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호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자유한국당의 혁신과 쇄신을 위해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의 국가주의 어젠다(Agenda) 선택은 자유한국당의 현실에는 적절한 것 같다. 첫째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진보진영의 담론에 발목 잡거나 터무니없는 막말 대응에 그쳤다면 국가주의 프레임은 논쟁의 수준을 그나마 높일 수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내세운 국가주의 프레임은 자유한국당에도 '자유'라는 가치를 분명히 하는 '일석이조' 효과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국가주의가 히틀러의 나치즘, 국가사회주의나 스탈린의 극좌 국가주의와 역사적인 궤(軌)가 다르다.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문화유전자(Meme)을 계승했기 때문에 개혁의 길 또한 험하고 복잡하다.

동아시아는 1945년 8월15일 일본제국 패망 이후 진공청소기로 빨려들어가듯 사회주의 체제로 변했는데 그 이유는 ‘아시아적 농촌 공동체’ 가치관의 영향이 크다. 아시아적 농촌공동체는 대지주의 소작농들 아니면 독립 자작농들이지만 소작농만큼 궁핍한 농민들의 공동체다. 소나 말 같은 가축으로 인간 노동을 대신하기 어렵고 기계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따라서 협업은 생존의 기본이었다. 가구당 토지 소유 면적도 거기에서 거기기 때문에 늘 궁핍하였다. 협업을 하다 보니 서로 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개성과 개인의 의사는 자주 무시됐다. 촌로, 연장자의 권위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기둥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이 상상한 역사 단계를 거치지 않았지만 가난으로 평등한 점서 사회주의 이상을 그럭저럭 실현했다 볼 수 있다. 이 공동체 문화는 사유재산 개념이 희박했고 개인 창의력이나 개성이 집단 문화를 넘는 행동은 금기시되었다. 또한 서구나 중동과 달리 일신교가 가진 종교적 권위가 약했다. 농촌 촌로들이 쥐고 있던 인간중심 권위주의는 그대로 공산독재로 이어졌다. 멀리 갈 것 없이 북한과 주체 수령체제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아시아적 농촌공동체의 뿌리를 갖는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Meme)는 개인 개성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보다 아시아적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 미국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약화될 때, 정확히 북한이 그토록 바라는 종전선언 후 미군이 한반도에서 빠져나가면 한국인들은 체질상 ‘신(新) 시대 중국식 사회주의’나 북한식 ‘주체사상 수령주의’ 체제로 자연스럽게 빨려갈 가능성도 크다. 한국인들은 소수 정치 엘리트들의 독재, 경쟁보다 공공의 자비(소위 공동선)를 강조하는 성리학적 통제체제에 체질적으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성리학 이데올로기로 조선 500년을 그렇게 세뇌됐고 불완전하지만 서구적 자유 시장경제를 맛본 것은 채 60년도 되지 않았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헌법 15조는‘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상당한 보상을 지급함으로써 행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후반부 제87조에는‘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고 명시돼 있다. 1948년 헌법 제정 때부터 재산권 자유보다는 공공복리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재산권 제한을 더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사기업 경영이 상식인 통신, 금융, 보험, 무역업까지 국가통제나 국영 혹은 공영 운영한다는 발상은 민간의 창의성과 자발성에 의한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니 전무(全無)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래다.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지금 같은 조악한 국가주의나 누굴 위한 것인지 애매모호한 공동선(共同善)만 내세우는 집단주의 사회는 변화의 쓰나미에 휩쓸려 갈 것이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지 않지만 개인 창조성·자율성을 보장하는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시작해야 하는 임무는 대통령에게 나랏님의 권력을 허용하는 현행 헌법의 개정과 선진국 수준의 ‘규제개혁’이다. 문화유전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정치개혁보다 지난(至難)하다. 자유한국당 비대위가 명심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