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콘텐츠의 왕자 디즈니가 결국 21세기 폭스와 손을 잡았다. 디즈니는 20일(현지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21세기 폭스 사업부 일부를 713억달러에 인수하는 협약을 최종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디즈니는 지난해 21세기 폭스 사업부 일부를 인수하기 위해 524억달러를 제안하며 인수 9부능선을 넘었으나 컴캐스트의 갑작스러운 참전으로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하기 위해 650억달러를 제시하며 판을 키웠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는 초기 가볍게 성공할 것으로 여겨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큰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시장 독과점을 이유로 많은 빅딜을 취소시켰으나,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에는 이례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14일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에게 전화해 이번 메가딜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비록 성사되기는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와 날을 세우고 있는 CNN을 보유한 AT&T의 타임워너 인수는 막판까지 막았으면서, 자기와 정치적 동지인 루퍼트 머독 회장이 디즈니에 21세기 폭스를 넘기는 거래에는 축하를 보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디즈니의 21세기폭스 인수를 도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문제는 컴캐스트의 등장이다. 컴캐스트가 디즈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21세기 폭스를 유혹하자 주주들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금과 주식으로 인수대금을 치르려는 디즈니보다 인수금 전체를 현금으로 제공하려는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 일부 사업부의 새로운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러나 디즈니가 재차 713억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함에 따라, 21세기 폭스의 새로운 주인은 디즈니로 최종 낙점됐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사업부 인수에 투입하는 713억달러는 현금과 주식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인수에 성공했다. 출처=픽사베이

디즈니가 원하는 것은?

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빅딜은 엄밀히 말해 21세기 폭스 ‘일부’만 디즈니가 인수하는 것이다. 21세기 폭스의 자회사인 20세기 폭스를 중심으로 영화 스튜디오, TV 프로덕션 사업부, TV 콘텐츠, 일부 케이블 채널과 네트워크 스카이, 온라인 스트리밍 훌루의 지분 일부와 폭스 지분 일부가 대상이다. 디즈니는 21세기 폭스의 뉴스 채널과 스포츠 사업부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가 컴캐스트의 참전으로 판이 크게 커졌음에도 끝까지 21세기 폭스 인수에 나선 이유는 뭘까? 두 회사의 인수합병 사실이 처음 알려졌던 지난해 12월 IT매체 와이즈믹은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되려고 21세기 폭스의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와 지난해 8월 콘텐츠 수급 계약을 종료한 후, 본격적인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또 다른 콘텐츠 강자 21세기 폭스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디즈니의 최근 행보에도 힌트가 있다.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사업 일부 인수를 통해 훌루 지분 60%와 막강한 콘텐츠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후자인 막강한 콘텐츠 인프라에 집중하고 있으나 사실 훌루 지분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훌루는 현재 OTT 시장에서 아마존 비디오, 넷플릭스와 직접 경쟁하고 있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ESPN의 스포츠 전용 온라인 라이브 TV를 출시한 상태에서 ESPN 브랜드의 온라인 라이브 TV 출시를 위해 스포츠 콘텐츠 방송 솔루션 업체인 BAM테크(BAMTech)에 공격적인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인수를 통해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플랫폼은 물론 플랫폼 기술을 연결해 정교한 미디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도 군침을 흘리는 시장이다. 디즈니가 가진 강력한 콘텐츠 경쟁력에 플랫폼 기술을 연결한다면 강력한 시너지가 예상된다.

이번 인수가 무려 20년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심슨네 가족들'에서 예견됐다는 재미있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한 트위터 이용자는 '심슨네가족들'이 1988년 방송물을 통해 디즈니의 20세기폭스 인수를 예견했다며 관련 사진을 첨부했다. 사진을 보면 20세기폭스는 디즈니의 사업부 일부로 표기되어 있다.

▲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소유의 20세기 폭스 인수를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출처=갈무리

빨라지는 콘텐츠 플랫폼 전쟁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인수를 마무리하며, 자연스럽게 AT&T와 타임워너 인수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최근 AT&T는 타임워너 인수에 성공했으며, 인수대금만 850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콘텐츠와 플랫폼 결합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통신사인 AT&T가 타임워너 인수를 끝낼 경우 통신망을 통해 타임워너의 방대한 콘텐츠를 탑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 자체로 시너지를 노리려는 의도다. 통신망을 활용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존재감이 강력해지는 상황에서 자체 망을 통한 콘텐츠 역량의 연결을 바탕으로 통신사의 비전을 정조준한 셈이다. 당장 합병이 성사되면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 정통 뉴스 채널 CNN을 보유한 타임워너에 AT&T 1억1900만명의 인터넷 가입자가 가세한다. 필요에 따라 모바일 시장에서 AT&T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플랫폼 상품을 자유롭게 출시할 수 있을 전망이다.

타임워너도 이득이다. CNN, 워너브라더스, HBO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훌루의 지분 10%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AT&T가 가진 통신망 경쟁력과 연결되면 나름의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복안이다. 다양한 유료방송 플랫폼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케이블 시장의 성장동력도 크게 떨어진 것도 두 회사의 합병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AT&T와 타임워너, 디즈니와 21세기 폭스는 모두 콘텐츠와 플랫폼을 비롯해 콘텐츠나 플랫폼 중첩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OTT(오버더탑) 업계의 일인자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대여 사업자로 출발, 2009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2016년 전격적인 글로벌 서비스에 돌입했다. 요금을 인상했으나 1분기 신규 가입자가 무려 742만명이나 늘어나는 마법을 보여줬으며 막강한 콘텐츠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외연을 확장할수록 전통 콘텐츠 업계는 침체일로를 겪었다. 코드커팅의 주범이 바로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케이블TV를 포함한 대부분의 콘텐츠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의 돌풍을 앞두고 ‘합종연횡 카드’를 빼들었다. 훌루가 대표적이다. 디즈니와 21세기 폭스, NBC유니버셜, 타임워너 등 미국 방송사들의 연합 플랫폼이며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하며 훌루 지분을 크게 늘린 점을 주의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21세기 폭스 인수에 열의를 보이던 컴캐스트도 다른 방법으로 비슷한 플랫폼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컴캐스트는 NBC유니버셜 인수에는 성공했으나 2014년 타임워너 인수에 실패했고, 이번에도 디즈니에 밀려 고배를 마셨지만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살려 콘텐츠와 플랫폼 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도 최근 부쩍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는 애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내세워 넷플릭스를 추격하는 아마존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콘텐츠 시장에서 날카로운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압도하는 등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콘텐츠와 콘텐츠는 물론 콘텐츠와 플랫폼을 아우르는 스트리밍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