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AT&T와 타임워너의 만남을 조명하며 타임워너, 즉 콘텐츠 업계의 상황을 분석하면 넷플릭스라는 키워드가 부상한다. 최근 벌어지는 모든 콘텐츠 업계의 격변은 사실상 넷플릭스 나비효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콘텐츠 업계의 지각변동은 넷플릭스에서 시작됐다. 출처=넷플릭스

모든 것은 넷플릭스에서 시작됐다

글로벌 OTT(오버더탑) 업계의 일인자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대여 사업자로 출발, 2009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2016년 전격적인 글로벌 서비스에 돌입했다. 요금을 인상했으나 1분기 신규 가입자가 무려 742만명이나 늘어나는 마법을 보여줬으며 막강한 콘텐츠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지난해 60억달러를 콘텐츠 확보에 사용했으며 올해도 80억달러를 투입한다.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세워 플랫폼의 매력을 끌어올리며 ICT 큐레이션 기술로 시청 패턴을 바꾼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물론 넷플릭스도 어려움을 겪는다. 콘텐츠 투자비용에서 의외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비율이 낮은 데다 신흥 시장인 인도에서는 현지 미디어 서비스 핫스타에 크게 밀리는 등 고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와 협력해 보폭을 확장하고 있으나 지상파를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글로벌 OTT 업계의 최강자며, 포식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외연을 확장할수록 전통 콘텐츠 업계는 침체일로를 겪었다. 코드커팅의 주범이 바로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넷플릭스 발(發) 코드커팅은 유료방송 비용이 저렴한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미국 케이블TV 업계에는 심각한 위협이다. 구글 유튜브의 등장으로 시작된 동영상 시장 진입장벽의 몰락, 모바일 기술의 발전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케이블TV를 포함한 대부분의 콘텐츠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의 돌풍을 앞두고 ‘합종연횡 카드’를 빼들었다. 훌루가 대표적이다. 디즈니와 21세기 폭스, NBC유니버셜, 타임워너 등 미국 방송사들의 연합 플랫폼이며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 시도, 나아가 컴캐스트의 등판도 눈여겨볼 관전 포인트다.

디즈니는 2017년 12월 21세기 폭스의 일부 콘텐츠 사업부를 524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재미있는 점은 디즈니가 넷플릭스와 콘텐츠 수급 계약을 종료한 후 전격적으로 21세기 폭스 인수에 나서는 대목이다. 인도 미디어 스타트업인 인디아까지 합병한 디즈니는 21세기 폭스가 가진 훌루의 지분도 일부 확보할 수 있으며, 글로벌 스트리밍 기술 업체인 BAM테크를 인수한 노하우도 확실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콘텐츠 강자인 디즈니가 말 그대로 넷플릭스와의 한 판 승부를 위해 모든 판돈을 걸었다는 평가다.

▲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인수에 나서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넷플릭스를 겨냥한 디즈니의 행보도 마냥 순탄하지 않다. 지난 6월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 인수에 나설 의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에 제안한 금액은 600억달러며, 대부분 주식을 제안한 디즈니와 달리 컴캐스트는 순수한 현금을 제안했다. 21세기 폭스 주주들에게는 디즈니보다 컴캐스트의 제안이 더욱 매력적이다.

컴캐스트는 NBC유니버셜 인수에는 성공했으나 2014년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에는 실패한 바 있다. 최대 케이블TV 사업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넷플릭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변화를 이겨내려면 역시 플랫폼과 콘텐츠의 시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계기로 21세기 폭스를 둘러싼 디즈니와 컴캐스트의 새로운 경쟁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내세워 넷플릭스에 정면승부를 건 사례다. 아마존 프라임 상품에 아마존비디오를 지원, 거대한 아마존 제국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속도를 내는 것도 넷플릭스와 비슷하다. 특히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가 이커머스 플랫폼과 연계되는 점은 넷플릭스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프라임 비디오 가입자 중 약 500만명이 아마존의 이커머스 패키지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인공지능과 스마트홈, 사물인터넷 전반에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가진 업체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중심에 두고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가동하는 데 그쳤다면, 아마존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구독형 비즈니스를 넘어 이커머스 플랫폼과의 연계를 성공시키고 있다.

최근 콘텐츠 시장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애플도 잠재적 위협상대다. 애플은 종종 나오는 넷플릭스 인수설의 단골이며, 지난 3월 잡지계의 넷플릭스라는 텍스처를 인수해 큰 관심을 받았다. 단기적으로 뉴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함이지만, 긴 호흡으로 넷플릭스를 노리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애플은 아이폰 의존도를 줄이며 대안으로 콘텐츠 사업에 집중하는 중이다. 지난해 막대한 콘텐츠 투자를 단행하며 본격적으로 몸을 풀고 있다. 심지어 SNS 업체인 페이스북도 콘텐츠 역량을 키우는 중이다.

결국 AT&T의 타임워너 합병, 버라이즌의 행보, 디즈니와 컴캐스트의 21세기 폭스를 향한 경쟁, 아마존과 애플의 콘텐츠 야심 모두 넷플릭스로부터 시작된 경쟁이다.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화 기기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N-스크린 시장이 열리며 케이블TV와 같은 전통적인 시장이 어려워지는 한편 신시장의 가능성을 본 다양한 사업자들이 속속 진입하는 중이다.

특히 통신사와 케이블TV 사업자는 전형적인 콘텐츠와 플랫폼 시너지로 출사표를 던진 만큼, 성공한다면 통신사의 탈통신 실험과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쥘 수 있다.

▲ 애플이 덱스처를 인수했다. 출처=픽사베이

넷플릭스의 카드는?

넷플릭스도 현재의 위치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디즈니가 콘텐츠 수급을 중단하는 한편 플랫폼 사업에 본격 진입하고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 인수를 위해 디즈니와 경쟁하는 한편 AT&T와 애플, 아마존의 진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자체 콘텐츠와 플랫폼을 강화하는 한편 지난해 8월 만화 출판사 밀라월드를 품었다. 디즈니와의 콘텐츠 수급 계약이 종료된 직후다.

밀라월드는 마블 코믹스의 핵심 작가인 마크 밀러가 포진한 곳이다. <킹스맨>과 <원티드>, <킥애스> 등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판타지와 슈퍼히어로 영역의 강자다. 넷플릭스는 과학 미스터리 콘텐츠에서 점점 슈퍼 히어로 콘텐츠까지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나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말이 많았다. 이런 상태에서 밀라월드의 히어로 콘텐츠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스펙트럼을 크게 넓혀줄 수 있다.

영화 <어벤져스>의 흥행에서 알 수 있듯이 히어로 콘텐츠는 글로벌 영화 콘텐츠 시장의 대세다. 이를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최근 웹툰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실험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