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 인간의 혀는 세치라고 한다. 한 치가 3cm 정도인 것을 감하면 길어봐야 10cm다. 참으로 짧다. 그리고 부드럽다. 그런데 이 세치 혀가 만드는 말은 부드럽기도 하면서도 평치풍파를 일으키고 피를 보기도 한다. 잘못한 말은 화 즉 설화를 낳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세치 혀는 그만큼 무섭다. 동시에 세치혀가 하는 말은 천냥 빚을 갚기도 한다. 그만큼 세치 혀가 발휘하는 힘은 무궁무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이유는 여럿 일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우선 설화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미국이 공식으로 내놓은 이유가 북한의 성명을 이유로 삼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다음달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이같이 밝혔다고 전하고 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된 서한에서 “최근 성명에 표현된 (북한의)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에 근거해, 슬프게도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이번 회담이 개최되기에 부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 당사자와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북한 외무성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의 담화 내용을 가리킨다는 게 중론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16일 오전 발표한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가오는 조미(미북)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제1부상은 또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같은 날 오전 북한 언론은 “한국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 하에서 16일로 예정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중지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21일  " 미국 부대통령 펜스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펜스 부통령은 22일 폭스뉴스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오직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은 “대미 사업을 보는 나로서는 미국 부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명색이 ‘유일 초대국’의 부대통령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좀 알고 대화 흐름과 정세 완화 기류라도 어느 정도 느껴야 정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런 강경발언을 문제 삼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취소한 데는 이런 이유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북한이 지난 며칠 동안 발표한 대미 비난 성명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두 나라 간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미북 정상회담 취소는 김계관과 최선희가 놀린 세치 혀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란 이 세치 혀가 만든 말로써 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김계관과 최선희 역시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탐색과 기선잡기를 위한 정치의 하나로 설전을 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고 권력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철권을 휘두르는 북한에서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이 한 말은 결국 김정은의 의지가 실린 발언일 뿐이며 그런 맥락에서 김정은의 정치의 하나로 봐야 한다.

마찬 가지로 트럼프 역시 설전에 설전으로 응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는 서한에서  "북한과의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를 바라고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언젠가 회담이 다시 열릴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어느 누구도 초조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말의 성찬, 말의 싸움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점을 안다면 미북 정상회담 취소는 겉으로는 설화이며 내용은 대화를 촉구하는 말로써 하는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트럼프나 폼페이오, 북한 김계관 모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보면 대화단절과 극단의 대립은 바라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 제1부상은 25일 오전 7시30분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담화에서 “조선반도(한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는 변함이 없다”면서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제1부상은 미북정상회담 취소 발표와 관련해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한다고 말해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 담겼음을 시사했다.

설전을 통해 상대방의 심기와 의중을 탐색한다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나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도 낙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