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로자가 퇴직한 후 ‘퇴직금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계약은 유효한가?

과거와 달리 지금은 퇴직금 중간 정산에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현행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주택을 구입하는 것과 같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몇몇 사유 이외에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제2항 및 동시행령 제3조 제1항 참조). 그러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근로자 퇴직 시 나갈 목돈을 미리부터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당장 일부라도 분할지급 받으면 유용할 돈을 사전에 당겨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생깁니다. 이에 산업현장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는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해 분할 지급하되, 근로자는 퇴직 시 사용자에게 퇴직금을 받을 권리를 포기한다’는 식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근로자가 퇴직금 청구권을 사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퇴직금 청구권 ‘사전 포기 약정’은 무효입니다. 퇴직금은 사용자가 일정 기간을 계속 근로하고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계속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하는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띤 돈인데, 구체적인 퇴직금 청구권은 근로관계가 끝나는 퇴직 사실을 발생 요건으로 하는 만큼 이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49732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근로자는 이 점을 악용해 사용자에게 퇴직금을 다시 청구하고, 사용자는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미 근로자가 받아간 퇴직금 분할 정산금을 되돌려 달라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반소로 제기하게 되죠. 퇴직금 중간정산과 관련한 소송은 보통 이러한 구조를 띱니다.

만약 그렇다면 근로자가 퇴직해 더 이상 근로계약에 있지 않는 상황, 즉 근로자가 퇴직한 이후에 근로자가 사용자와의 합의 하에 퇴직금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한 방식의 퇴직금 청구권 ‘사후 포기 약정’은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에 대법원이 재차 확인한 사실입니다. 퇴직금 청구권은 근로관계가 끝나는 ‘퇴직’ 사실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추상적 권리였다면 그 이후는 구체적인 권리로 전환되는 것인데, 추상적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구체적인 권리는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근로자가 퇴직한 후 퇴직금 청구권 ‘사후 포기 약정서’를 써줄 것을 믿고 근로자가 재직할 당시 급여에 퇴직금을 분할 정산해 지급하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근로자가 근로계약서 작성 당시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정작 근로자가 퇴직한 후에 그와 같은 퇴직금 청구권 ‘사후 포기 약정서’를 안 써주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사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퇴직금 중간 정산과 같은 편법 운영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2.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닌 학습지 교사도 노동 3권은 누릴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이미 언론에 많이 소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판결이 갖는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노동법이라는 칭하는 법률의 영역에는 헌법 제33조가 보장한 근로자의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과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있습니다. 노조법과 근기법은 모두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지만, 두 법률은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른 것이지요.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대체로 노조법상의 근로자와 근기법상의 근로자를 동일시 해왔습니다. 즉 근기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면 노조법상의 근로자로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근기법상의 근로자와 노조법상의 근로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했고, 근기법상의 근로자가 아닌 경우도 노조법상의 근로자로서 노동 3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학습지 교사를 예로 들어 볼까요? 흔히 학습지 교사는 교육업체에 고용된 근로자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 학습지 교사는 이른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하며 사업주에 대해 계약상 불리한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는 근로자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자영업자들인 셈이죠. 이 점은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대리운전기사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사실상 근로자와 다름없는 근로를 제공하고도 근로자와 같은 최저임금 보장의 혜택을 누릴 수도,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 당하고도 부당해고와 같은 구제절차를 누릴 수도 없는 근로자보다 훨씬 열악한 근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노동 3권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거나 현행 노조법상 근로자에 특수형태 근로종사자가 포함되도록 관련 조항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지만,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는 사이 대법원이 법률해석을 통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현재 이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은 비록 근로자가 아니지만, 근로자와 동등하게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정도로 권익을 보장받는 것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회도 적극적인 입법을 할 것으로 보여 향후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의 권익 신장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3. 우리 회사 직원이 회사의 중요한 기술을 경쟁업체에 팔아 넘겼어요

만약 우리 회사 직원이 회사의 중요한 기술을 경쟁업체에 팔아 넘겼다면, 해당 직원은 형사적으로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될까요? 우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상의 영업비밀 누설죄(제18조)의 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회사의 중요한 기술이 얼마나 엄격히 관리되었고 어느 정도의 재산적 가치가 있고, 얼마나 업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인지 등의 요건 검토를 통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부터 검토해야 하겠지만, 만약 이러한 ‘영업비밀’로서의 요건을 갖춘 이상 영업비밀을 외국에 유출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국내에 유출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제355조 제2항)의 적용을 받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앞서 살펴 본 부경법상의 영업비밀 누설죄나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넘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까지 적용될지 여부와 관련한 것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기술의 부정한 유출을 방지하고 산업기술을 보호함으로써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법률(제1조 참조)로서 산업기술로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의 외국 유출을 규율합니다. 특히 문제가 된 산업기술보호법 제14조는 ‘절취·기망·협박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대상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하는 행위 또는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제1호)와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유출하거나 그 유출한 산업기술을 사용 또는 공개하거나 제3자가 사용하게 하는 행위’(제2호)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한 자는 제36조 제2항에 의해 처벌되고,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제14조의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는 제36조 제1항에 의해 가중처벌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해야 할 검사는 피고인에게 제36조 제1항상의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과 제14조 제2호상의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목적’이라는 것은 형법상 ‘고의’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검사는 ‘고의’는 물론 ‘목적’까지도 증명해야만 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 것인데, 검사는 피고인에게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법원은 아무리 심정적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나쁘다고 생각할지라도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을 유죄로 처벌하려면 검사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의 입증을 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무죄로 판결하라는 In Dubio Pro Reo 법칙은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