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정부가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정부는 1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과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동안 미래형 신산업으로 혁신·첨단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규제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으나, 의료기기 분야 산업의 빠른 기술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의료용 3D 프린팅 세계 시장은  지난해 7억3000만달러에서 2019년 9억7000만달러 2021년 12억9000만달러로 연 평균 성장률 15.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기분야 정부 R&D 투자 규모는 2012년 2701억원에서 2014년 2943억원, 2016년 3665억원으로 확대돼 연 평균 성장률 7.9%를 보였다.

의료기기 분야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정부 규제가 크게 작용하는 분야로, 의료기기 개발 이후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최대 520일이 소요될 정도로 여러 규제과정을 거쳐 왔다.

▲ 보건복지부는 19일 의료기기 규제 분야에서 처음으로 포괄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출처=보건복지부

정부는 앞으로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 의료기기는 ‘선 진입, 후 평가’ 방식인 포괄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혁신할 계획이다. 포괄 네거티브 규제는 사전허용-사후규제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특히 체외진단검사분야의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하고, 체외진단기기 시장진입에 걸리는 기간을 기존 390일에서 80일 이내로 대폭 단축한다. 이는 질병진단 등을 목적으로 인체로부터 채취한 혈액, 분변 등 검체를 이용해 체외에서 이루어지는 검사기기다.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미래유망 혁신·첨단의료기술은 최소한의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우선 시장진입이 허용한 임상현장에서 3~5년 동안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 한다.

정부는 규제혁신과 더불어 의료기기 산업육성책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연구중심병원에 ‘산병협력단’ 설립을 허용해 병원이 혁신 의료기술 연구와 사업화 허브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환자진료 경험을 토대로 혁신 의료기기 개발을 선도할 연구 의사 육성, 국산 의료기기 성능개선 지원, ‘의료기기산업육성법’ 제정 등 의료기기산업을 도약시킬 정책도 추진될 예정이다.

규제혁신 중점 추진과제는 우선 규제 과정의 예측 불가능성을 해소하기로 했다. 의료기기 규제관련기관인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개별 정보제공과 규제과정의 참여제한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기기산업 종합 지원센터의 기능이 강화되고, 의료기기 규제절차에 대한 전 주기 통합 상담이 실시된다.

정부는 규제기관별 홈페이지와 연동하는 통합정보포탈 시스템을 만들어, 규제정보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홈페이지에서는 규제정보 외에 시장분석 보고서, 해외 전문정보 데이터 등이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또 규제기준, 심의결과 등 규제 진행과정을 신청인에게 적극 공개하고 참여 보장을 강화해 규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 의료기기 관련 제도개선 전후 비교. 출처=보건복지부

규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험등재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신의료기술평가 대상 심의 절차 간소화로 평가기간은 280일에서 250일로 30일 단축하고, 신의료기술평가와 보험등재심사를 동시에 진행해  필요 기간은 490일에서 390일로 100일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개발이력이 짧고 연구결과가 부족해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하던 혁신·첨단 의료기술을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앞선 인허가 체계와 혁신가치에 대한 보상방안도 마련된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허가 단계에서 혁신·첨단의료기기가 개발과 동시에 허가되도록 하는 신속허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복지부는 연구결과 축적이 어려운 혁신·첨단 의료기술은 문헌 근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혁신·첨단 의료기술의 잠재가치를 고려해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별도 평가트랙을 운용할 예정이다.

심평원은 의료진의 편의와 생산성을 증진하는 의료기술은 예비분류 코드 혹은 심평원의 확인증 발급으로 빨리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혁신·개량 치료재료에 대한 가치평가 제도 개선으로 적정 보상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혁신의료기기 R&D와 사업화의 주체인 병원과 연구의사의 역량을 강화해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한 생태계 혁신을 추진하기로 했다.

병원이 의료기기 R&D에서 그치지 않고 그 성과를 실용화해 창업까지 할 수 있도록 적극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구중심병원을 중심으로 혁신의료기술 연구와 실용화를 저해하는 제도 장벽을 해소하기로 했다.

산병협력단 등 병원의 의료기술 특허 사업화와 창업 지원을 전담할 수 있는 자체 조직 설립을 허용해, 산병연협력체계도 구축될 예정이다. 정부는 연구중심병원은 지정제를 인증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해, 연구역량을 갖춘 병원을 단계에 따라 연구중심병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 연구중심병원 지정현황. 출처=보건복지부

이밖에도 연구중심병원과 지역 거점병원 사이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방병원 연구역량을 높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지역 거점병원을 지역 혁신성장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9년부터 기업·대학·출연연 등의 공동 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기초의과학 분야 대학원이 설치돼 있는 대학에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Medical Research Center, MRC, 35곳)에 병원 임상의사 등이 30% 이상 참여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는 기초의과학 분야 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의 연구자 10인 내외 연구그룹으로 특성화 연구를 지원 받는다.

복지부는 국산 의료기기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국산 의료기기 성능 개선과 외국 제품과의 비교 테스트를 위한 병원 테스트베드 지원 사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국산 의료기기 사용률이 높은 병원이 국가 R&D 사업에 참여하면, 선정평가에서 가점을 부여 받는 방안도 마련될 예정이다.

복지부, 과기부, 산업부, 식약처가 협력해 의료기기 R&D사업을 범부처 사업으로 통합해 현장자원융합을 꾀할 계획이다. 통합 사업은 단일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인허가·건강보험 관련 기관도 참여해 수요자 대상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도 확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기기 업계의 오랜 요구사항인 의료기기 산업육성법과 체외진단기기법을 각각 제정해 산업 육성을 위한 법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국회와 협력으로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와 산업 육성 정책 사이의 조화를 위한 의료기기산업육성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또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지정과 지원으로 관련 기업의 R&D를 지원해 AI, 3D프린팅 등 혁신 의료기기 개발이 가능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꾀할 계획이다.

보건산업 초기 기술창업 펀드도 민관이 투자해 총 300억원 이상 규모로 올해 8월부터 운영될 계획이다. 이는 창업 초기 의료기기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기업 진단 결과에 따라 맞춤형 엑셀러레이팅(교육, 컨설팅, IR 등)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산업 혁신창업지원센터는 올해 2월부터 창업 의료기기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식약처는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혁신 뿐만 아니라 의료분야 연구개발과 산업화의 중요한 자원인 의료 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하고 건강관리 차원에서 국민 스스로 건강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대책으로 국내 의료기기 산업분야가 성장하고,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일자리 창출, 지역 혁신성장, 지역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다”고 밝혔다.

박능후 장관은 “다만, 의료기기 분야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하는 분야이므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규제를 혁신해 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