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Shea Terra Organic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14명의 자녀를 키우며 번창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타미 움벨은 항상 바쁘다.

버지니아주 리즈버그에 있는 농장의 하루가 시작되면 그녀는 업무 메일에 답장을 하고 아직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8명의 어린 아이들의 하루를 준비해 주느라 정신이 없다. 분주한 아침이 지나면 4시간 동안은 아이들에게 언어에서부터 수학까지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 이른 바 홈스쿨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차로 30분 거리의 공장으로 달려간다. 공장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와 대여섯 시간 잠잔다.

"다음 날이 되면 똑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지요.”

빠트린 것이 있다. 독실한 무슬림인 움벨은 매일 아침 새벽에 가족들과 함께 모여 기도를 한다.

올해 45세인 타미 움벨은, 시어 버터(shea butter, 시어 나무에서 나는 견과류에서 추출한 지방 성분. 식품이나 화장품에 쓰임), 아오비 버터(maobi butter), 마룰라 오일(marula oil) 같은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국적 성분을 사용해 피부 및 머리결을 보호하는 제품을 만드는 시어 테라 오가닉(Shea Terra Organics)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2000년에 단돈 1500달러를 가지고 자신의 회사를 시작했는데, 이익이 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이다. 지난 해 그녀의 회사는 200만 달러(21억 2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시어 테라 오가닉의 직원은 7명뿐이지만 움벨은 아직도 신제품을 연구하고 마케팅, 포장, 배송 업무를 직접 챙기며 많은 역할을 혼자 해 낸다.

움벨은 회교 사원에서 시어 테라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기도하러 회교 사원에 가면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들을 만나곤 했지요. 그들에게서 그들이 사용하는 헤나(henna, 헤나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적갈색 염료), 시어 버터, 검은 씨앗 기름(black seed oil) 같은 미용에 좋은 제품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성분들을 더 넓은 미국 시장에 소개하고 싶었다. 첫 공급 업체와 연락해 온라인으로 검은 씨앗 기름과 시어 버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2001년이 되면서 시어 버터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후 사업은 꾸준히 성장해 300여종의 제품이 온라인과 미국 전역에 판매망을 가지고 있는 비타민샾(Vitamin Shoppe)을 통해 판매되면서 전국 브랜드가 되었다.

▲ 출처= Shea Terra Organics

움벨은 해마다 몇 차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공급 업체를 만나 새로운 성분들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의 아프리카 여행에는 또 다른 깊은 목적이 있다.

"회사를 설립했을 때 어떤 식으로 든 지구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회를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그 원칙을 자신의 사업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나, 지역 사회와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회사의 ‘디저트 데이트 뷰티 오일’(Desert Date Beauty Oil)은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의 야생 동물 및 코끼리 보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산되는 제품이다. 이 지역 여성 판매자들에게 물건 값을 지불하면, 그들은 야생 동물의 식량이 자라는 서식지를 침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식량을 살 수 있게 된다.

움벨은 또 자신의 연간 저축액의 2.5%를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그녀가 주로 기부하는 단체는  ‘우간다 희망 마을’(Village of Hope Uganda)이라는 곳이다.

▲ 출처= Shea Terra Organics

그러나 그녀가 성취한 것은 이런 현명한 생각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번창하는 사업으로 바꾼 것만이 아니다.

움벨은 5세에서 27세까지의 아이들 14명을 키우며 모두 홈 스쿨링을 하고 있다. 큰 아이들 6명은 대학에 들어가 의학과 공학 등 다양한 과목을 전공하고 있다.

작은 아이들 8명은 10에이커 크기의 농장에서 그녀와 남편과 함께 같이 살고 있다.

움벨이,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신장병 전문의인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워싱턴 DC에 있는 회교 사원이었다.

"우리가 충분히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남편에게 농장에서 살기 원한다고 말했지요."

그녀의 아이들은 농장에서 양과 닭을 키우는 것을 돕고 말도 타며 벌도 직접 키운다.

"어렸을 때 저는 농장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의 제 삶과 비교해 보면, 우리 가족이 어땠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녀는 메리 랜드에서 자랐고, 홀 어머니는 그녀를 기독교인으로 키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여러 번 옮겨야 했다.

"우리 가족은 아일랜드 출신의 독일인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고생을 많이 하셨고 여러 번 이사를 다니셔야 했지요. 집이 없었던 때도 있었고요.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15 세 때 집을 떠나 혼자 생활했다. 친구들의 호의와 잡다한 허드레 일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녀가 한 때 머물렀던 한 가정의 식구 중 한 명이 그녀를 이슬람교에 소개했고, 그녀는 이슬람교를 받아 들이며 개종했다.

"이슬람교를 공부할수록 이슬람이 내 진실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히잡을 착용하고 다닌다. 그래서 그녀가 사는 버지니아 교외에서 그녀는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제가 아는 한, 저는 이 지역의 유일한 회교도 여성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제 머리 스커프를 보고 이란, 또는 시리아나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저는 분명히 미국인 이슬람교도이며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도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를 바란다.

"저는 그들이 반드시 제 길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관심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제 아이들 모두가 야생 동물 보호 운동을 펼치고 힘든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