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사건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에 벼락같은 악재가 되고 있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의 광고를 담당하는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회의 도중 물컵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는 ‘갑질’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조 전무는 지난 12일 자기 SNS를 통해 사과를 했지만 조 전무의 다른 갑질로 추정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졌다.

조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언니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이 대한항공 부사장 시절 항공기를 회항시킨 ‘땅콩회항’ 사건까지 재조명되고,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과 밀수·탈세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너 일가의 일탈로 한 기업이 골병이 드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급기야 22일 성명을 내고  “조현민 전무와 조현아 사장이 현재 맡고 있는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도록 조치하겠다”면서 “이번 일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대한항공 임직원 여러분께도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조 회장의 사과에도  갑질을 포함한 탈세 등 오너 일가와 관련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기업 이미지가 더 실추될 가능성도 있어 ‘오너리스크’에 따른 한진그룹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물벼락 갑질이 수면위로 떠오른 지난 12 단  하루 동안 대한항공의 시가총액은 2228억원이 사라졌다.

오너리스크로 골병든 기업은

총수 일가를 포함한 대주주의 일탈로 기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오너리스크’는 비단 대한항공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너가의 일탈은 잊을 만하기도 전에 툭툭 튀어 나오는 그야말로 재계의 ‘단골손님’이다.

최근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가 수행비서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수행비서에게 자기가 사용하는 요강을 씻으라고 하는가 하면 일상의 업무 범위에서 벗어나는 황당한 업무 지시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대표는 20일 입장문을 통해 “부적절한 처신으로 고통을 느끼신 분들게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1월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동선씨가 술에 취해 술집 종업원을 때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김동선씨는 2010년에도 한 호텔에서 종업원을 폭행하고 집기를 부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인 장선익 이사가 한 술집에서 종업원과 시비가 발생해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장 이사는 자기 생일에 케잌을 사오라고 했는데 케잌 값이 30만원이 청구돼 시비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4월에는 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의 수행기사 갑질매뉴얼이 공개됐다. 모닝콜을 하는 방법부터 서류 위치를 어떻게 두라는 것까지 세세한 업무지침이 담겨 있는 매뉴얼은 A4용지 140장 분량이었다. 만약 수행기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정 사장은 폭언과 욕설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은 “머리가 나쁘면 물어보라”는 발언 등의 인신공격성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같은해 수행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 부회장은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을 만들고 폭언을 일삼았다.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도 경비원 폭행 등으로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최철원 M&M 전 대표는 2010년 화물노동자에게 ‘한 대에 100만원’이라면서 ‘맷값 폭행’을 저질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오너리스크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오너리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너 일가 스스로 각성해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제도를 강화하는 등 강제 수단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기업가치가 오너리스크로 하락하면 회사 임직원뿐만 아니라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손해를 입는 것이라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해 7월 ‘갑질’에 따른 오너리스크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8개 기업집단 31개 상장계열회사를 최종 표본으로 포함해 분석을 실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갑질에 따른 오너리스크가 발생한 31개 기업들의 주가는 사건 발생 이후 5일 후부터 주가하락 현상을 나타냈고, 15일 이후에는 유의한 주가하락이 관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갑질에 따른 오너리스크가 발생한 기업은 사건이 뉴스나 SNS로 알려진 이후 공통적으로 주가하락 현상을 겪었다는 것이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오너와 오너 일가의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이슈는 기업 주가의 단기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런 현상은 소액주주를 포함한 일반투자자에게 부정적인 영향과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오너리스크가 발생하면 기업가치가 떨어져 그 기업에 속한 임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게 하는 땜질식 처방 보다는 좀 더 제도화된 오너리스크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있는 기업을 포함해 오너가 없는 기업이라도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넘길 때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경영권 이동 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갑질 관련한 오너리스크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