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가 연결된 시장 속에서 살고 있다. 마케팅으로 사회를 해석해보면, 그들끼리 물고 물리는 관계만이 각자 존재하게 만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이 고객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종업원이 사장 없이, 닭이 계란 없이 존재하기 어렵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시소 놀이 중이다.

보통의 시장에도 서로가 바라는 가치를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되지만, 직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기대를 총족시키거나, 만족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른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통해 내 안의 일이란 것에 대한 재생산의 메커니즘이다.

왜 필요하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변덕을 부리는 상사와 대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그때그때 다르다. 너무 혁신적이거나, 너무 고루하면 거절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하는 적당한 무언가를 내놓기 위한 그들과 나, 내 안의 일이 적당히 나올 수 있도록 유지하기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수다.

당연히 그 줄타기는 일을 통해 연결된 비즈니스 속 멀리는 최종 고객으로부터 가깝게는 당장 일을 주고받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조직 또는 해당 비즈니스의 역사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일이 정해져 있다. 당연히 전임자 정도만 하면 충분했다. 시장은 호황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성과는 충분히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어려워지고, 저성장 시대가 되고 난 이후 각자도생의 움직임이 일반화되면서 조직에 무작정 기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당연히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강요받게 되었다. 신입임에도 유관 경력을 면접 자리에서 묻고, 이를 만들기 위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인턴생활까지 서로 하려고 경쟁한다.

당연히 조직에서 받는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들이 이직스쿨을 찾아와 호소하는 부분이 “나는 소모당하고 있다”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선택을 나에 맞춰서 하지 못했고, 설령 했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조직 및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로 만드는 에너지 흐름상의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내가 하고 있는 일, 일이 가지는 특성, 그 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이들과의 적절한 공감대와 협력과 협업도, 내 안의 일을 하려는 자유의지와 내적 동기 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통해 워라밸을 잡으려고 해야 하는데, 그걸 알고 나서는 지금 하는 일에 만성이 되어 버렸다.

물론 신입 시절에는 그나마 희망이 있다. 기왕이면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많이 해준다. 그저 제 시간에 출근하고, 회의 및 미팅에서 하는 이야기를 찰떡, 콩떡 같이 알아들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얼마나 ‘눈치’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신입 시절이 지나고, 나름대로 직장 속의 개인 브랜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일단 보는 눈이 위뿐 아니라 아래도 생겼다.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작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름의 콘셉트를 잡기 시작하고, 내가 일을 어떻게 대하면서 살아갈지 대충은 정해진다.

여기서 크게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자신이 어느 정도 바라는 일이었고, 그냥 일 자체는 일 이상의 가치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일할 때의 자신과 일하지 않을 때의 자신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일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노력)만 만들어낸다. 당연히 그 수준은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연히 직장 수명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두 번째는 일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역시나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은 뚜렷하게 있는 타입이다. 따라서 일하는 시간과 그 이외의 시간을 철저하게 분리하려는 성향이 짙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위해서 일을 하는 타입으로 그들이 바라는 삶은 그저 ‘보통의 삶’이다. 역시 이들 또한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한 추가 생산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한 편이다. 해야 할 이유는 알고 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충분한 목적의식이 부족해 충분히 발생되지 못한 내적 동기의 에너지 부족이다.

세 번째는 일로서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일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그렇게 얻은 에너지를 일을 통해서 풀어보는 타입이다. 일에 푹 빠져서 너무나 열심히 하기도 하며, 자신의 일에 충분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일에 임해, 일로 연결된 많은 이들과의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기도 하는 등 일이 삶에 온전하게 자리 잡은 경우다. 이들은 일로서 얻은 에너지가 부족해 부가적인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 바라는 길을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당장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투자로 진짜 일에 빠져 있는 이들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굳건하지 못한 철학으로 속으로는 늘 불안감을 안고 있으며, 언제 내뱉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활동을 하는 것이 한계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일을 통해 사는 사람이다. 요즘 말로 ‘덕업일치’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인양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간다. 당연히 일의 생산과 소비의 균형 면에서 소비 활동조차 또 다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으로 집약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취미도 일과 연결되어 있어, 일 이외의 활동 속에서도 일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위의 네 가지 유형 중에 과연 나는 어떤 유형일까, 아마도 마지막만 제외하고 꼭 이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쓰기 위해 벌고 있을까, 아니면 벌기 위해 쓰고 있을까, 버는 것도 쓰는 것도 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실력도 포함된다. 내가 바라는 목적(방향)을 위해 나를 포함해 연결된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실력을 쌓는 이야말로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을 즐기거나, 일에 미치거나, 아니면 그런 이들과 연대하거나 세 가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