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경쟁사를 보면 사실 홍보실이 제일 부럽거든요. 사람들이 똑똑하고 일을 잘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회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홍보실은 존재감이 없어져요. 평시에는 그렇게 열심히 일 잘하는데, 왜 위기가 발생하면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그렇죠. 그런 회사들이 꽤 많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도 여러 홍보실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직접 그 회사에 들어가 위기관리 프로세스를 지켜보면서 발견한 점을 정리해 봤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정리해 보면 위기관리는 개인전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체전인 것이죠.

평소 홍보를 보면 그 진행되는 방식은 마치 야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똑똑한 홍보실 사람들이 수위 타자로 출격해서 연이은 안타나 홈런을 치고 점수를 따내는 형국을 상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비는 하지 않고 대신에 돌아가며 타석에만 서는 게임에 그 모습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해 그에 대응하는 상황을 보면, 마치 축구를 연상하게 됩니다. 11명이 함께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그런 게임이죠. 더구나 상대방 팀도 우수한 11명으로 구성되어 역으로 자사의 골대를 노립니다. 앞에서처럼 공수가 바뀌지 않고 홍보실이 타석에만 서는 반쪽 형식의 야구 상황과는 확 다른 게임이 돼 버리는 것이죠.

일단 골기퍼는 대표이사가 맞습니다. 수비는 각 부서 임원들이 맞고요. 공격수로 홍보실이 있지만, 다른 공격수들도 많습니다. 대관부서도 있고, 법무부서도 있습니다. 영업, 마케팅, 기술, 재무 등의 부서들도 한쪽 필드를 담당합니다. 이 팀을 위기관리팀이라고 하죠.

상대편은 어떨까요? 청와대가 있습니다. 공정위나 국세청, 경찰, 검찰도 필드를 뛰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언론도 선수 리스트에 보입니다. 안티 고객과 정치인들도 보입니다. 주민들과 온라인 공중들도 몸을 풀고 있습니다. 위기관리 게임에서 회사와 겨루어야 하는 상대방 팀입니다.

이 게임에서 상대팀을 볼 때 우리 회사의 홍보실 선수가 아무리 호나우도나 메시 급이어도, 혼자 뛰어 상대팀을 이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홍보실이 공을 패스하며 상대 진영에 빛의 속도로 달려 들어가도, 재무부서 선수가 공을 받아 흘려버릴 수 있습니다. 법무팀 선수가 홍보실 선수에게는 공을 안 주고 홀로 몰고 들어가다 상대편 검찰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니 그 법무팀 선수는 용병(로펌)이었습니다. 그에 더해 주장인 골키퍼(대표이사)가 골대는 지키지 않고, 공격수 자리에서 직접 공을 뻥뻥 차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뒤에서는 수비수 임원들끼리 서로 공격하면서 상호 간 발목을 부러뜨리기도 합니다. 벤치에서는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는 여러 실세들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편인 이해관계자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 우리 회사의 필드를 폭 넓게 뛰어 다니며 슛을 쏘는데, 우리 회사 선수들은 각자도생에 일사불란함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이런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죠. 승패를 떠나 우리팀 스스로 ‘난장판’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홍보팀이 똑똑할 수는 있습니다. 법무팀도 그렇고 대관도 그렇고 모두가 똑똑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각자 좋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여러 상대가 있고, 그 상대들이 하나의 멋진 팀을 이루어 공격할 때, 홀로 나가 싸워 이길 만큼 대단한 선수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똑똑한 홍보실 사람들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 존재감을 잃는다면, 그 이유는 그 회사의 위기관리팀이 제대로 팀워크를 형성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팀 차원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이길 역량이 대부분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선수들 사이에 사일로(Silo)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게임보다 상호 간 견제에 더 신경 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한숨을 쉬고, 아쉬워하는 홍보실 선수들이 몇몇 있다 해도, 그 팀이 제대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위기 때면 홍보실이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