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최근 남북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 대북 투자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견고한 대북 제재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 개선이 진척되는 데 따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했다'며 제재 해제를 압박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도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어 대북 제재 해제 문제는 비핵화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서서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북한 제재와 각국의 독자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청와대와 대기업, 경제단체가 남북경협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러시아를 찾아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을 제안하고 " 러시아와 남북 3각 경제협력은 철도·가스관·전력망 분야에서 이미 공동연구 등 기초 논의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대기업과 경제 관련 단체들도 남북 경협에 대비한 기구를 만들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증권이 지난 7일 북한과 관련된 투자분석을 담당할 '북한투자전략팀'을 꾸리고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앞서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4월부터 리서치센터 안에 '한반도 신경제팀'을 설치해 남북 경제협력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북 경협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러졌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먼저 '제재 빗장'이 풀려야 한다고 VOA는 꼬집었다. 보도에 따르면,  대북 제재는 유엔 제재와 개별 국가의 독자 제재로 이뤄져 있는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본격화한 2016년 이후 유엔이 채택한 제재 결의는 모두 6개이며, 미국은 10여개의 독자 제재를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남북경협을 엄격히 금지한 5·24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VOA는 우선 북한 선박 입항 금지, 노동자 파견금지, 합작사업 금지, 석탄과 유류 수출 금지 등 강도를 더한 유엔의 제재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은 북한노동자 파견을 금지한 2397호(2017년 12월), 대북합작사업 등을 금지한 2375호(2017년 9월)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지하자원 공동 개발과 같은 구상은 북한산 광물 수입을 금지한 2371(2017년 8월)에 묶여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0 천안함 폭침 이후 '5.24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경협기업들은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46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분노가 엄존한 현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를 섣불리 풀다간 상당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통일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 부처는 결정을 미뤄왔다.

VOA는 "이런 제재 국면에서 한국이 착수할 수 있는 주요 남북경협 사업은 사실상 없다는 게 대체적 견해"라면서"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해 유엔 제재위원회에 부분적인 경협 재개 승인을 요청할 수는 있다"며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방한한 북한 인사에 대한 제재가 일시적으로 면제된 게 비슷한 경우라고 소개했다.

한 가지 희망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북 정상회담 이후부터 제재 완화 또는 해제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결의안에 상황 변화에 따른 '조정(modification)' 규정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VOA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VOA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는 상황변화에 따른 조정을 거급 확언한 만큼 안보리의 대북제재 조정은 역내 정성화를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돼야 한다"면서 "이런 조치가 앞으로 진행될 북한과의 협상 분위기를 좋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금이 '제재 조정'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는 점이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단으로 활동한 윌리엄 뉴콤 전 미국 재무부 선임 경제자문관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일 VOA에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 긍정적 토대가 마련되긴 했지만, 현재 상황이 유엔 대북 결의 1718호(2006)에 내포된 제재 수정 요건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뉴콤 전 자문관은 "그것은 북한이 핵·탄도미사일·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중단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 복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수용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결의를 수정하려면 별도의 결의안을 채택해야 하는데, 수정 시기와 범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의지와 협상에 달려있다. 상임이사국 한 곳만 반대해도 어렵다. 바로 미국이다.

뉴콤 전 자문관이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 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를 추진해도 채택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엔 제재와 달리 독자 제재는 해제 여부를 개별 국가들이 결정하는데 미국의 빗장은 철통같다. VOA는 미국은 현재 10여개의 법률과 그에 따른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을 촘촘하게 제재하고 있는데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테러지원, 인권, 자금세탁 심지어는 공산주의, 비시장경제 시스템이 제재 사유인 것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틀이 유지되는 한 북한 제품의 미국 수출, 미국 제품·기술 반출, 송금은 물론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도 어려운데 가장 강력한 미국의 대북 제재법은 2016년 발효된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이라고 VOA는 설명했다.

대북 거래 금지는 물론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도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도 담고 있는데 한국 등 다른 국가들이 북한과의 경협을 추진할 경우 이 법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 법이 발효된 후 발동된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미국 화폐 위조와 자금세탁 중단, 유엔 결의 준수, 정치범 수용소 생활환경 개선 등과 관련해 북한이 '진전(progress)'를 보였다는 대통령의 판단이 필요하고, 또 대통령은 이를 의회에 증명해야 한다.

나아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또 무엇보다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미국 의회의 대북 제재법 입안을 도운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VOA에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북한의 경제특구에 투자하려 한다면 당장 의회에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의회가 북한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북한과의 합의 내용에 반대한다면 예산 배정을 거부함으로써 북한 관련 사업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법에서 명시한 요건을 모두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나 해제를 원한다면 특별법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마저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며 공화당이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 협정에 반대하며, 결국 파기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북한에 유연한 자세를 취할 명분이 없어 쉽지 않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유엔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닝너 선임연구원은 VOA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대가로 완화할 수 있는 북한의 원유수입과 석탄수출을 제한하는 유엔제재와 같은 협상 가능한 무역제재와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협상이 불가능한 미국의 독자제재는 구분해야 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 체계를 보호하기 위한 독자적인 제재 조치는 법률이 규정한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미-북 정상회담 직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된 뒤에 제재가 해제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도 미국내 법 절차 때문임은 두말이 필요없다.

결국 한국의 남북경협과 남북러 경협 기대가 실현될지에 대한 열쇠는 비핵화를 추진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는 게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