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탓에 올해는 초져녁에 집 근처를 주유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며 곳곳에 사소한 지뢰(?)가 많은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주인장이 정치 얘기를 끝도 없이 해서 안 가게 된 칼국수집,

서로 아는 처지인데도 태반이 썩은 복숭아,상한 포도를 권해준 슈퍼 주인,

옷을 제 때 배달해 달라고 요청해도 무시로 그걸 어기는 세탁소 집 등.

그들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다시는 그들 집을 안 가게 되었는데,

요즘사 집을 들고 날 때마다 묘하게 그들 집 앞을 자주 지나치게 됩니다.

마음 한편으로 뜨끔해지기도 합니다.

그즈음에 시골로 이사해 사는 친구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친구 집 포함해 아홉 집이 띄엄 띄엄 있었습니다.

어느 집에서 마당 옆 밭에 화장실 퇴비를 했는지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또 어느 집은 무슨 일인지 집 앞에 수확한 채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는데,

녹아 내리고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또 어느 집은 남자가 술고래라 자주 부부싸움을 해서 동네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네요.

물론 감자 쪘다고,막 겉절이 했다고 나누어 주는 집도 있고,

나무와 낙엽 태우는 구수한 냄새와 그럴듯한 연기도 내주는 집들도 있습니다.

마을 길을 걸으면서 담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며 가는 시골길이기도 했습니다.

친구에게 내가 요즘 서울살이서 느낀 얘기를 했더니,망설임 없이 한마디 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내일 또 봐야하잖아"

선택지가 많으면 자유가 아니라,마비라하죠?

서울살이서 저런 정도의 실례면 내일 안보려 할텐데,

이들은 내일 보야야 하기 때문에 저렇게 사람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더위에 지쳐 밖으로 나서도 아파트들에 막혀 변변한 바람골 하나 없는 도시,

더구나 시골서 늘 보는 너른 산하나 평야는 언감생심.

바로 그런 목마름이 서울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든 것 아니었을까?

그러며 시골쥐와 서울쥐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지만,늘 쫒기며 사는 서울쥐를 보고,맛은 없어도

안전하고 무서운게 없는 시골이 더 좋다며 다시 시골로 향하는 시골쥐.

휴가 때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꼽히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키 카잔스키의 묘비명도 생각났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자유다'

언제나 무욕에,두려운게 없는 저 상태가 될 수 있나 생각해본거죠.

계절을 몸으로 느끼고,삶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하는

여기 시골분들이 그쪽에 더 가까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시골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