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분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지만, 왠지 잘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말 중의 하나인, ‘느낌적인 느낌’에 관한 표현이다. 그런데 죽느냐 사느냐 하는 비즈니스 전략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뜬금포를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날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한 본부장이 필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수개월에 걸쳐 미팅과 조사 분석 그리고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임원이 딱 한 번 들어보고는 CEO에게 그 같은 평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옆에서 들어보니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는 말이었다. 프로젝트는 기한 없이 보류되었고, 그런 결정의 배경에는 이 발언이 원인이 됐다.

기업들이 과학적 기법들을 동원해 경영에 응용하고 있다. 많은 효과들을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학적인 자세를 여지없이 허물어 버리는 일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느낌적인 느낌? 결국 문고리 쥔 자가 이겨

앞에서 이야기했던 신사업을 주도했던 한 본부장은 거의 30년 가까이 유통분야에서 갈고 닦으며 실력을 키워온 전문가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형 백화점을 직접 경영한 전문경영인이기도 했다. 신성장동력이 필요했던 회사에서 삼고초려 끝에 겨우 영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인재가 무언가를 해나가기에는 암초가 곳곳에 있었다. 신사업부문을 총괄해 추진하라는 특명을 받고, 적은 인원이지만 전문가급 인력을 동원해서 가능한 분야와 대상을 찾으며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수개월간의 진통 끝에 내외부의 조력에 힘입어 사업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보고는 했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CEO가 잘 이해를 못했다. 발표가 한두 주 걸러 한 번씩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발표 자료는 다듬고 업그레이드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전문가가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그 프로젝트의 내용은 옆에서 봤을 때, 상당한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수차례 사업 발표가 진행되고 최종 결정의 시점에 이르자 다른 사업부를 맡고 있는 본부장급 몇몇이 함께 발표회 자리에 끼게 됐다. 그들의 주 업무는 R&D, 생산과 같이 비록 주요 부분을 담당하고는 있다 하나 관련 경험이 전무했고, 처음 듣는 자리였다. 다시 한 번 발표가 진행됐고 CEO는 임원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마지못해 한 마디씩을 내놨다.

“잘 모르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 대해 모릅니다만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 들어보니 잘 될 사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매불망 CEO의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들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던 임원들은 CEO의 의중을 헤아려 회사가 그때까지 해본 적 없는 분야임과 초기 투자비용 문제를 들먹이며 사업 전개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신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 자신들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쪼그라들 것도 염두에 둔 발언들이었다.

“여러분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본 사업은 보류하겠습니다.”

CEO의 발언에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한 본부장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던 터에 우연히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모르면 그냥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거나 모르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전혀 모르는데 될지 안 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자금 상황이 어려우니 다음에 하자거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다시 생각해 보라거나 해야 할 텐데, 전혀 모른다는 사람들의 의견만 반영하다니.”

사실 한 본부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가지만 이직해온 지 일 년이 채 안 된 반면 다른 본부장급 임원들은 회사 CEO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실세급이었다. 때문에 CEO는 회사의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면 내부에 관련 전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비전문가인 그들의 의견을 들을 때가 많았다.

또 한 번은 그 후 상황이 바뀌어서 R&D를 담당하고 있던 김 본부장이 사업 영역을 확장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사업계획에 대한 발표도 진행했는데, 결정을 해야 할 때쯤 역시나 CEO는 여러 임원들을 불러서 의견을 구했다. 한 본부장은 자신의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팀원들을 동원해서 그 프로젝트에 대한 시장성과 사업성 등을 직접 조사하고 분석하게 했다.

지난번에는 그렇게 철저한 사업계획에도 불구하고 일언지하 ‘안 될 것 같다’는 감을 서슴없이 말하던 임원들이, 전혀 알맹이 없이 부실한 사업계획을 앞두고도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반응들이었다.

 

배가 산으로 가버린 ‘한 번만 해볼게요’

한 본부장은 시장조사와 함께 다각도의 분석 자료를 토대로 사업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했다. 결국 이런 객관적 자료 앞에서 CEO로 하여금 ‘진행이 쉽지 않겠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회의가 종료되기 직전 김 본부장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요?”

“방금 전에 여러 자료를 토대로 어렵다고 결론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꼭 한 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손실이 날 것 같으면 바로 접겠습니다.”

“그럼, 해보세요.”

결국 그 사업은 채택이 되었고, 인력과 비용 등 모든 면에서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되어 배가 산으로 가고 말았다. 비단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데만 이런 식의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문외한들이 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도마 위에 오를 때가 많다. 언론이나 뉴스의 속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기획, 재무, 회계, 법무 일에는 감히 토를 달지 못하겠고, 만만해 보이는 커뮤니케이션에는 쓸데없이 참견들을 많이 한다. 한결같은 전제 조건을 달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이라거나 “커뮤니케이션 분야 경험은 전혀 없지만…”이다.

정량적인 면보다는 정성적인 면을 더 중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업무의 특성상 알아 듣지 못하는 내용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입을 댄다. 멀리 있는 회계사, 변호사의 의견은 좇아도 바로 앞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기를 궁색해 한다. 최근 모 언론사 증권부장의 칼럼이 의미심장하다. 가상의 주인공인 ‘나’를 내세워서 과거와 달라진 자신의 태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임원의 입장이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재무, 기획은 물론 영업 현장과 자본시장 전문분야까지 톱클래스 수준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는 승승장구. 한때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딱 상무까지.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었다. 몇 번 비현실적인 윗선 지시가 있어 고심하다 용기를 내 직언도 했다. 그랬더니 “쏘 왓(So What)?” 나만 바보 됐다. 몇 차례 물 먹고 회사를 옮겨 천신만고 끝에 오른 게 이 자리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시장 업무 적응만큼 인맥과 학맥, 오너와 상사에 대한 한 발 앞선 충성이 중요하다는 걸.’

한국 기업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다. 아니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가 맞겠다.