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한국GM 노사가 23일 제14차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오전 5시부터 시작, 데드라인인 오후 5시를 한 시간 남겨놓고 극적 합의했다. 노사는 이날 교섭에서 핵심쟁점이었던 군산공장의 희망퇴직 미신청 직원 680명의 고용 보장과 관련해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산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한국GM 정상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사 자구안 협의’는 산업은행의 한국GM 중간실사보고서에 제시된 조건부 회생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한국GM 중간실사보고서에는 ‘노사 자구안을 포함한 정부와 산업은행, GM의 지원방안이 반영될 경우 한국GM 회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GM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갈 길이 멀다.

한국GM, 회생 전제조건 4가지

한국GM은 노사 합의 이외에 충족해야 할 회생 조건이 많다. 그간 정부와 산업은행, GM이 논의한 지원 방침은 ▲GM의 신차배정 ▲한국GM 부평·창원공장 외국인 투자 지역 지정 ▲GM과 산업은행의 지분율에 따른 28억달러 규모의 신규자금 투입 ▲GM의 기존대출 출자전환과 차등감자 등이다.

신차배정▶업계에서는 GM의 신차배정 여부를 두고 말이 많다. GM은 신차배정을 고려한다는 말 이외에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GM의 신차배정은 소형 스포츠형다목적차량(SUV)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 한국GM만 남아있어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GM이 한국GM에 배치한다는 신차 물량은 한국 아니면 생산할 곳이 없다”면서 “창원에서 만드는 소형 SUV는 인도GM 공장이 폐쇄하면서 달리 갈 곳이 없다. 부평1공장 트랙스의 후속 예정 신차인 에퀴녹스는 멕시코GM이 전담 생산해왔으나, 현재 이들은 픽업트럭과 대형 SUV를 만드느라 여력이 없다. 결국 한국이 아니면 연 20만대씩 만들 장소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GM의 신차 생산을 위한 협력사 부품 도안 배급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GM에 부품을 납품하는 A업체 관계자는 “통상 신차 부품이나 새로운 부품을 만들게 되면, 완성차 본사로부터 1년~2년 전에 관련 도안을 배정받는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GM은 신규 부품 도안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한국GM이 완성차를 수입하는 형태로 신차를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부품업체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GM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는 일감을 잃는 셈”이라고 말했다.

외국인투자지역▶부평과 창원공장의 외국인투자지역 요청을 내민 GM은 오히려 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이 구체적인 내부 자료를 요구하면서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에 대해 GM의 한국GM 신기술 투자가 부족하다며 지속해서 보완을 요청했다. 또 경영실사를 하는 산업은행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동차 이전가격을 모두 공개하라며 GM을 압박해왔다. 산업은행, 노조 등은 GM이 구두로 투자를 언급할 게 아니라 문서로 만들어 진 투자 확약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한국GM은 “GM 본사와 연결된 문제가 많아 자료 제출이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대주주의 책임 있는 고통 분담’이 전제돼야만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어서 GM과 협상이 길어지면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이 어려워진다.

신규자금 투입과 차등감자▶ 정부는 한국GM 실사 후 산업은행의 보유지분율(17%)만큼 지원금 분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GM측은 추가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산업은행은 현재 상황에서 더 지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올드머니의 경우 GM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 "단돈 1원도 투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신 신규 투자와 관련한 '뉴머니'는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출자전환과 차등감자는 대주주가 기존 부실에 책임을 지고,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필수라는 게 산업은행의 입장이지만, GM은 이를 재차 거부했다. 이 회장은 “GM이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 산업은행 지분이 굉장히 낮아져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GM 측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넘어야 할 산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 지분은 17%지만, 출자전환 방식으로 신규자금을 투입할 경우 지분율이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행이 주주로서 주주총회 비토권(특별결의사항거부권) 행사가 어려워진다. GM이 차등감자를 하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신규자금 수혈에 나설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한국GM, 경영 정상화 ‘난제’

한국GM 자금지원 등 사태가 해결돼도 앞으로 경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한국GM이 최근 인천시와 경상남도에 제출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신청 서류에 따르면 ‘3년간 국내 생산량 축소 방안’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은 연 50만대 생산체제를 내년 30만대 후반으로 줄여 잡았다. 이는 군산공장 폐쇄 이전 생산량인 연 91만대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GM은 2020년과 2021년 생산물량도 각각 40여만대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내용을 신청서에 담았다.

국내 한 산업정책 연구원은 "한국GM이 GM 본사로부터 신차를 배정받아도 3년간 생산량이 줄어들고, 영업적자가 지속하는 것은 막기 어렵다"면서 "한국GM이 2~3년 내에 지금과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으며, 5~6년 이내에 철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실사에서 한국GM 부실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본사 차입금과 매출액 대비 원가율 문제 등이 사실로 드러나면, 산업은행과 GM 사이에서 자금 지원문제를 두고 다시 공방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