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의 IT 기술력이 한국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은 ‘미완의 대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글로벌 무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한국을 추월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기본적인 IT 인프라부터 통신, 전자 가전 등 모든 영역에서 중국의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 화웨이 컨슈머 사업부의 입지가 강해지고 있다. 출처=화웨이

5G부터 가전 시장까지 ‘돌격’

최근 통신 3사가 5G 주파수 할당을 마친 가운데, 통신장비 시장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2019년 상용화를 노리는 국내 통신 3사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장비부터 단말기 칩셋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5G 장비 시장에서는 중국의 화웨이가 글로벌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지난해 기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화웨이가 점유율 29.3%로 1위, 스웨덴의 에릭슨이 점유율 23.5%로 2위, 핀란드의 노키아가 점유율 20.6%를 기록해 3위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CDMA 2G 시대부터 글로벌 통신시장을 호령했던 한국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통신장비부터 단말기 칩셋을 모두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꼽자면 삼성전자도 이름을 올리지만,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4.1%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점유율 40%를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화웨이는 3%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삼성전자의 강력한 기술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점유율이지만,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가 통신 3사와 장기간 협업을 하며 구축한 노하우가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역으로 말하면, 화웨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 이어 호주 정부가 정보유출을 이유로 화웨이 통신장비를 퇴출하는 등의 악재가 반복되지 않는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내 시장을 정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화웨이는 주로 LG유플러스와 협력해 국내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오랫동안 LG유플러스를 이끌었던 이상철 전 부회장은 현재 화웨이 고문이다.

5G 시대가 시작되면 화웨이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5G 육성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는 가운데, 화웨이는 연말 5G 스마트폰 단말기를 세계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다. 5G 표준이 확립되는 것과 5G를 지원하는 단말기가 출시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5G 지원 단말기는 빠른 5G 상용화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화웨이의 빠른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전자제품의 꽃인 스마트폰 시장도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올해 초 출시한 갤럭시S9의 저조한 인기가 심상치 않다. 그 틈을 노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빠르게 주목을 받는 중이다.

▲ 갤럭시S9 성적이 신통치 않다. 출처=삼성전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케빈 호 화웨이 스마트폰 사업부 대표는 6월 21일 CES 아시아 키노트 연설에서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P20의 글로벌 출하량이 10주 만에 6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해외 시장에서 무려 150%의 괴물 같은 성장세를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독일 라이카와 협력해 만들어진 P20 프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화웨이 스마트폰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부활하고 있는 샤오미는 신흥시장인 인도에서 삼성전자를 눌렀고, 최근에는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을 빠르게 출시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비보와 오포도 최근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삼성전자와 애플로 대표되는 양강구도에 균열을 일으키는 중이다. LG G7 씽큐로 승부를 건 LG전자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휘청이며 발생한 기회를 속절없이 놓치고 있으며, 화웨이와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완전히 덜미를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젤리스에서 시작된 하드웨어 폼팩터 경쟁도 치열한 가운데, 화웨이는 BOE와 협력해 연내 세계 최초로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 중앙에 앉아있는 사람이 샤오미 창업주 레이진 회장이다. 출처=갈무리

화웨이의 스마트폰 저력은 컨슈머 부문 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화웨이 컨슈머 비즈니스 그룹은 지난해 매출 약 925억달러, 순이익 약 73억달러(약 7조7000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아너 브랜드 포함 총 1억530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했으며 글로벌 인지도도 올라갔다. 2016년 81%에서 2017년 86%로,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2016년 64%에서 2017년 74%로 증가했다. 화웨이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스마트폰 소비자가 두 번째로 선택하는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시장도 심상치 않다. LCD 시장의 균열은 올해 1분기부터 시작됐다. 간헐적으로 중국 제조사들이 깜짝 반등을 이루기는 했으나, 올해 1분기 중국의 BOE가 약 20억위안(3억13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올해 1분기 983억원 영업적자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시기, BOE가 LCD 시장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셈이다. LG디스플레이는 LCD 패널량 기준, 지난해 3분기 이미 BOE에 덜미를 잡혔다. OLED 시장은 LG가 대형을, 삼성이 소형을 힘 있게 장악하고 있지만 LG가 주도하는 OLED 진영이 중국은 물론 일본 제조업체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도체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국은 서서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넘보고 있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업체 XMC를 직접 시찰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반도체 펀드를 운영하는 한편, 최근에는 50조6200억원에 이르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도 발표했다.

가전제품도 중국 기업들의 반격이 매섭다. 아직 완성도 부문에서는 국내 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가 상품군부터 꾸준히 반격에 나서는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차이슨이다. 중국 디베아가 만든 무선 청소기 브랜드인 차이슨은 최근 중국 직구(직접구매) 돌풍의 중심에서 저가 무선청소기를 내세우며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가격은 다이슨의 10%에 불과하지만 기능은 상당 수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슨은 중국을 뜻하는 차이나와 청소기 명가 다이슨의 합성어며, 국내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스타트업, 서비스 시장도 중국 업체의 존재감이 강해지고 있다. 중국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대표되는 ICT 트로이카는 탁월한 플랫폼 경쟁력을 중심에 두고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미국의 AWS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으나 알리바바도 알리윈 플랫폼을 중심에 걸고 마이웨이를 선언한 상태다. 국내 카풀 제도가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시동도 걸어보지 못한 사이, 중국의 차량공유 플랫폼 디디추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장에서 중국의 입지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인공지능 인프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미국과의 ICT 경쟁력 격차를 1.8년으로 좁히며 한국의 1.9년을 추월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3년간 약 18조원을 인공지능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며 중국 과학기술원에서 근무하는 인공지능 연구자만 1429명일 정도로 인재확충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 LG디스플레이 중심의 디스플레이 전략도 흔들리는 중이다. 출처=LG전자

가성비가 전부는 아니야… ‘진짜 실력’

중국의 존재감은 핀테크부터 이커머스, 플랫폼, 전자 제품과 부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포착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 생태계 플랫폼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운데, 중국이 IT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더 이상 늦으면 곤란하다’는 위기감이 국내 IT 업계에 팽배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폐쇄적인 국내 생태계만 고집하지 말고 외국의 ICT 전자 플랫폼과 과감하게 손을 잡는 한편 기반 플랫폼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외국 ICT 전자 경쟁력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안방을 내어주지 않을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중국 기업들이 한때 가성비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했다면, 이제는 프리미엄 라인업까지 아우르는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