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발표회에 참석한 가운데, 행사장에서 소아당뇨 환우 엄마인 김미영씨를 만나 화제가 됐습니다.

 

김미영씨는 아들은 소아당뇨 환자입니다. 소아당뇨 환자는 하루에 10번 이상 바늘로 피를 뽑아 혈당을 체크해야 하는데, 올해 10살이 된 소년이 감내하기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김미영씨는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외국에 피를 뽑지 않아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의료기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구매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술자라는 경력을 살려 24시간 연속 혈당측정기를 찾아 스마트폰과 연동, 인슐린을 주입하는 전용 앱까지 만들었습니다. 1형 당뇨 환우회 대표로 활동하며 알게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혈당측정기를 구매해주고 자기가 만든 앱도 함께 건냈습니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치하의 말 대신 고발을 택했습니다. 김미영씨의 행위가 의료기기법 위반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한 행동이 불법이 되어 당국의 조사를 받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의료기기법은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안전하고 검증된 의료기기를 위한 최소한의 검증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미영씨의 사례는 다릅니다. 의료기기의 안정성과 효능을 직접 확인하고 끊임없이 설득했으나 당국은 '법대로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행사장에서 김미영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은 후 "의료기기 규제에 깊게 반성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환자의 요청이 있다면 식약처 산하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이 직접 의료기기를 수입해 환자들에게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미영씨를 직접 만나 의료분야의 규제혁신을 다짐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정부의 규제 개혁 의지에 큰 힘이 되어줄 전망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갑자기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연기하며 공무원들의 규제 혁신 의지를 질책한 후, 가장 민감한 영역인 의료에서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대통령이 공무원 조직까지 질책하며 현장에 나가 직접 규제 개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현재 국내 ICT 업계는 정부의 규제 개혁 의지만 믿고 버티다 당장 무너질 판국입니다. 모빌리티 업계에서 카풀앱 풀러스는 크게 휘청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규제 개혁 의지를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빠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의료분야를 중심으로 다른 분야에 원 포인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장병규 4차 산업혁명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카풀앱 논쟁으로 현장의 스타트업이 위기에 처했다. 규제 개혁과 강화의 판단 속도를 빠르게 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질문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나아가 "스타트업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스타트업은 자주 망한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여유 부리다가 진짜 스타트업은 다 망했고, 4차 산업혁명 위원회는 택시업계를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

▲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정부 차원의 ICT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9일 서울 분당 티맥스소프트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열린 SW업계 간담회에서 주52시간 근무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던 중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유 장관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할 당시와 지금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개혁을 위한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정지상태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유명무실해진 4차 산업혁명 위원회에 힘을 실어주고, 다양한 인적쇄신을 시도한 후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합니다. 이제는 무조건 속도전입니다. 단순한 질책을 넘어 공무원들이 규제 개혁에 의욕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발판도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현 정부는 지금까지 규제 개혁에는 미온적이면서 이상하게 민간시장에 대한 과도하게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난립하기 시작한 지역페이가 대표적입니다. 민간 시장에 과도한 규제를 가하면서 민간 시장이 해야할 일을 정부가 하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누가 생각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제 무조건 속도전이 필요합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봅시다. 중국은 송나라와 원나라 시절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커다란 부를 축적했습니다. 특히 송나라는 유럽 산업혁명 직전까지 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세계 경제의 큰 기둥이었습니다.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민간 무역이 최대 부흥기를 이뤘습니다.

명나라가 들어서며 상황이 변했습니다. 명나라는 1368년 해금정책을 펴며 민간인의 자유로운 무역을 규제했고, 제한된 조공무역만 고집했습니다. 명 태조는 '한 조각의 널빤지도 바다에 띄우지 마라'며 개인이 바다로 나가는 일을 철저히 막았다고 합니다. 조공무역으로 중화민족의 위엄을 살리는데는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과도한 규제, 과도한 국가의 민간 시장 진입입니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명나라는 조공무역으로 황제국의 입지는 다졌지만 경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명나라와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던 일본인들은 해금정책 때문에 정상적인 사업을 할 수 없자 칼을 쥐고 왜구가 됐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