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만 쓰지 않으면 기자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답답한 사무실에 얽매여 있을 필요도 없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을 만나서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기자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언론이라는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있는 그들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하지만 기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쓰는 것’이다.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것에서 힘이 나온다.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물어보든 간에 대답하는 이는 부담과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를 그들은 쓰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독자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쓰는 사람의 관심에 달려있다. 언론 매체들마다 관심이 조금씩 상이해서 같은 사안이라도 기사의 무게 중심이 다르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왜 그런 것을 묻느냐고 하지만 기자는 단 한 번도 무엇을 쓰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카메라를 끄고 찍지 않을 것처럼 하거나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듯 수첩을 덮고 난 뒤에 오히려 더 많은 특종이 나온다. 결국 언론의 힘은 무엇을 쓸 것인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또 기자들은 무엇을 쓰라고 하는 것보다 무엇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논리로 꺾어 이기려는 마음이 화를 부른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일이 항상 까칠하고 건조한 취재와 응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자와 커뮤니케이터는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부대끼고 겪는 온갖 애환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한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소속과 입장은 달라도 마치 한솥밥을 먹는 사이처럼 끈끈하게 발전한다. 다만 그 단계까지 가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뿐이다. 대개 처음에는 사람보다 일이나 드러난 문제를 앞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까칠하게 접근하게 되고 그런 그들을 논리로 꺾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지 몇 년 동안은 이런 생각 속에 있었다. 물론 꺾겠다는 생각보다는 취재하는 그들의 불완전한 논리를 필자의 완벽한 논리로 막아내고 싶은 생각이었다. 어렵사리 사업준비를 해왔고, 숱한 난관을 극복하며 진행해 온 과정들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기도 했다. 법원, 국회, 정부부처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자존심이었기에 언론 앞에서도 당당해지고 싶었다. ‘저들이 문제인데, 왜 우리가 문제인 것처럼 파고드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딱딱하게 논리부터 앞세우지 말고 좀 더 진솔하게 다가서고 공감을 샀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랬다고 하더라도 대세가 뒤집어지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가짜휘발유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어느 날, 모 방송사 카메라맨과 함께 기자가 들이닥쳤다. 힘 있는 쪽에서 많은 제보도 있었다는 얘기도 듣던 터였다. 그 방송사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관심 있는 연락도 많았지만, 대세가 불리해지던 그때는 접촉 자체가 부담이었다. 카메라를 앞세운 기자는 기세가 등등했다. 일단 임원 사무실로 안내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깐깐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 시간여 동안 임원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대화를 한참 나누면서 처음에 기세등등하게 임원과 필자를 궁지로 몰던 질문 공세가 차츰 누그러졌다. 각종 자료집도 보여주고 그간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듣던 기자가 어느 순간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 마디를 쏟아냈다.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네요.”

‘이런 일도 있구나.’ 전반적인 사업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간 사람들을 만나면서 숱하게 했던 것이었는데 그런 반응을 접한 건 처음이었다. 들어올 땐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로 왔는데 감동이라니 의외였다. 무슨 얘기에 어디서부터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됐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넘어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에 누군가 감동받을 수 있구나.’

“들었던 것과 다르네요.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절차도 밟아왔는데, 이런 상황이라니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밤 균형감을 제대로 갖춘 뉴스가 방송을 탔던 것은 당연했다. 회사 입장이 많이 반영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해준 것은 큰 수확이었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사의 프라임 뉴스 시간대였다. 힘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사람에게 집중하라, 열린 관계는 상승작용을 동반한다

한참 뒤에 또 다른 기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한 일이 있었다. 회사가 힘들어져 홍보대행사 알바 일을 하며 투잡을 뛰었다. 낮에는 담당 클라이언트 신제품을 들고 유통담당 기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점심 때 만난 사람은 모 일간지 차장 직급의 여기자였는데, 업계에 소문이 자자했다. 자료가 조금이라도 허술하거나 하면 기업 담당을 야단치기도 하고 사소한 것도 지적했기에 부담스럽고 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필자도 이미 호된 경험을 해봤기에 제대로 눈도 쳐다보기 어려웠다. 신제품 관련 자료를 메일로 보냈는데, 그냥 기다릴 수가 없어 자료를 챙겨서 나섰다가 낯을 붉힌 일이 있었다. 무작정 신문사로 찾아갔다. 붐비는 편집국 한 가운데서 선 채로 인사만 하고 자료를 내밀었는데, 엄청난 면박을 받았다. ‘종이 아깝게 출력은 왜 하냐’는 것이었다. 들고 갔던 자료는 주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는 내내 뒤통수가 뜨끈뜨끈했다. 하지만 다음날 1단짜리 신제품 소개기사가 신문에 실려 있었다.

그 이후, 어렵게 식사 자리에서 만나긴 했으나 눈치 봐가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난 김에 개인적으로 소송했던 것이며 덕분에 갓난아기와 여관에서 일주일간 고생했던 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자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것이 보였다.

“웬만하면 눈물 흘리지 않는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눈가를 훔쳐내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그는 워킹맘이었다. 그래서 동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 뒤로는 업계 전체가 무서워하는 그 기자도 필자에게는 부담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살갑게 대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간지 여성 부장, 상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던 것이 있다.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대하면 상대도 문을 연다. 마음의 문이 바로 열리는 사람이 대다수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 결국에는 열린다. 열린 관계는 상승 작용을 동반한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면 성과로 이어진다. 단, 전과 후가 뒤바뀌면 안 된다.

예전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하는 생각에 놀랍다. 수년 전 TV에서 노래경연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부터인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나와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곤 했다. 그런데 더 와 닿은 한 가지는 예전 젊었을 때보다 고음도 덜 올라가고 외모도 나이가 들어 왠지 노래 자체는 이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과는 다르게 더 짙은 감동으로 와 닿는다는 것이다.

노래에 인생을 담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 불렀던 노래들을 산전수전 다 겪고 난 뒤에 체력이나 기교는 예전만 못하지만, 관객과 소통해 가면서 부르는 그들은 그냥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을 선사하는 아티스트가 된 것이라는 결론이다.

어느 틈엔가 그들은 노래만 잘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숙미가 갖춰진 가수들은 노래한다고 말하지 않고 관객과 시청자와 소통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스튜디오에서 연습하던 것을 무대로 잘 옮겨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들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말로 들린다. 기교 섞인 고음을 잘 내는 것보다 듣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에 감동이 배가 된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만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 무대 위 아티스트도 커뮤니케이터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