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지난 2015년 10조원을 돌파했다. 규모는 그다음 해에도 성장을 이어갔고, 지난해에도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인기를 끌고 있는 대형 모바일게임들의 ‘억’ 소리 나는 매출액 행진을 보면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게임 시장은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의 위치에 왔을까.

▲ 7080년대 이용하던 게임기 모습. 출처=이미지투데이

“엄마, 오락실가게 100원만”

1970년대 동네에 오락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교 앞 문방구 앞에서 미니게임을 즐겼다. 동네 아이들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1980년대로 넘어가며 ‘갤러그(남코, 1981)’ ‘제비우스(남코, 1984)’ 등이 인기를 끌며 동네 아이들을 오락실로 불러들였다. 갤러그는 남코에서 발매한 아케이드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갤러그라고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갤러가’다. 은하계를 의미하는 ‘갤럭시’와 나방이란 뜻의 '蛾(가)'를 조합한 이름이다.

▲ 갤러그 플레이 모습. 출처=위키미디어

이 게임은 장수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2차원 화면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적의 움직임을 요리조리 피하고 총알을 쏘아서 맞히는 슈팅게임의 상징이 됐다. 당시 한판에 50원을 넣으면 게임을 할 수 있었는데 동전 하나로 죽지도 않고 마냥 게임을 즐기는 ‘고수’들은 오락실 주인아주머니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인기 게임들이 아케이드게임을 선도하며 오락실은 전국으로 퍼져 2만여개까지 증가했으며, 오락실이 대형화되고 프랜차이즈형 네트워크도 등장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가정용 콘솔게임의 등장… 집에서도 게임을!

1980년대는 가정용 게임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닌텐도(Nintendo)와 세가(SEGA)의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닌텐도의 ‘패미콤’과 세가의 ‘SG-1000’이 가정용 콘솔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 닌텐도의 패미콤. 출처=위키미디어
▲ 세가의 SG-1000. 출처=위키백과

그 이후 콘솔 게임기는 시리즈를 이어나가며 진화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가정용 콘솔은 보편화 되기 시작했고 고가 게임기들의 가격도 점점 낮아지며 이용자가 더 널리 퍼졌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90년대 후반 본격 온라인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즐기던 세대들이 현재 30·40대다. 이 세대에 게임을 좋아했던 학생들은 가정용 콘솔이 나오면서 금전, 환경 요인 탓에 오락실에서 마음껏 게임을 즐기지 못해 쌓여있던 욕망을 집에서 마음껏 풀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에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PC의 보급, 그래픽 없이 ‘글자’로하는 온라인 게임 인기

90년대 이후엔 PC가 대중화되며 사람들은 PC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초기엔 돈을 주고 구입하는 패키지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들은 불법복제에 골머리를 앓으며 PC게임 시장의 브레이크가 잡혔다. 게임이 잘 팔려나간다 싶으면 불법복제 프로그램이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악순환이 돼버린 것이다. 게임개발업체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곧 ‘머드게임(MUD:Multi-User Dungeon)’이 유행하게 된다. 머드게임이란 텍스트를 이용해 여러 명의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즐기는 게임이다. ‘PC 통신’ 네트워크가 구축되며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이 소통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자들은 머드게임을 탄생시켰다. 채팅으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에 대한 피드백이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텍스트로 나오는 식이다.

▲ 머드게임 플레이모습. 출처=유튜브 갈무리

머드게임의 인기작으로는 ‘쥬라기공원(1994)’이 있다. PC통신은 전화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면 분당 요금을 내야 했다. 즉 머드게임은 유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쥬라기공원 같은 인기 게임은 주말에 접속이 힘들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고 전해진다.

유저들은 오락실에서 혼자 하는 게임과 다르게 온라인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 이렇게 시작한 국내 온라인게임은 거대한 자본 투자와 정부 차원 IT 기업 지원 등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등 만화원작 MMORPG 탄생

온라인게임의 성장에 힘입어 만화원작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있는 PC온라인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나온 게임이 바로 ‘바람의나라(넥슨, 1996)’과 ‘리니지(엔씨소프트, 1998)’다. 이 게임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마니아들은 게임을 즐긴다.

21세기를 맞으며 PC게임은 아케이드, 캐주얼, FPS 등의 장르로 뻗어 나가며 수많은 히트게임이 나오고, 또 조용히 사라지기도 했다. 아케이드 게임은 ‘포트리스2(1999)’, 크레이지아케이드(2001) 등이 열풍이었다. 이 게임을 즐기던 학생들이 현재 20·30세대다. 학교에서 PC교육을 받던 이 시절,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선생님 몰래 포트리스나 크레이지아케이드 등을 하는 학생도 종종 있었다. 

▲ 크레이지 아케이드 플레이 모습. 출처=크레이지 아케이드 홈페이지

당시 대박을 터트린 PC온라인게임들은 많지만, 가장 존재감이 큰 게임은 역시 미국에서 혜성처럼 날아온 ‘스타크래프트(블리자드, 1998)’라고 할 수 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이 RTS 게임은 수많은 게이머들을 PC방으로 집결시키며 전국 PC방 확산에 큰 공을 세웠다. 한국 e스포츠의 출발과 흥행을 이끌었으며, 임요환, 홍진호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활약하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인식시켰다. 

할머니·할아버지도하는 ‘애니팡’ 나오며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2010년 이후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국내 게임시장에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생긴다. 이용자들이 모바일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이전 피처폰 시절에도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시장 규모를 갖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출시 초기에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애니팡(선데이토즈, 2012)’이 터졌다. 휴대폰 액정을 쓱쓱 문질러 같은 모양의 동물을 나란히 세워 터트리는 이 게임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카카오톡과 연동된 이 게임은 게임 플레이를 하려면 ‘하트’가 필요했는데, 이를 카카오톡 친구끼리 주고받을 수 있었다. 또 친구를 게임에 초대하면 하트가 생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가족 간 하트를 주고받고, 오랜 기간 연락이 잘 안 되던 지인에게까지 게임 초대를 받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 애니팡 플레이모습. 출처=선데이토즈 홈페이지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며, 게임사들은 모바일 게임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초기엔 캐주얼 게임 위주였지만 ‘리니지2 레볼루션(넷마블, 2016)’을 시작으로 ‘리니지M(엔씨소프트, 2017)’, ‘검은사막모바일(펄어비스, 2018), ’라그나로크M(그라비티, 2018)‘ 등 대작이 연달아 터지며 모바일 MMORPG 시장이 자리 잡았다. 눈에 띄는 점은 대부분의 히트작이 과거 인기를 끌었던 PC온라인게임의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내 게임시장은 PC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95% 이상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그 외 오락실과 비디오게임 시장 등은 점유율이 미미한 형국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급 성장한 모바일 게임 시장도 충분히 과열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으로의 국내 게임은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갈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