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최근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달 초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을 매입했다면서 현대차 경영에 간섭을 시작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문제삼으며 이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합병은 성사됐지만 삼성물산은 소액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소액주주를 찾아 다녀야 했다.

현대자동차 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간섭은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을 불과 3년 만에 다시 보여준 사례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한국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로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설립 등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정부와 정치권, 여론 등에 떠밀려 지배구조 개선을 진행 중이지만 정작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은 사라지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현재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그나마 경영권 방어에 유리했던 순환출자, 자기주식 보유 등도 현재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으로 없어지거나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 해소로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만들면 투명성은 높아지겠지만 오히려 외국 자본의 눈에 기업 구조가 명확하게 노출돼 적대적 M&A 등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순환출자로 지배구조가 복잡하면 외부 투기 세력이 어디를 치고 들어와야 할지 몰라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구입하게 해줄 수 있는 포이즌 필이나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도 국내에는 없다.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이 있으면 기술탈취, 혹은 먹튀를 노리는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순환출자 해소로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상황을 나쁘게만 몰아세우는 건 지나치다는 시선도 있다. 오히려 경영위협을 느끼게 되면 경영자들이 경영에 더 신경 쓰게 돼 건전한 경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 거버넌스에는 이사회나 주주총회와 같은 내부적인 요인, 적대적 M&A 위험 노출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는데 적대적 M&A에 노출되면 오히려 기업 경영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는 순환출자 등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시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1950년대 이후 불모지에서 기업을 키워 오는 데 필요했던 ‘어쩔 수 없었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또 경영권 방어 수단 없이는 정상적인 경영에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코노믹리뷰>는 ‘누구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인가’라는 기획을 통해 경제성장기의 산물인 ‘순환출자 구조’를 없애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과연 소액주주들에게 공정한 기업이익의 배분을 실현했는지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계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진 않았는지 ▲국내에 상장사 경영권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