획에 따라 3만명 이상 신규 채용키로 했고, 임금하락 없는 근무시간 단축(주 35시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전통시장 내 상생스토어 확대, 연 6000억원 규모의 협력사 금융지원, 중소·벤처·창업기업의 판로지원 등 상생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대기업 투자계획 발표의 화룡점정은 삼성그룹이 찍었다. 삼성그룹은 지난 8일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6일 김동연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현장소통 간담회가 열린지 딱 이틀 만에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삼성은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 국내 투자는 130조원으로 연 평균 43조원이 투자되는 것이다. 삼성은 반도체, 인공지능(AI), 5G, 데이터센터, 전장부품에서 신규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국내 생산 거점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키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AI, 5G, 바이오사업에는 약 2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삼성은 미래 성장사업으로 AI, 5G, 바이오, 반도체 중심 성장부품을 ‘4대 미래 성장사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또 소프트웨어 역량과 스타트업 지원 경험을 활용해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했고, 상생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중소기업 2500개사의 스마트 팩토리 전환과 판로 개척 지원, 4조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 프로그램도 상생협력을 위해 삼성이 내놓은 청사진이다.

한화그룹은 김동연 부총리와 현장소통 간담회를 갖진 않았지만 지난 12일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한화그룹은 향후 5년간 22조원을 투자하고 3만5000명을 채용키로 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한화는 2022년까지 항공기 부품·방위산업 분야에 4조원, 석유화학부문에 5조원, 신규 리조트, 복합쇼핑몰 개발 등 서비스 산업에 4조원이 투입된다. 태양광 사업 분야와 금융 부문에도 투자 금액을 조만간 확정해 확대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화는 상생·동반성장과 청년 창업, 취업을 위한 플랫폼도 구축하기로 했다. 청년, 스타트업을 위한 투자펀드를 운영하고, 인재육성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드림플러스’를 통해 청년 취업과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와 해외진출 지원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40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 조성으로 협력사의 저금리 대출과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사의 연구개발, 해외 판로 개척 등도 적극 도울 예정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 6개 주요 대기업 투자고용계획과 내용.

 

“기업의 기본 활동” VS “좋은 그림 아니다”

이처럼 지난해 LG그룹을 필두로 최근 한화까지 대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 살리기에 긍정 영향을 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이 정부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실 투자·고용 계획이라는 것은 연도별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서 특정 시점에 이벤트성으로 발표한다는 시선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라면서 “김동연 부총리나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해오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투자계획을 보면 구체적으로 명시된 부분이 많은데 삼성이 경쟁력을 가진 부분에서 좀 더 잘해보겠다는 취지의 투자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 관계자도 “유통업계에서는 오프라인 매장 확장과 같은 투자 계획은 장기적으로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사안”이라면서 “특별히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대기업 총수를 직접 만난 후에 기업이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은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라는 평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 현 정부 들어 대기업이 기업활동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닌데, 정부 고위 인사가 기업 총수들을 만나고 곧바로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해 버리면 기업의 눈치 보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정권에 상관없이 이런 그림은 구시대적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발표를 해도 실제로 집행이 되려면 이사회 결정 등을 거쳐야 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경제지표가 좋지 않아서 투자를 늘리려는 시도 자체는 좋지만 정부 고위 인사가 기업 총수를 만나고 와서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