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이 ‘말 따로, 행동 따로’ 전형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에 나서면서 통신사에 대한 과도한 압박 일변도로 정책의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통신업계와 유연한 토론을 통한 협상에 나서지 않고, 무작정 강경 일변도로만 나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통신사들의 가계통신비 인하 여력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논란이 5G 주파수 가격이다. 정부가 발표한 5G 주파수 경매안에 따르면 매물로 나온 주파수는 3.5㎓ 280㎒폭과 28㎓ 2400㎒폭이다. 3.5㎓ 최저경쟁가격은 2조6544억원이며 28㎓ 최저경쟁가격은 6216억원이다. 총 3조2760억원으로 결정됐다.

할당 총량제한에 대한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와 더불어 각 통신사들의 이견도 나오는 가운데, 유일하게 통신사들이 의견일치를 보는 대목이 있다. 바로 ‘가격이 너무 높다’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5G 주파수 가격은 높지 않다”면서 “통신사들은 2조원이라고 결정해도 높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우 주파수 정책과장은 “일부에서 과열경쟁으로 최종 낙찰가가 너무 높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신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가 4G LTE 주파수 경매에서도 과열은 없을 것으로 봤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경합 대역이던 1.8㎓ 대역 주파수는 최저가 4455억원에서 무려 9950억원으로 뛰었다”면서 “무기명 블록방식만으로 부족하다. 밀봉입찰로 1단계 대역의 위치를 정하고 2단계로 넘어갈 경우 약 5조원으로 경매가가 폭등할 수 있다. 새롭게 도입한 무선투자촉진계수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이번 가격 결정이 정당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5G 주파수 경매 과열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지만, 업계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통신요금 원가자료도 논란이다. 대법원 1부는 12일 참여연대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참여연대는 한 발 더 나아가 LTE와 데이터 요금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도 나섰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추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과기정통부에 LTE 요금제 데이터 전용 요금제 원가 자료를 요청할 계획”이라면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통신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보다 이동통신서비스의 공공성,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만큼 이번에는 소송까지 가지 않고 즉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신사는 지금까지 통신요금 원가자료에 영업전략이 포함돼 있으며, 경영상의 비밀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으나 이번 판결로 3G 시절 자기들의 ‘속살’을 보여주게 됐다. 만약 LTE와 데이터 요금 원가 공개도 결정되면 예민한 경영비밀도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압박은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통신요금 산정 근거자료를 정부가 공개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4월 14일 발의했다.

통신업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하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강공모드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케이블 방송사들도 제4 이통사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내부 치킨게임만 벌이고 있다. 보편요금제 압박도 이어지고 있어 당장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압박하면서 5G 주파수 가격을 높게 잡는 등, 사실상 통신사의 활로를 틀어막고 있다”면서 “가계통신비 인하를 원한다면 유연한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